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약사 제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 ①
한갑현 전 대한약사회 사무총장
최재경 기자 cjk0304@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19-02-18 13:00   수정 2019.02.19 06:44

최근 보건복지부가 ‘한약제제 분업실시를 위한 세부방안 연구’를 입찰 공고하면서 한방분업의 조제 주체와 업무 범위에 대한 논란이 약사와 한약사간 또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약사제도는 1993년 촉발된 한약분쟁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의약분업 시행 후 3년 안에 한방의약분업을 실시한다’는 전제로 탄생했다.

이에 한의과대학과 약학대학이 함께 있는 대학교에 한약학과를 신설한다는 조건에 따라 1996년 경희대학교와 원광대학교, 1998년 우석대학교 등 3개 대학에 한약학과가 생겨났다.
2000년 제1회 한약사 국가고시가 시행된 이래 매년 120여명의 한약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한약사 수는 2018년 기준 2,563명에 달하고 있다.

한약사제도가 지난 1993년 한약분쟁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일반적이지만 실상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약사제도는 꾸준히 등장했던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사회를 되돌아보면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을 맞았지만 좌우익의 극한 대립으로 정치·사회적인 혼란에 휩싸여 있었고, 약업인들도 마찬가지로 극심한 내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일부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서 1928년 2월11일 설립된 고려약제사를 계승해 1945년 9월 조선약제사회(초대 회장: 이경봉)를 창립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개칭된 대한약제사회(초대회장: 이경봉)를 중심으로 새로운 약사법제정을 준비해 나갔다.

이것도 잠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해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게 됐다. 부산피난시절 비록 여러 자료 등이 분실된 상황이었지만 1951년 보건부 정경모 약정국장 등의 기억에 의지해 준비된 약사법안은 8장 60조로 초안이 마련됐다.

이 해 9월에 이송되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소분과위에서 ‘한약사제도’의 첨가 주장이 강력히 대두됐다.

이렇게 ‘한약사제도’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는 한약종상(훗날 한약업사)과 한의사회의 동조로 일부 국회의원이 제기한 것이다. 당시에는 한약종상과 약종상이 숫자에서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여건이 약제사들보다 다소 위에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의사제도’가 있으므로 ‘한약사제도’도 필요하다. 둘째, 한약은 약성에 따라 법제 등의 특별한 기술이 수반되기 때문에 한약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즈음 정경모 약정국장은 소위원회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학문의 문제로 습득해야 할 학문, 국시과목, 양성교육기관, 한약학대학 설립 등 현실적인 난제들을 제기했다.

또한 한약사제도를 도입하면 당장 의약분업이 전제돼야 하는데 한의사들이 업무 성격상 한약의 조제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한약사제도는 의미 없는 제도가 된다고 반대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조제권이 약사에게만 국한되면 한약종상은 한약 건재상으로 전락해 생계에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결국 조정안이 마련됐는데 당시 약사법 26조 3항‘한약종상은 환자의 요구에 응하여 기성한의서에 수재된 처방에 의하여 혼합판매를 할 수 있다’는 조문이다. 한약조제와 구분하기 위해 ‘혼합판매’라는 용어가 새로 생긴 것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53년 10월 10일 약사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법안 심의에 본격 착수했다. 그런데 최헌길 의원 외 14명이 또다시 ‘한약사제도’를 삽입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본회장에서는 팽팽한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이 때 국회 본회의장 오의관 의원의 유명한 발언을 소개해 본다.

오 의원은 “전국의 수만명 한약종상이 한약사시험을 본다면 과연 몇 명이나 합격을 하겠는가?”라고 의문을 제시했다.
이어 “한약종상에게 혼합판매를 허용해 첩약판매의 길을 터놓고 있는데 한약사제도를 신설하면 이 조항이 삭제될 것이고 한약사시험에 떨어진 한약종상은 건재상으로 전락하여 생사문제에 부딪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오의관 의원의 이 같은 발언으로 수정안은 표결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1953년 12월 18일에 제정된 약사법에는 ‘한약사제도’가 빠졌지만 약사들의 한약 조제권 박탈과 한약사 제도를 향한 한의사와 한약종상들의 집념은 끝없이 진행됐다. (2편으로)

한갑현 약사=중앙대 약대 졸, (전)경남도의원, (전)경남도약사회부회장,(전)대한약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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