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셉트'는 치매환자만 먹나!
정상인 인지능력 향상 가능성 제기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2-07-10 06:50   
치매 발병을 지연시키는 약물로 개발된 '아리셉트'(도네페질)가 정상인들의 인지능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발휘할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하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평균연령 52세의 항공기 조종사 18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아리셉트'를 복용한 그룹이 플라시보 복용群에 비해 복잡한 비행 시뮬레이션 조종 트레이닝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였다는 것.

美 스탠퍼드大 제롬 예사베이즈 박사팀은 9일자 '신경과학'誌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러나 예사베이즈 박사는 이 약물이 건강한 이들에게서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약물로 사용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유보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아리셉트'는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라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 이 케미컬은 뇌 내에서 아세틸콜린을 파괴시키는 기전을 지닌 효소이다. 아세틸콜린은 뇌 세포들간의 메시지 전달을 촉진시켜 기억력과 인지능력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물질이다.

한편 시뮬레이션 조종 테스트는 75분간에 걸쳐 매 3분마다 비행방향·고도·주파수 등을 변경토록 관제하는 동시에 미리 기억해 두었다가 조종장치를 작용시켜야 하는 암호를 제시하는 등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연구팀은 조종사들이 7회에 걸쳐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받은 후 9명에는 '아리셉트', 나머지 9명에는 플라시보를 30일 동안 복용시켰다. 30일이 경과한 후 연구팀은 조종사들이 동일한 내용의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다시금 받도록 했다.

그 결과 '아리셉트' 투여群이 좀 더 우수한 조종능력을 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아리셉트'를 복용한 조종사들은 비상상황 대처능력과 착륙준비 과정에서 우수한 임무 수행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 예사베이즈 박사는 "이번 시험이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이어서 대규모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론이 도출되리라 단정하기에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들에게 '아리셉트'를 복용토록 권장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

'아리셉트'가 고용량 복용群에서 설사나 구토 등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도 속단을 금하게 하는 또 한가지 사유라고 예사베이즈 박사는 덧붙였다.

그는 또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약물이 발매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좋은 교육을 받은 '가진 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므로 '못 가진 자'들의 상대적 소외감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점도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체스 선수들이나 시험을 앞둔 대학생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될 소지가 없지 않다는 점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순간적인 운동능력 향상을 위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을 남용하는 것과 같은 성격의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는 뜻.

즉, 법적 걸림돌과 윤리적인 문제점들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 시험결과는 항공기 조종사들의 정년을 60세로 못박고 있는 美 항공국(FAA)에도 새로운 논란에 불씨를 지필 것이라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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