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제약기업인 화이자社는 흔히 '비아그라 메이커'라는 꼭 달갑지만은 않은(?) 별칭으로 통하곤 한다.
그러나 화이자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플로리다州 올랜도 소재 오렌지 카운티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던 미국 임상종양학회 연례 학술회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이번 학회에서 인디애나大 의대의 종양학자 캐시 밀러 박사는 '수텐트'(Sutent; 수니티닙 말레이트 또는 'SU11248')가 51명의 유방암 환자들 가운데 14%에서 종양 부위의 크기를 3분의 1 정도로 감소시켰음을 입증한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시험의 피험자들이 이미 대표적인 2종의 유방암 치료제를 투여한 뒤에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을 만큼 희망이 적어보이는 환자들이었음을 상기할 때 주목되는 연구결과인 셈. 게다가 밀러 박사라면 로슈/제넨테크社의 유방암 치료제 '아바스틴'(베바시주맙)이 환자들의 생존기간 연장에 괄목할만한 효과를 발휘했음을 입증했던 권위있는 종양학자이다.
그런 밀러 박사가 이번에 연구결과를 공개한 '수텐트'는 다른 항암제들과 달리 소규모 바이오테크 메이커에 의해 개발된 것이 아니라 바로 화이자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 중인 후보신약 '꿈나무'이다.
화이자측은 그러나 '수텐트'와 관련,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오늘날 화이자는 한해 동안 투자하는 R&D 비용의 12%를 새로운 항암제 개발에 돌리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항암제 후보신약만도 13가지에 달할 정도. 임상 1상에 진입한 것만도 이들 중 9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항암제는 어느덧 화이자가 심혈관계 치료제에 이어 두 번째로 우선순위를 높게 두고 있는 분야로 올라섰다. 화이자에서 항암제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윌리암 슬리첸마이어 부회장은 "화이자가 최대의 항암제 메이커 중 한 곳으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조지 디미트리 박사는 "제약업계의 공룡인 화이자가 최고의 항암제 메이커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소규모 BT 메이커들의 창의적 유연성(flexibility)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면서도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디미트리 박사는 '수텐트'가 위장관기저암(또는 위장관간질종양)에도 효과적임을 입증했던 학자.
위장관기저암(GIST)은 상당히 치명적인 암의 일종에 속하면서도 치료제를 찾기 어려웠던 종양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위장관기저암을 진단받은 환자들은 진단 후 1년 6개월 남짓 생존하는데 그쳤고, 의사들도 별달리 손쓸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노바티스社의 '글리벡'(이마티닙)이 출현하면서부터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글리벡'은 위장관기저암이 발생한 세포에서 손상된 단백질에 작용해 증상을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함이 입증됐었다.
문제는 '글리벡'을 투여해 안정된 암세포들이 다시 악성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사실. 그러던 차에 개발된 '수텐트'는 암세포들의 악성이 재차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화이자측은 또 이번 학회에서 '수텐트'가 169명의 신장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2건의 중간단계 임상에서 종양 부위의 크기가 40% 안팎까지 감소되었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아 다시 한번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 중 1건에서는 평균 8.7개월 동안 종양 부위가 다시 증식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억제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을 정도.
'수텐트'는 아울러 위암환자들에게서도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화이자는 이번 학회에서 'AG-13736'이라는 코드네임의 항암제 후보물질에 대한 연구결과도 공개했다.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52명의 피험자들 가운데 40%에서 종양 부위의 크기가 축소되었다는 것이 발표내용의 골자.
이밖에 주사제 타입의 흑색종(黑色腫) 치료용 항체로 자체개발 중인 'CTLA4'와 콜리 파마슈티컬스社(Coley)로부터 라이센싱권을 확보한 'PF-3512676'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의 레너드 살츠 박사는 "화이자가 손꼽히는 항암제 메이커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