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서 600일치 처방까지?…약사회 "오남용 안전장치 필요"
동일 환자 10일간 여러 의료기관서 '스타브론정' 반복 처방 제보…한 처방전 1800정 사례도
"초진 최대 7일 제한 필요…재진도 무제한 장기처방 막아야"
전하연 기자 haye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9-15 06:00   수정 2026.09.15 06:01
김인학 대한약사회 정책이사가 14일 서울 서초구 대한약사회관에서 열린 전문언론 대상 기자간담회에서 비대면진료 의약품 오남용 사례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약업신문=전하연 기자

비대면진료를 통해 동일 환자가 단기간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며 특정 의약품을 반복적으로 처방받고, 이 가운데 최대 600일분으로 표시된 처방까지 있었다는 제보가 대한약사회에 접수됐다.

대한약사회는 이를 계기로 정부가 의약품 재택수령 확대에 앞서 비대면진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복·과다처방과 의약품 오남용 실태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인학 대한약사회 정책이사는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약사회관에서 열린 전문언론 대상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회원으로부터 접수된 비대면진료 관련 사례를 공개했다.

약사회에 따르면 제보 사례의 환자는 지난 8월 초부터 약 10일 동안 여러 의료기관에서 비대면진료를 받고 항우울제인 '스타브론정'을 반복적으로 처방받은 정황이 확인됐다.

처방일수는 30일, 60일, 90일 등 장기 처방이 반복됐으며 이 가운데 600일분으로 표시된 처방전도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 처방전에는 통상 1회 1정, 하루 3회 복용하는 의약품을 1회 10정씩 하루 3회, 60일간 복용하도록 기재해 총 1800정이 처방된 사례도 있었다고 약사회는 밝혔다.

또 제보에 따르면 특정 약국은 해당 환자의 반복처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조제를 진행한 뒤 조제의약품을 퀵 방식으로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정책이사는 "10일 동안 여러 의료기관을 돌면서 장기간 처방을 반복해서 받을 필요가 있었는지, 한 처방전에서 1800정을 가져갈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비대면진료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하위법령과 의약품 재택수령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스타브론정의 성분은 티아넵틴(tianeptine)이다. 국내에서는 우울증 치료 등에 사용되지만 미국에서는 의약품으로 허가되지 않았으며, 고용량 복용에 따른 오남용 문제가 제기돼 왔다. 김 정책이사는 티아넵틴이 미국에서 이른바 '가스 스테이션 헤로인(gas station heroin)'으로 불리기도 한다며 과량 복용 위험성을 강조했다.

대한약사회가 공개한 비대면진료 처방 사례. 동일 환자가 단기간 여러 의료기관에서 스타브론정을 반복 처방받았으며, 이 가운데 600일분으로 표시된 처방도 확인됐다. ©대한약사회

약사회가 이번 사례에서 특히 문제 삼은 것은 비대면진료의 접근성과 플랫폼 구조다.

대면진료와 달리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손쉽게 찾을 수 있고, 환자가 원하는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의료기관이 플랫폼에서 더 많이 선택되는 구조가 형성될 경우 반복·과다처방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정책이사는 "한 곳에서 처방을 거절하더라도 비대면에서는 원하는 처방을 해주는 의료기관을 훨씬 빠르고 손쉽게 찾을 수 있다"며 "환자가 원하는 약을 잘 처방해주는 의료기관이 더 많은 선택을 받고 상단에 노출되는 구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인공눈물 처방 사례도 들었다. 일부 비대면진료 플랫폼에서 다량의 인공눈물을 처방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안내하는 방식의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으며, 안구건조증 등에 대한 충분한 평가 없이 환자 요구에 따라 급여 의약품이 대량 처방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정책이사는 "개개인 입장에서는 쉽게 처방받으니 편할 수 있지만 급여 의약품이 필요한 환자인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 처방이 이뤄진다면 건강보험 재정과 의약품 오남용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약사회는 이를 근거로 비대면진료 초진의 처방일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초진 비대면진료의 1회 처방일수를 최대 7일로 제한하고, 7일을 넘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대면진료를 통해 환자 상태를 다시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정책이사는 "통상적인 급성기 질환의 단기간 처방을 막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첫 비대면 접촉만으로 30일, 90일, 180일 등 장기처방이 이뤄지는 것을 막고 적어도 1주일 안에는 환자 상태를 다시 평가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진뿐 아니라 재진 비대면진료에도 일정한 처방일수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6개월 이내 대면진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비대면 재진에서 600일치를 한꺼번에 처방한다면 환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진이라고 하더라도 무제한 장기처방이 가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의료인의 진료권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진료를 하는 의료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청소년의 의도적 과량복용(OD·overdose)에 이용될 수 있는 의약품이나 마약류 불법 제조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슈도에페드린 성분 등도 비대면진료에서 별도의 관리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약사회의 주장이다.

약사회는 의약품 재택수령까지 확대될 경우 이 같은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정책이사는 "원하는 약을 고르고, 이를 처방해주는 의료기관을 찾아 조제한 뒤 집에서 받는 전 과정이 플랫폼 안에서 완결되면 이른바 '의약품 쇼핑'이 더욱 쉬워질 수 있다"며 "재택수령 확대를 논의하기 전에 실제 비대면진료에서 어떤 의약품이 얼마나 처방되고 있는지, 반복진료와 오남용은 어느 정도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사례는 현재 약사회에 접수된 회원 제보 단계로, 사실관계에 대한 최종 확인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김 정책이사는 해당 약국의 근무약사가 제보한 내부 사례라고 설명하면서 "회원 제보가 들어온 만큼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며 "확인 결과에 따라 윤리위원회 회부나 법적 조치, 고발 등이 필요한지도 내부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정책이사는 "정부가 비대면진료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관련 데이터 자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어떤 근거를 가지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제도를 확대하는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는 앞으로도 비대면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복·과다처방과 의약품 오남용, 플랫폼의 환자·처방 유인 및 불법 의약품 배송 의심 사례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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