이른바 '맞춤 의약품(personalized medicine) 시대'가 마침내 그 서곡을 울렸다.
제약기업측이 신약허가를 신청할 때 해당제품이 개별 환자들의 유전자 구조(makeup)에 따라 다르게 나타낼 약효의 차이 관련정보 제출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FDA가 3일 공개했기 때문.
즉, 향후 신약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통과의례로 요구될 유전학 테스트(genetic test) 진행을 규율하기 위한 요강이 제시된 것이다.
의견공람 기간을 거쳐 최종확정될 예정인 가이드라인은 제약기업측이 후보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고, 또 신청서 제출시 첨부해야 할 유전학 테스트에 관한 세부규정을 담게 된다.
이 같은 내용은 장차 의약품의 개발방법과 처방패턴에도 상당한 변화가 뒤따를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어서 눈길이 쏠리게 하고 있다.
실제로 약리유전체학(pharmacogenomics)은 머지 않아 개별 환자들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약물을 처방하는 맞춤 의약품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DER)의 자넷 우드콕 소장은 "가이드라인 초안이 마련됨에 따라 각 약물별로 뚜렷한 약효발현이 기대되는 환자들에 한해 투여하고, 부작용이 우려되는 환자들에게는 투여를 삼갈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비유하자면 이제는 의약품도 개별 환자들의 입맛(?)에 따라 복용할 수 있게 되는 셈.
이와 관련, 유전학 테스트는 이미 일부 의약품들에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예로 암 전문의들은 제넨테크社의 항암제 '허셉틴'(Herceptin)의 투여를 결정하기에 앞서 유방암 환자들에게 유전학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있다. 또 전문가들은 불규칙한 심장박동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치료할 때 최선의 요법을 선택하기 위한 가늠자 역할을 하는 유전표지(genetic markers)를 발견하고 실제 치료과정에 접목하고 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유전적 특성이 환자들의 체내에서 이루어지는 약물대사 전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FDA도 이미 제품라벨에 유전학 테스트 관련정보를 삽입한 신약을 허가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상태이다.
가령 지난해 11월 허가했던 일라이 릴리社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 '스트라테라'(Strattera)는 제품라벨에 "이 제품이 느린 속도로 대사되는 체질을 지닌 환자들의 경우 식욕감퇴 등의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으므로 투약에 앞서 유전학 테스트를 받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로슈社 제약사업부에서 R&D를 총괄하고 있는 미치 마르틴 박사는 "현재 우리는 환자들이 다양한 의약품들을 맞춤사용할 수 있는 유전표지를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로슈는 대규모의 진단기기 사업부를 보유하고 있어 메이저 제약기업들 가운데 약리유전체학의 활용도가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메이커.
진단기기 파트를 보유하지 않은 기업들도 장차 약리유전체학이 제약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며 깊은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약리유전체학 연구가 본궤도에 올라설 경우 FDA가 신약의 투여대상을 타깃으로 지정된 환자들에 한하도록 제한할 수 있고, 이 경우 블록버스터 후보신약들에 내재된 잠재력이 끝내 수면 위로 부상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반대로 일부 환자들에 한해 제한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어 왔던 의약품들의 경우 유전학 테스트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 제약기업들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FDA는 "제약기업측이 자발적으로 약리유전체학 시험자료를 제출할 경우 허가검토 과정에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일선 메이커들의 부담을 완화해 주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약리유전체학 시험자료가 실제로 신약의 발매허가를 결정할 때 필수적인 검토대상으로 포함되기까지는 아직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크社의 스티븐 프렌드 부회장은 "FDA가 새 제도의 도입에 따른 충격완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만한 움직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