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하다고 당뇨에 잘 걸리는 건 아니다
당뇨 발병에는 ‘환경’ 영향 커…‘BMI’ 기준으로 진단하는 것도 오류
전세미 기자 jeonsm@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17-08-24 16:51   수정 2017.08.24 21:57

아시아인의 비만률은 서양인에 비해 낮은 편이다. 따라서 서양인에 비해 아시아인은 당뇨에 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말이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미국의 조슬린당뇨병센터(Joslin Diabetes center)에서 오랫동안 당뇨를 연구했던 William C. Hsu 교수(Harvard Medical School)는 ‘초기 정상 체중에 상관없이 체중이 느는 정도에 따라 당뇨 유병율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24일 서울 콘래드호텔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인의 당뇨병 특성 분석 및 효과적인 치료 지견’에 대해 Hsu 교수와 의학전문지 기자들과의 간담회가 진행됐다.


뚱뚱하다=당뇨? 잘못된 인식

Hsu 교수는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당뇨에 잘 걸리는 것이 아니라, 초기 체중이 낮아도 체중이 급격히 증가한다면 당뇨는 더 잘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Hsu 교수는 “아시아인의 체중 증가에 대한 위해성은 다른 인종에 비해 크다. 위해성을 비율로 정의한다면 미국인은 11%, 아시아인은 20%로 체중이 증가한다면 아시아인이 미국인에 비해 2배 정도 위험하다. 아시아인에 속한 한국인도 체중이 증가하면 그만큼 인체에 위해한 것은 당연하다”라고 강조했다.

Hsu 교수는 당뇨 진단의 기준으로 ‘BMI’를 참고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Hsu 교수는 “현재 당뇨의 기준이 되는 글로벌 BMI 커트라인은 25kg/m2이다. 하지만 BMI가 25kg/m2인 경우, 진짜 당뇨 환자를 얼마나 잘 골라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민감도’는 63.7% 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높은 민감도를 위해 BMI를 무작정 낮추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민감도를 100%로 만들기 위해선 BMI를 22까지 낮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검사의 특이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Hsu 교수는 민감도 84%에 해당하는 BMI인 ‘23kg/m2’이 아시아인과 서양인 당뇨에 대한 기준을 삼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치라고 강조했다.

Hsu 교수는 “아시아인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낮은 BMI에서 당뇨가 발병한다. 또한 아시아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동일한 BMI에서도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 따라서 BMI를 당뇨 진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체중은 당뇨 발병 위험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Hsu 교수는 “그러나 일부 1차 의료 기관에서는 쉽고 편한 기준을 추구하다보니 아직까지도 당뇨 진단에 있어 BMI와 타협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Hsu 교수는 지난 2015년, 미국당뇨병학회(ADA)에서 제정한 당뇨병 가이드라인의 기준을 BMI 23kg/m2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당뇨 발병을 예측할 수 있는 마커(Marker) 개발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것. Hsu 교수는 “이 일이 의료계에서 맞춤화로 나아가는 첫 번째 시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인 식단’ 먹어야 한다

Hsu 교수는 1970년대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이상 일본계 미국인의 당뇨 유병률과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40대 이상 일본인들의 당뇨 유병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시애틀에 거주중인 일본계 미국인은 20%인 반면, 도쿄에 거주중인 일본인은 5%에 불과했다.

Hsu 교수는 “이 결과만 보더라도 당뇨가 발생하는 주된 원인은 ‘주위 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 중 가장 큰 요인은 ‘식단’이다. 전통적인 아시아인의 식단은 70%의 탄수화물, 15%의 단백질, 15% 지방, 15g의 식이섬유로 이루어진다. 반면 서구의 식단은 50%가 지방, 15% 단백질, 나머지는 탄수화물과 섬유질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Hsu 교수는 애당초 원래 서구 식단을 먹던 서양인들보다, 과거 아시아인의 식습관을 가졌다가 서구 식습관으로 바뀌어 가는 동양인들에 어떤 영향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실험했다.

실험 방식은 아시아인 모집단을 두 그룹으로 나눠 두 그룹 모두에 일정기간 아시아인의 식단을 먹도록 했다. 이후 한 그룹은 서구 식단을 먹게 한 후 나타나는 각 그룹의 차이를 관찰했다.

그 결과 계속해 아시아인들의 식단을 섭취한 그룹은 탄수화물의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슐린 감수성이 훨씬 높았다. 반면 서구화된 식단으로 바꿔 섭취한 그룹은 인슐린 저항성이 커졌다.

Hsu 교수는 “서양인들은 변화에 대해 둔감하다. 한 마디로 환경에 영향을 받아 몸이 변화하는 정도가 적다. 하지만 아시아인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아시아인들은 전통적인 아시아식단을 고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시아인들에 적합한 ‘SGLT-2 억제제’

Hsu 교수는 “현재 당뇨 약제의 계열은 총 12가지에 달한다. 당뇨 치료에 있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상당히 많다. 그 중 ‘SGLT-2 억제제’의 기전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말했다.

SGLT-2 억제제는 기존 계열의 약제와 전혀 다른 계열로, 인슐린 비의존적인 작용기전을 가진다. 신장에서 포도당의 재흡수를 저해함으로써 소변을 통한 포도당의 배출을 촉진시켜 혈당을 강하시킨다. 이런 특징 때문에 기존의 경구용 혈당 강하제와 병용 사용도 가능하다.

이어 Hsu 교수는 “아시아인의 비만과 서양인의 비만을 정의하는 체중 기준은 다르다. 따라서 아시아인은 서양인의 비만에 해당되는 체중이 아니더라도 당뇨가 발생할 수 있어 이미 인체 내에서는 생화학적인 문제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이에 SGLT-2 억제제는 체중 감소 효과도 있기 때문에 아시아인에게 SGLT-2는 조금 더 폭넓게 사용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체중이 덜 나가는 아시아인들과 체중이 많이 나가는 아시아인들의 치료는 달라져야 할까?

Hsu 교수는 “기본적으로 마른 사람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β-세포의 기능 저하, 뚱뚱한 사람들은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 당뇨가 발생한다. 따라서 아시아인들 뿐 아니라 어느 집단에게도 동일한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별 특성에 따라 치료는 달라져야 한다. 집단, 인종, 문화에 따라 당뇨에 대처하는 법이 각기 다 다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Hsu 교수는 “어느 질병이든 높은 복약 순응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약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이 상용화된 만큼, 이를 이용해 환자들에게 당뇨 교육을 효과적으로 시킬 수 있는 방법들 또한 연구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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