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더 큰 부상을 막기 위해 신체에서 보내는 신호로서, 하나의 방어 메커니즘(Defense Mechanism)이다.
순간적으로 가해지는 통증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후유증을 남기지 않지만, 이러한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의학적으로 ‘만성통증(Chronic Pain)’이라 분류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고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5분의 1이 이 만성 통증을 겪고 있으며, 이들 중 8%는 업무, 사회생활, 일상, 여가 등에 제한을 받는다.
이러한 통증을 멈추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약물로 오피오이드(Opioid)가 쓰인다. 오피오이드는 마약으로 잘 알려진 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제로서, 뇌의 보상 체계를 교란하고 중독성이 강한데다 치명적인 호흡 곤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높은 중독성으로 인해 오용,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건 사고도 많은 약물이다.
2019년 미국에서만 하루 평균 38명이 처방받은 오피오이드 과다복용으로 인해 사망하는 등 만성통증을 위한 새로운 치료제 개발은 늘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미국 하버드대 과학자들이 탄저균(Anthrax Bacillus)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탄저균은 폐에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세균으로 테러 무기로 사용할 만큼 위험한 세균이다.
하지만 연구팀의 결과에 의하면 특정 유형의 탄저균 독소는 통증을 완화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탄저균 독소를 통해 통증 신경세포(통증 지각 뉴런)의 신호를 바꾸어 아예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발견한 것.
미국 하버드 의대(Harvard Medical School) 면역생물학 이삭 츄 교수(Isaac Chiu) 연구팀은 박테리아가 신경세포(뉴런)의 신호를 바꿔 통증을 증폭하는 것을 확인한 뒤, 오랜 시간 미생물과 신경ㆍ면역계 상호작용에 관해 연구해 왔다.
지금까지 세균을 이용해 통증 다스리는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사람과 쥐의 척수 신경절(Dorsal Root Ganglia, DRG)의 인체 감각 신경으로 유전자 발현을 RNA 범위 분석과 함께 검출한 결과, 사람과 쥐의 통증 신경세포(통증 지각 뉴런)와 다른 일반 신경세포(뉴런)과 어떻게 다른지 연구했다.
그 결과 다른 일반 신경세포에는 없는 탄저균 독소 수용체(Anthrax receptor2)를 통증 섬유(Pain Fibers)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통증 섬유는 탄저균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탄저균은 크게 ▲보호항원(Protective Antigen, PA) ▲부종인자(Edema Factor, EF) ▲치사인자(Lethal Factor, LF) 등 3가지 단백질을 생산한다. 그리고 부종인자(EF)와 치사인자(LF)를 하나로 묶어 ‘부종독소(Edema Toxin, ET)라 한다.
연구팀은 쥐를 통한 동물 생체실험에서 척수 신경절(DRG) 배양균에 탄저균 부종인자와 치사인자를 투여하고 세포 내 신호 변화를 관찰했다. 세포 내 탄저균의 독소 효과를 확인한 연구진은 쥐의 보호항원과는 상관없이 척추관을 통해 부종인자와 치사인자를 투입 후 통증 감각에 미치는 여향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쥐에게 부종독소(ET)를 투여하면 쥐들의 심박수, 체온, 운동조절능력 등에 영향을 주지 않고, 열, 추위,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능력이 감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인공적으로 염증성(수술, 관절염, 와상과 같은 조직 손상에 의해 발현), 신경성(다발성 경화증, 대상포진, 당뇨병, 암으로 인한 감각 신경의 질병이나 병변) 통증을 유발한 쥐에게 부종독소를 주사했다. 그 결과 부종독소가 쥐의 염증성과 신경병증 통증 반응을 감소시켰다.
연구팀은 “이번 예비연구에서 통증 차단의 효과는 입증되었지만, 향후 이번에 입증된 결과의 안전성과 효능성을 검사할 수 있는 자세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며 “이 기술이 장차 다른 단백질 치료제를 특정 표적에 전달하는 정밀 의료 시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