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가격을 낮추는 가격 통제 정책이 의약품 매출을 감소시키고 결국 R&D 투자를 줄여 신약개발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정책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최근 이같은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간한 글로벌 보건산업동향 484호에 소개됐다.
보고서는 미국을 제외한 32개 OECD 국가의 2018년 제약사 매출 규모를 분석한 결과, 의약품 가격 통제(인하) 정책으로 가격통제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77%인 2540억 달러가 감소했다고 전했다. 가격 통제가 이뤄진 현재 이들 국가의 제약 제조업체 매출은 3313억 달러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가격 통제를 줄이고 미국 수준의 75%까지 가격을 인상하면 매출은 1080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이들 국가들이 가격 통제없이 미국 수준의 100%로 가격을 인상할 경우 매출 규모는 5854억 달러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봤다.
또한 OECD 19개국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선 규제 당국이 가격 협상이나 기타 수단을 통해 약가를 직접 책정하는 ‘직접 가격 통제’가 매출에 가장 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의약품 매출의 18.3%를 감소시켰다고 분석했다.
ITIF는 2021년 478개 제약사의 순매출액과 R&D 지출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0.92의 견조한 상관계수가 산출됐다고 전했다. 이는 순매출액이 높은 제약사는 R&D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으며, 제약사가 R&D에 투자하기 위해선 매출규모 확대가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즉 제약사 매출규모가 R&D 투자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를 토대로 ITIF는 2018년 OECD 32개국에서 의약품 가격 규제를 해제했다면 전세계 의약품 판매액이 2541억 달러 증가하고 추가 R&D 지출이 564억 달러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보고서는 가격규제와 매출액 감소는 제약사가 신약을 개발할 인센티브를 감소시켜 미래 세대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접근성을 저해하는 동시에 현재 세대의 수명을 단축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ITIF는 “가격 통제를 하는 OECD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은 제약 부문에 대한 가격 규제를 철폐하는 동시에 현 세대를 위해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의약품 가격 책정 조항을 철회해야 하며, 정책 입안자들은 미국 의료시스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가격통제 정책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약가 통제 정책으로 인한 제약사와 정부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약가인하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제약사가 약가인하 집행 정지 가처분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꾸준히 이어지는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2021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간 복지부가 제약사들과 진행한 약가인하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이 58건이나 됐다. △복제약(제네릭)이 등장하면서 오리지널약 가격을 내리는 경우 등이 27건 △약제평가를 통해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조정하는 사례 등이 9건 △리베이트 적발로 인한 약가인하가 22건을 차지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소송을 하면 법원이 대부분 집행정지 처분을 인용해 약가를 내릴 수 없게 되며, 그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이 손실된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집행정지가 인용된 소송 31건에 대해 약가인하 시점이 늦어지면서 발생한 재정손실은 약 4000억원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