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로벌 투자자 관점서 본 바이오 신성장기업 성공
박현욱 우리은행 뉴욕지점 IB데스크 차장 "제2,3의 C사(바이오제약)를 기대하며"
이권구 기자 kwon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19-02-07 06:38   수정 2019.02.07 15:22

 

월가의 유명 투자자 워렌버핏은, 자신이 만나기를 원하는 투자자는 잠시 거쳐가는 투자자가 아닌, 영속적 파트너로서 헌신적이고 참을성있는 투자자라고 말한다. 비지니스 세계에서 회사 경영진은 직원과 주주, 그리고 비지니스 파트너와 지속가능한 상생관계를 어떻게 일구어갈지가 하루하루의 현실과제다. 아마도 워렌버핏에게는 주주와 상생관계가 가장 어려운 주제였던 것 같다.  

신성장산업에서 이러한 참을성 있고 헌신적인 투자자를 만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하다. 성장산업은, 곧 신생산업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기업이 있는 곳이다.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두려워 하는 투자자는 갈등한다.  본인들이 감내하는 리스크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혹자는, 신성장산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가 투자자들을 교육시켜야 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투자수익을 실현하고 싶은 주주들 앞에서 신성장산업 기업은 희망고문(?)이 되고는 한다. 

C사(바이오제약기업)를 처음 알게된 것은, 2005년 내가 지금 근무중인 우리은행의 지분투자팀에서 일 할 때다. 당시 회사는, 다국적 제약사인 BMS(Bristol Myers Squibb)사와 체결한 장기제품공급계약에 따라, BMS사가 개발한 바이오신약을 생산하기 위한 생산설비투자 및 설비검증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 회사가 만든 약을 미국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미국 FDA로부터 생산설비와 공정에 관한 인가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C사 공채 1기생들은 인천 송도의 공장신축현장 내 임시로 만들어진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고 들었지만, 내가 회사를 찾았을 때만 해도 제1공장이 준공돼, 설비에 대한 실험생산(Validation) 단계에 있을 정도로 사업이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참고로, 바이오/제약산업은 그 특성상,  많은 리스크에 노출된다.  신약개발 – 승인 – 생산이라는 단계 단계별로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신약승인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개발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추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로 신약이 승인을 받아 상업생산에 들어가도 판매리스크는 여전히 남는다. 이런 이유로, 산업내 'Value Chain' 단위로 리스크를 분담하는 분업화가 이뤄져 있고, 시장성 있는 임상제품, 필요한 연구개발기능, 진입하고 싶은 영토 등 확보를 위해 기업간 M&A가 굉장히 활발하다.  달리 이야기하면, 필요에 따라서는 몸집을 불려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다이어트를 수시로 해야 생존이 가능한 시장이다.  

C사는 역발상에서 출발한 회사였다. 제품개발에 대한 시간과 비용부담 없이, FDA 승인을 받은 제품을 대량생산하기를 희망하는 글로벌 제약사에게, 생산서비스를 제공하려 했던 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가 초기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신약개발 리스크를 떠안고 가는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 자체 생산설비를 별도 투자해서 보유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재무적 부담이다. 따라서, C사는  그들에게 좋은 비즈니스파트너가 될 수 있는 고민 해결사였다.  반대로,  C사 입장에서는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자연스러운 기술이전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조금은 나중 일이지만, C사가 보유한 이러한 대량생산설비는, 당시만 해도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던 바이오시밀러라는 새로운 거대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로 작용했다.  회사는 지금 이 비교우위를 지키고자,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두고 글로벌 제약사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당시 우리 회사는 C사 지배구조에 관련한 여신을 제공했고, 이와 별도로 직접적인 지분투자를 했다. 그 이후 5년동안, 나는 -이 지면상에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일이지만- C사의 증권시장 상장, 리만사태라는 외부충격, 바이오시밀러 사업선언, CEO의 회사매각 선언과 주가폭락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일을 겪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성장기업인 C사의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주주와 잠재 투자자에 관한 관계였다.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내가 참석했던 주주총회를 떠올려 보면, 회사 대표이사는 어렵게 한 배를 탄 투자자들과 신뢰를 쌓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주총회 전후, 회사는 늘 가짜뉴스나 루머성 이야기를 방어하느라 적지않은 인력과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당시 C사는 우수하고 헌신적인 직원들이 있었고, 투명한 데이터와 명확한 계약조항에 근거해 일을 하는 글로벌 제약사가 비즈니스 파트너로 함께 일했기 때문에 글로벌 DNA가 태생적으로 내부시스템에 자리잡은 기업이었지만, 주주총회에서 이러한 부분은 크게 부각받지 못하는 한줄 짜리 경영성과일 뿐이었다.

그 때문인지 일정 성장단계에 올라서자 C사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해외투자자 유치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싱가폴테마섹과 같은 국부펀드, 세계적인 헬스케어펀드 같은 전문기관투자자 집단이 주주로 참여했다. 국외 투자자를 유치함으로써 한국 투자자들에게 인정을 받는 방식으로, 거꾸로 국내 이미지를 제고시켜 나갔다. 

산업에 대한 이해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경험 부재가 낳은 아이러니였다. 집 앞마당에 있는 보석을 알아보지 못한 안타까운 대목이다. 한국 투자자들은 아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 심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만큼 한국은 산업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한 나라다.

제 2의 C사를 꿈꾸는 분들께 꼭 고민해보라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첫째, 사업계획에 나오는 회사 성장단계별로 어떤 투자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고 가야할지, 명확한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한 배를 탄 주주들을 끊임없이 교육시키고 설득하는 소통을 통해 회사의 대외이미지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보다 업그레이드된 투자자를 만날수 있다.  셋째, 투자금 회수를 희망하는 투자자에게 기업상장을 통한 안전한 퇴로(Exit)을 확보해 주거나, 다른 신규 투자자에게 바통이 넘어가도록 하는 거래주선을 해주는 등 매우 체계적이고 디테일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성장산업 CEO는 회사와 주주간 내재된 갈등관계를 인식해야 한다.  주주들이 투자한 돈의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집을 사고 싶은 개인투자자의 돈은 아이가 생기고 집 평수를 넓히고 싶을 때 떠날 것이고, 정기예금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은행의 돈은 5년을 넘기기 힘들다. 개인들이 불입하는 보험료나 연금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보험사와 공제회는 7년에서 10년 장기투자를 선호한다. 이런 투자자의 고민을 알지 못하는 CEO는 떠나는 투자자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새로운 만남이 있다.  떠나는 투자자를 회사 비전을 전파하는 전도사로 만들어야 한다. 

2006년 인연을 맺었던 C사 투자는 이후, 2010년 투자금이 회수되면서 우리 회사와 인연이 마무리됐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나는 지금 뉴욕에서 근무 중이다. 가끔, 출장오는 C사 분들을 너무 반갑고 소중하게 만난다.  인연은 오래될수록 그리운 법이니까. 

얼마전, 우연히 맨하탄에서 헬스케어펀드 매니저를 만난 적이 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갑작스럽게 "C사를 아느냐?"고 질문을 불쑥 던진다. 이제 C사는 세상이 다 아는 기업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됐다. 기쁘다.

계속 잘 되기를 바란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기업이고, 글로벌 무대에 자리매김한 성공 신화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제2, 제3의 C사가 앞으로 한국에서 계속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쓴이는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우리은행  뉴욕지점 IB데스크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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