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추진해온 샌드박스 시행이 DTC 유전자검사 등 규제를 해결하고 혁신활동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되는 동시에, 그동안 양적 증가에서 정보투명성 등 질적 향상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기됐다.
KDI 김정욱 규제연구센터장은 '샌드박스 시행 1년, 도입 성과 및 효율화 방안'을 주제로 대한상의 브리프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각 국가들은 기술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서 신기술·신산업 분야에 규제샌드박스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5년 영국이 핀테크 분야에 샌드박스를 최초 도입한 이래 현재까지 30여 개 국가가 시행 중에 있으며, 우리나라는 가장 광범위한 형태로 핀테크를 비롯해 산업융합, ICT 융합 등 전산업을 대상으로 '한국형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샌드박스 승인 건수는 총 218건으로,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이 매년 40여 건을 승인한 것에 견줘 큰 성과라고 꼽혔다.
분야별로는 혁신금융 93건, 산업융합 39건, ICT융합 47건, 지역특구 39건이다. 샌드박스 주무부처(산업부, 과기부, 금융위, 중기부)는 신제품·신기술의 조속한 시장 출시를 위해 신청, 승인, 사후관리 등 프로세스 전 분야에서 적극적 지원을 하고 있다.
김정욱 센터장은 "샌드박스는 단순 건수 면에선 탁월한 성과를 기록했다"며 "DTC 유전자 검사, 의료 원격모니터링 등 그동안 풀지 못했던 해묵은 규제를 해결하며, 혁신 활동을 제고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혁신제품의 조속한 시장출시를 통한 경제활성화라는 도입 목적과 취지를 제대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운영에서의 쟁점을 되짚어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스가 양적 성과를 달성한 반면, 규제 개혁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고 보았다.
부처 간 합의가 되지 않거나, 사회적 파장이 있는 경우 승인 받지 못했으며, 실증특례와 임시허가 구분이 불명확하다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센터장은 "그동안 승인된 219건 가운데 실증특례가 176건(81%)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듯 기업은 되도록 임시허가를 원함에도, 보신주의에 빠진 채 일정 테스트만 허용하는 실증특례를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라며 "실증특례 사업 추진 시 관련 법령 개정이 지연된다면
해당 사업은 법령 위배로 인해 사업을 중단해야 하는 불안정성도 존재한다"고 짚었다.
샌드박스 운영상의 일관성이나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해 제도의 신뢰성이 저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특정 사업이 샌드박스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사업자가 직접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로, 이에 따라 기업별로 우호적인 부처에 신청하고, 비일관적인 결과가 통보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것. 예컨대, 버스 디지털 광고는 산업부(’19.2., 1차 승인)에서, 오토바이 디지털 광고는 과기부(’19.3., 2차 보류 후 3차 승인)에서 심의하고 상이한 심의결과를 받았다.
지역특구를 제외한 ICT, 산업융합, 혁신금융의 샌드박스는 사업자에게 규제특례를 부여하는 신청주의 방식이다. 즉, 기업 단위로 규제특례를 부여받기 때문에 샌드박스의 적용 대상자가 제한적이다. 동일한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기업만 사업이 가능하고, 신청(또는 승인)하지 못한 기업은 할 수 없다.
지역형 샌드박스인 규제자유특구는 대상 지역을 한정하고 있어, 여타 샌드박스와 같이 전방위적인 규제 완화 추진이 곤란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신청주의 방식하에서는 규제샌드박스 참여 사업자의 배타적 독점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규제 샌드박스 효율화를 위한 몇가지 개선점을 제시했다.
먼저 샌드박스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개념을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규제 샌드박스 제도에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지만, 샌드박스는 다양한 규제 개혁 제도 중 하나에 불과하며, 잠재적으로 더욱 적합할 수 있는 다른 규제 개혁 기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샌드박스만을 고려하지 않고 선제적 규제 로드맵 마련 등 여러 규제 개혁 방안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승인 건수만을 기준으로 규제 개혁의 성과를 측정한다면 샌드박스로의 과도한 쏠림현상이 발생할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샌드박스의 한계점으로 취약한 규제 인프라와 정책입안자의 역량 부족이 지적되고 있기 때문에(Wechsler 등, 2018), 샌드박스에 적합한 산업 및 사업을 선정해 시행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하며,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접수기구(전담기관)와 정부부처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실증특례와 임시허가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실험을 통한 증명이라는 실증특례 제도의 본래 취지 및 해외사례를 감안했을 때 실증기간을 임시허가와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국내 샌드박스 실증기간은 2+2년(최대4년)으로 타 국가(6~12개월)보다 길다. 이를 감안해 테스트는 짧게 하고, 신속한 법령정비를 통해 시장 출시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신뢰도 제고 차원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통합운영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 기존 신청 기업의 정보를 홈페이지상에 공개하는 등 지속적인 정보 제공을 통해 정부 의존도를 낮추고, 규제 적용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사업자 스스로가 기존 사업들과 유사 사업에 해당되는지를 1차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이유에서다.
보고서는 타 부처에서 추진하고 있거나, 신산업 지원사업과 중복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중복성이나 사업 추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통합운영체계 구축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김정욱 센터장은 "샌드박스는 그간의 양적인 성과에 더해 신기술, 신산업 분야에서의 질적인 변화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러한 제도의 변화에 더해 규제자인 부처의 행태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며 "피규제자인 기업과 국민의 입장을 한층 더 감안해 함께 규제의 품질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공무원 문화가 변화되고, 신기술, 신산업의 발전 속도와 전문성을 감안해 규제 개혁 분야에의 충분한 재원 투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