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비자가 많음에도 향을 내기 위해 실제로 사용되는 재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향수에는 최대 300가지의 다른 화학 물질이 포함될 수 있고 2500여 가지의 향 성분이 향수 관련 소비재로 사용되지만, 상세 성분은 영업비밀로 보호돼있어 성분 목록으로 표기되지 않고 있다. 화장품에 대한 EU 규정에 따라 유럽의 화장품은 성분 표시가 의무이나, 향수에는 의무가 적용되지 않아 라벨에는 몇 가지 성분만 적힌 채 판매되고 있다.
덴마크 소비자위원회(Danish Consumer Council), Erase All Toxins(네덜란드 NGO) 및 Stand up to Cancer(벨기에 NGO) 등 3개 기관은 향수 소비자의 건강이나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성분이 사용되고 또 라벨에 표시되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실시해 보고서 '향수의 문제 화학 물질'을 발표했다. 소비자의 인식이 향상되면 화학물질에 대한 일일 노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벨기에·덴마크·네덜란드에서 인기가 높은 20개 향수 성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문제가 있는 화학 물질에 대해 성분 목록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20개의 향수에서 26개의 문제 물질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문제가 되는 물질은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EDCs) △생식독성 물질 △알레르기 유발 물질 △환경 유해 물질 등 네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EDCs)
EDCs는 신체의 민감한 호르몬 시스템을 방해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이다. 호르몬은 신진대사, 성장 및 생식 발달과 같은 신체 기능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EDCs에 노출되면 암은 물론 신경발달, 생식 및 대사 장애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어 극소량의 호르몬으로도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경고한다.
생식독성 물질
생식독성 물질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성 기능과 생식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남성의 경우 정자 수가 적어지거나 여성은 유산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물질은 또한 어린이에게 발달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보고서는 서구권에서 남녀 모두에게 생식 능력에 대한 문제 보고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알레르기 물질
보고서는 향기 성분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알레르기는 평생 지속되며, 잠재적으로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과민성 피부는 소비자의 삶의 질에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고, 작업 적합성에서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유럽 인구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최소 4.1%는 향수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 유해 물질
피부를 보호하거나 제품의 유통 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화장품에 추가되는 UV 필터는 해양 생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고서는 다수의 향수에서 검출된 UV 필터 '에틸헥실메톡시신나메이트'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수원에서 검출됐다고 지적한다. EU에서도 수중 생물에 유독한 물질로 분류하고 있는 '리모넨'은 향수의 가장 흔한 성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내분비 교란 물질인 EDCs의 위험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며 경고했다. 보고서는 '인간 생체 모니터링 연구'에 따르면 생활 속 EDCs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유럽인의 소변과 혈액에서도 EDCs가 발견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양수와 모유에서도 EDCs가 검출되었으며, 이는 어린이가 출생 전과 출생 직후에도 EDCs에 노출되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2년 내분비 교란 화학 물질이 세계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DCs는 정자 수의 급격한 감소와 같은 생식 및 생식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전립선암 및 유방암과 같은 호르몬 의존성 암과도 유관하다. 또한, 태아의 EDCs 노출은 뇌 발달 및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연구진은 경고한다.
특히, 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많이 받는 유방암의 경우 잦은 호르몬 노출이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2020년, 세계적으로 230만 명의 신규 유방암 환자가 발생했다. 유방암의 약 80%는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받는데, 대부분의 EDCs는 에스트로겐 또는 항안드로겐(남성호르몬에 저항) 특성을 가진다. 또한, 세포 증식 및 이동을 자극해 암 발병 및 진행을 향상시키고 화학요법의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
향수에서 검출된 △벤질 살리실레이트 △BHT △부틸페닐 메틸프로피온 등 세 가지 물질은에스트로겐의 경로를 방해해 유방암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인은 EDCs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임산부나 수유부, 아동·청소년, 항암치료 중인 환자 등 취약 집단은 EDCs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한다.
화장품에 대한 EU 규정에 따르면, 성분 목록은 무게의 내림차순으로 표시돼야 한다. 1%보다 낮은 농도의 성분은 1%를 초과하는 농도의 성분 다음으로 임의 순서로 나열될 수 있다. 그러나, 향료의 방향성 조성물 및 그 원료는 '퍼퓸' 또는 '방향제'라고 하기만 하면 된다. 구성 성분이 목록에 명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국제향수협회(IFRA)와 향수연구소(RIFM)의 자율규제를 기반으로 하는 향수 성분 관리는 어느 정도 모니터링이 되는지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6가지의 향기 알레르기 관련 사항이 포장에 기재되도록 한 것은 긍정적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우려 물질 노출 위험 저감을 위한 대안으로는 제품 설명서에 대해 충분한 인지한 후 사용할 것과, 전 유럽(EU Ecolabel) 또는 북유럽(Nordic Swan Ecolabel) 에코라벨을 획득한 제품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