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5만명대로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전력난으로 백신의 초저온유통‧보관시스템을 구비하지 못해 국제사회의 백신 공급을 수차례 거절했을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남북 보건협력을 통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이슈와 논점 1955호 ‘북한 코로나19 확산 현황과 백신지원 전망’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북한의 코로나19 대북지원을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남북간 보건협력을 남북대화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북한은 2020년 1월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북‧중간 국경폐쇄 조치를 발표하는 등 강경책을 이어왔다. 실제로 2020년 7월 개성시로 탈북자 한 사람이 재입국하자 즉시 개성시를 봉쇄하고 방역 수준을 ‘최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경봉쇄 장기화로 북한의 경제사정이 점차 악화되자,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사태의 장기전을 선포하고, 국가 및 인민경제 부분에 대한 안정적 관리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지 2년 2개월만인 지난달에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빠르게 진정돼가고 있다며 방역 성공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중앙통신은 9일 국가비상방역사령부를 인용해 지난 7일 18시부터 24시간동안 전국적으로 5만860여명의 발열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6만470여명이 완쾌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일 5만4,610여명을 기록한 데 이어 이틀째 5만명선인 것으로, 지난달 15일 39만2,920여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지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발표한 통계를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으며, 통일부 역시 북한 발표에 대해 “단정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할 수 있는 장비부족으로 인해 확진자 수를 측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8일 이전까지 백신 접종을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그동안 국제사회의 수차례 백신 공급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절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3월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는 ‘백신국제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99만2,000회분을 배정하고 5월까지 170만4,000회분을 전달할 예정이었으나, 북한당국이 백신 수용을 위한 행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7월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473만4,000회분이, 8월에는 중국 국영제약사 시노백의 백신 297만회분이 북한에 배정됐지만, 북한 보건성은 코백스가 북한에 배정한 백신 297만회분을 코로나로 심각한 영향을 받는 나라들에 재배정해도 된다는 뜻을 유엔아동기금에 전달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화이자‧모더나 등 mRNA백신의 초저온유통‧보관 시스템을 전력난 등 내부여건으로 갖추지 못한 점 ▲중국산 백신과 아스트라제네카, 러시아산 스푸트니크V의 부작용을 우려한 지원 거절 ▲한국이나 미국에서 백신을 지원받을 경우 자신들의 약점 노출을 우려한 조치라는 내용의 3가지 주장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승열 국회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조사관은 “올해 초에도 코백스가 154만800회분의 백신을 북한에 배정했으나 북한이 수용의사를 표시하지 않아 결국 전량을 다른 나라에 재배정했다”면서도 “지난해 11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유엔아동기금이 요청한 대북 인도주의 지원사업에 대한 1년 간의 제재 면제를 승인함에 따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인공호흡기와 마스크, 코로나19 백신 냉동유통 및 보관 장비 등의 지원이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이 조사관은 “북한은 최근 코로나19 관련 방역의 성공 사례를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은 국경봉쇄 장기화로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됐으며 대북 경제 제재에 더해 식량 생산 감소, 위생적인 식수 부족 등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인도주의적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인도적 차원으로 인식하고, 이에 지속적인 협력 의사를 밝힘으로써 장기적으로 남북간 보건협력이 남북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