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와 전국 16개 시·도간호사회는 제74회를 맞은 올해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간호사·간호학생 34인을 기억합니다’ 캠페인을 전개한다.
근대 간호교육을 통해 배출된 간호사들은 전문직업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으며 지식인으로서 사회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일제강점기 엄혹한 시기 뜨거운 민족의식과 기개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구국의 일념으로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독립운동가 간호사들은 독립만세운동, 군자금 모집, 적십자활동, 사회운동, 첩보활동, 비밀연락, 독립군 규합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군대해산 항전에서 부상병 간호에 헌신했으며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통해 자주독립 의지를 보여줬고 서울 종묘 앞 만세시위를 주도했으며 간우회를 통해 일제에 항거했다.
러시아 연해주, 만주 용정, 중국 상해 등 국외에서도 항일운동과 간호사 양성교육에 힘썼다.
독립운동가 간호사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기억하고 고귀한 정신을 본받아 대한간호협회는 위대한 간호역사를 계속 만들어 나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34인의 간호사와 간호학생들의 주요 항일운동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일신협약 강제 체결 당시 세브란스병원과 보구여관의 간호사들과 3.1운동 독립운동에 앞장선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간호사는 이성완(결사대장), 이정숙(적십자부장), 김태복 및 세브란스병원 관계자 29명과 동대문부인병원 관계자 13명도 모두 간호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제에 항거한 '간우회 사건'은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의원의 박자혜 간호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박자혜의 주도로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주요 병원의 간호사들이 일제에 대항해 파업과 태업을 하도록 이끌었다.
근우회에 참여한 대표적인 간호사는 정종명(초대 중앙집행위원장), 김태복(평양지회 집행위원), 한신광(근우회지 창간호에 '근우운동과 재정방침에 대하야' 투고) 등이다.
국외에서도 간호사들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대한부인회(부인독립회)의 중심 인물 중 채계복(간호사)이 있다. 채계복과 채계화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던 채성하의 딸이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내무부총장 안창호의 명의로 대한적십자회 설립을 1919년 8월 29일 공포했다. 이어 1920년 1월 31일 상해 프랑스 조계지 내 대한적십자회 총사무소에 `적십자간호원양성소'가 설치돼 개학식이 열렸다.
독립항쟁을 대비해 독립군 부상자의 치료와 간호를 위해 간호사 양성교육에 힘을 기울였다는 것은 항일운동사에서 간호사의 위상을 한 단계 높여 준 의미 있는 일이다.
그 외에도 이역만리 하와이에서는 대표적인 여성한인단체인 대한부인구제회(Korean Women's Relief Society)가 1919년 4월 1일 창립됐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때까지 조국 독립 지원 및 조국 난민 구제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다이뉴바(Dinuba)에서는 한인들이 모여 3·1운동 1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했다. 1921년에는 한인적십자단을 구성해 한 장의 사진을 남겼는데, 적십자 간호사 복장을 한 두 명의 여성이 대형 태극기와 독립문 모형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