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화장품 안전성 규제, 왜 강화되나
소비자 보호·기업 책임 확대…평가기술 발전도 영향
박수연 기자 │ waterkite@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10-22 05:59   수정 2026.10.22 06:05

세계 각국이 화장품 안전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신제품이 늘면서 기업의 안전성 입증 책임이 커졌고, 평가기술이 발전해 제품별 검증도 정교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화장품 규제 현대화법(MoCRA)을 통해 기업의 안전성 입증자료 확보와 중대한 이상사례 보고를 의무화했다. 대만도 2026년 7월부터 일부 예외를 제외한 모든 화장품에 제품 배합 정보와 안전성 평가 결과 등을 담은 제품정보파일(PIF) 구비 의무를 적용했다.

한국도 지난해 12월 개정된 화장품법에 따라 제품별 안전성 평가자료의 작성·보관 의무를 마련했다. 업체 규모와 제품 특성에 따라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 2031년 전면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 14일 서울 로얄호텔에서 열린 '2026년 제5회 K-Beauty 수출 규제 대응 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최근 화장품 안전성 규제 강화가 소비자 보호에 대한 요구와 산업 환경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짚었다.


같은 원료, 다른 위험…'노출량'이 관건

최근 제품별 안전성 평가를 확대하는 국가들은 기존의 원료 관리에 더해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할 때 해당 성분에 얼마나 노출되는지도 검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원료의 독성과 실제 노출량을 함께 살펴 완제품이 일상적인 사용 조건에서 안전한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기존 화장품 규제는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할 필요가 있는 성분을 지정하고, 제한 성분에는 최대 허용 농도를 설정해 관리해 왔다. 국내에서도 일반 화장품은 이러한 금지·제한 원료 관리가 중심이었으며, 기능성 화장품은 별도의 심사·보고 체계를 운영해 왔다.

전문가들은 화장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완제품의 안전성을 충분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성분이라도 제품에 들어가는 농도와 사용량, 사용 부위에 따라 인체에 노출되는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본 카오(Kao)의 후지이 겐키치(Kenkichi Fujii) R&D 규제과학 부사장은 "화장품의 안전성은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사용 방법에 따라 성분의 노출량이 달라지므로 이를 반영해야 더욱 정밀한 안전성 평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양대학교 약학대학 배옥남 교수는 완제품의 안전성 평가에서 실제 노출량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원료의 독성이 나타나는 수준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제품이 안전한지 판단할 수 없다"며 "소비자가 실제로 노출되는 양과 비교해야 해당 제품이 안전한 범위에서 사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화장품 성분의 피부 노출을 중심으로 위해성을 평가해 왔다"며 "흡입 노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피부와 호흡기를 통해 동시에 노출될 수 있는 경우까지 평가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일본 카오(Kao)의 후지이 겐키치(Kenkichi Fujii) R&D 규제과학 부사장, 한양대학교 약학대학 배옥남 교수, 퍼스트리서치(First Research)의 바스카르 무케르지(Bhashkar Mukerji) 박사가 지난 14일 서울 로얄호텔에서 열린 '2026년 제5회 K-Beauty 수출 규제 대응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화장품신문 박수연 기자


쏟아지는 신제품…안전 책임은 기업 몫

화장품 시장에 수많은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안전관리 책임도 기업에 더 많이 부과되고 있다. 기업이 과학적 근거를 갖춰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규제당국은 이를 점검하는 방향으로 규제체계가 바뀌고 있다.

후지이 부사장은 "화장품 산업은 의약품 산업과 비교해 기업과 신제품 수가 매우 많다"며 "규제당국이 모든 신제품을 직접 승인하려면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러한 책임 구조를 오랫동안 신고제로 운영해 왔다. 기업이 제품을 신고하면 사전 허가 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지만,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입증할 자료는 직접 확보해야 한다. PIF를 갖춰두고 규제당국의 점검에도 대응해야 한다.

퍼스트리서치(First Research)의 바스카르 무케르지(Bhashkar Mukerji) 박사는 "신고제를 통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는 쉬워졌지만 그만큼 많은 책임을 지게 됐다"며 "제품이 판매된 이후에도 표시·광고한 효능을 발휘하고 안전성을 유지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케르지 박사는 일부 아세안 국가에서 제품 출시 후 점검을 통해 안전성 평가자료가 부실한 사례가 확인되면서 신고 단계의 자료 제출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보관하도록 했던 PIF 전체를 제품 신고 단계에서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안전성을 검증했더라도 실제 사용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기업이 판매 이후에도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이유다.

무케르지 박사는 "아무리 제품 안전성을 평가하더라도 실제 소비자가 사용해 봐야 그 평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며 "판매 후 감시는 제품이 시장에 나온 뒤에도 위험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기업 책임이 법적 의무로 강화됐다. MoCRA는 화장품 책임자가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할 근거자료를 확보·보관하도록 규정했다. 중대한 이상사례를 인지하면 15영업일 이내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해야 한다.


동물시험의 한계 넘는 평가기술 발전

제품별 안전성 평가 확대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변화는 비동물시험 기술의 발전이다. 화장품 분야에서 동물시험이 제한되는 가운데 인체 세포 시험과 컴퓨터 독성 예측 등 새로운 평가법이 개발되면서, 제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 독성 평가는 동물시험에서 유해한 반응이 나타나는 수준을 확인하고 이를 인체 노출량과 비교하는 방법을 많이 활용했다. 그러나 동물과 사람의 반응이 다를 수 있는 데다, 새로운 성분이 나올 때마다 모든 독성시험을 수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 부담도 컸다.

이러한 비동물시험·예측기술은 동물시험을 대체·보완하는 새로운 접근법(NAMs·New Approach Methodologies)에 해당한다. 차세대 위해성 평가(NGRA·Next Generation Risk Assessment)는 NAMs로 얻은 결과를 기존 독성정보, 실제 노출량 등과 종합해 인체에 미칠 위험을 판단하는 평가법이다.

배 교수는 "과거에는 동물시험에 많이 의존해 왔기 때문에 대체시험법만으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컸다"며 "최근 AI와 머신러닝 등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 안전성을 판단하는 방법도 안전성 평가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제 시험지침에도 이러한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6년 7월 피부 감작성 평가에 관한 시험지침(TG) 497을 개정했다. 이 지침은 세포 기반 시험과 컴퓨터 예측 등 여러 자료를 조합해 피부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과 강도를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개정에서는 피부 감작성의 정량적 평가 기준점을 산출하는 회귀모형 기반 평가법이 추가됐다.

다만 비동물시험법이 모든 독성시험을 대체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피부 감작성, 반복투여독성 등 평가 대상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자료와 시험법이 다르며, 여러 결과를 종합해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

안전성 평가의 확대는 K-뷰티 기업에도 새로운 과제를 안긴다. 국내에서도 제도 시행을 앞둔 만큼, 국내외에서 활용할 수 있는 원료 독성자료와 제품별 평가 근거를 체계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배 교수는 "K-뷰티가 글로벌로 성장하면서 국내외에서 안전성에 대한 신뢰성 있는 자료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며 "국제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 국제 수준에 맞는 안전성 평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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