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로 인해 의료서비스와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제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의약품의 경우 응급피임약 일반약 전환과 사후피임약 허가품목 확대 등이 검토사항으로 제시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관련 쟁점 및 입법과제(김주경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 이재명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 현안분석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임부의) 자기낙태죄 조항과 업무상 동의낙태죄 조항중 '의사'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헌법불합치 4인, 단순위헌의견 3인, 합헌의견 2인)을 선고하면서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하도록 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번 분석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쟁점과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그중 보건의료계 관련 쟁점사항을 살펴보면, 주요 쟁점사항으로는 낙태인 임부(자기낙태죄) 또는 임부의 촉탁이나 승낙 하에 낙태시술한 사람(동의낙태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이번 기회에 삭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의 존치 여부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의 관점과 연계되는 문제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헌재도 낙태 금지·형사처벌 자체가 모두 위헌은 아니라고 보고 있고, 낙태에 관한 기본적 범죄 유형을 형사사법체계의 기본법인 '형법'에서 삭제한다는 사실이 일반에 주는 파장과 의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낙태죄 처벌규정 정비 문제도 있다. 임부의 촉탁 또는 승낙으로 낙태시술을 한 사람이 의료인이면 일반인인 경우보다 가중해 처벌하는 업무상 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제1항)의 유지 여부가 쟁점이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는 "의료인의 안전한 낙태를 오히려 방해하는 문제가 있고, 낙태과정에서 의료인 상담을 거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가중처벌은 제도 도입의 취지와 합치하지 않을 수 있다"며 "대신 생명 경시풍조를 예방하기 위해 영리 목적의 낙태를 가중 처벌하는 규정 도입은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의료인의 낙태 시술 거부권 인정을 두고 논란이 야기될 것을 예측하기도 했다.
'의료법' 제15조제1항은 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낙태에 대한 양심적 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를 법률로 허용하는 국가는 미국, EU 28개 회원국 중 21개국과 스위스·노르웨이 등이 있다.
이들 국가는 의료인에게 임부를 낙태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후송(referral)할 의무를 부여하고,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지정해 고시하는 등으로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되지 않도록 보완하고 있다.
건강보험 적용 등 낙태 관련 의료서비스·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제고와 관련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짚었다.
의료서비스와 관련해서는 임부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려면 낙태 관련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있어서 경제적 어려움이 없어야 할 것이므로 건강보험에서 급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것이라 예측했다.
입법조사처는 "헌재 판결 반대 측에서는 공적 재원인 건강보험재정으로 낙태시술비용을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안전한 시술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낙태시술법 각각에 맞는 적정수준의 의료수가(酬價)가 산정돼야 하므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의료서비스를 건강보험 급여항목으로 두면 서비스 표준화를 통한 질 관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응급피임약 관련 논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됐다.
현재 수정란의 착상을 방지하는 응급피임약(Emergency Contraception)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이다.
입법조사처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 응급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는 국가 사례를 근거로 우리나라도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자는 주장과 사후피임약 허가 품목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있다"고 전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번 헌재 판결로 임신 초기 자기결정권을 인정받게 됨에 따라 논의의 대전제를 바꿔야 하고 논의해야 할 사안들이 더 세분화될 것"이라며 "향후 세부 사안별로 첨예한 의견대립이 불가피해 보이면서 입법 개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입법조사처는 "외국 입법례와 법률 개정 동향을 참고해 우리 실정에 적합한 법제 정비가 가능하다"며 "헌재에서 정한 입법 개정 제한 시간 내에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기초한 법률개정이 가능하려면 국회가 중심이 돼 토론회・공청회 등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