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두 번’ HIV 예방주사, 영국 NHS 문턱 못 넘었다
NICE, 레나카파비르 급여 반대 초안…임상·경제성 불확실성 지적
경구 PrEP보다 효과 우수하지만 카보테그라비르 직접 비교 없어
HIV 단체 “과학보다 가격 문제…길리어드도 가격 움직여야”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9-15 06:00   수정 2026.09.15 06:01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연 2회 투여 HIV 노출 전 예방요법(PrEP) 레나카파비르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급여 문턱에서 제동이 걸렸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최근 공개한 급여평가 초안에서 레나카파비르를 HIV PrEP 목적으로 NHS에서 지원하지 않는 방향을 제시했다.

NICE는 레나카파비르의 임상 근거와 경제성 모델에서 여러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이번 결정은 아직 최종안은 아니다. NICE는 향후 이해관계자 의견과 추가 근거를 검토한 뒤 오는 11월 3일 다시 회의를 열어 레나카파비르의 급여 여부를 재논의할 예정이다.

레나카파비르는 이미 영국에서 HIV 예방요법으로 허가를 받은 상태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은 지난해 12월 레나카파비르를 ‘Yeytuo’라는 제품명으로 HIV 감염 예방 목적으로 허가했다. 레나카파비르는 앞서 ‘선렌카(Sunlenca)’라는 제품명으로 연 2회 투여하는 HIV 치료제로도 허가된 바 있다.

현재 영국에서는 민간 영역을 통해 사용할 수 있지만, NHS 재정으로 지원받기 위해서는 NICE의 급여 권고가 필요하다.

레나카파비르는 미국에서도 지난해 6월 ‘예즈투고(Yeztugo)’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PrEP 옵션으로 허가됐다.

NICE가 이번 초안에서 급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데에는 영국 내 이미 사용 가능한 다양한 PrEP 옵션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영국에서는 다수 환자가 경구용 제네릭 PrEP를 사용할 수 있다. 경구 투여가 어려운 환자에게는 GSK의 카보테그라비르 제품 ‘아프리튜다(Apretude)’가 대안으로 존재한다. 아프리튜다는 2개월마다 주사하는 방식이다.

임상시험에서 레나카파비르는 경구 PrEP보다 HIV 감염 위험을 더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NICE는 레나카파비르와 카보테그라비르가 임상시험에서 직접 비교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간접 비교에서는 레나카파비르가 카보테그라비르와 유사한 수준의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NICE는 레나카파비르의 임상적 가치 자체보다 근거의 불확실성에 더 무게를 뒀다.

우선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군이 실제 영국 내 PrEP 사용 대상자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가 불확실하다고 봤다.

또 HIV 감염 고위험군 가운데 현재 PrEP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실제 감염이 어느 정도 발생할지에 대한 추정에도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경제성 평가 역시 주요 쟁점으로 지목됐다.

NICE는 레나카파비르의 비용효과성 추정치가 NHS 자원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평가했다.

특히 경제성 모델에 포함된 여러 변수에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봤다.

레나카파비르 주사제를 사용하다 경구 PrEP로 전환하는 환자 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HIV 감염과 이후 HIV 치료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어떤 방식으로 모델링할 것인지 등이 대표적인 문제로 제시됐다.

NICE의 이번 판단에 대해 길리어드는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평가 절차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길리어드 측은 이번 결정이 새로운 HIV 예방 옵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HIV 커뮤니티 전체에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밝혔다.

회사는 현재 평가 절차가 계속 진행 중이며, NHS England와 영국 보건사회복지부(DHSC) 등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향후 레나카파비르의 HIV 예방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HIV 관련 단체들도 NICE의 초안에 강하게 반응했다.

영국 HIV 자선단체 테런스 히긴스 트러스트(Terrence Higgins Trust)는 이번 결정을 “매우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이 단체는 과거 경구용 PrEP 도입 과정에서 접근 지연과 장벽으로 인해 필요한 사람들이 HIV 예방 기회를 놓쳤던 사례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잉글랜드에서 PrEP를 사용하려면 온라인 약국이나 주로 성건강 클리닉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테런스 히긴스 트러스트는 NICE가 어떤 조건이 충족될 경우 레나카파비르에 대한 판단을 바꿀 수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길리어드도 가격 측면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혁신적인 예방 옵션이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NHS 역시 레나카파비르를 가장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적절한 물량 확보와 서비스 제공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영국 HIV 단체인 HIV i-Base는 레나카파비르의 PrEP 효과를 둘러싼 과학적 가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HIV i-Base는 NICE 문서에서 일부 근거의 공백이 언급됐지만 레나카파비르의 과학적 가치 자체에는 의문이 없다고 평가했다.

이 단체의 사이먼 콜린스(Simon Collins)는 이번 NICE 판단의 핵심이 결국 가격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레나카파비르의 높은 미국 정가와 제조비 대비 가격 수준 등이 영국 급여평가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HIV i-Base는 주사형 PrEP의 시장 기회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향후 새로운 경구형 PrEP 후보물질의 임상 결과가 공개될 경우 HIV 예방치료 시장의 경쟁구도가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높은 가격으로 인해 접근이 더 지연될 경우 환자와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레나카파비르는 이미 길리어드의 HIV 예방사업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예즈투고 승인 이후 길리어드의 HIV 예방사업은 2026년 2분기 처음으로 매출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 같은 성장의 상당 부분은 1일 1회 복용하는 경구용 PrEP ‘데스코비(Descovy)’에서 나왔지만, 예즈투고 역시 2분기 2억32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애널리스트 예상치를 1700만달러, 약 8% 웃도는 수준이었다.

다만 당시 시장에서는 향후 새로운 경구형 PrEP 옵션 등장 등이 레나카파비르의 장기적인 매출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길리어드는 주요 선진국 시장 외에서도 레나카파비르 접근성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4월 HIV 발생률이 높은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 레나카파비르 접근 대상을 기존 계획보다 100만명 추가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8년까지 레나카파비르 접근을 지원할 목표 인원은 총 300만명으로 늘었다.

길리어드는 공급 확대를 위해 여러 제네릭 의약품 제조업체와도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글로벌 접근성 전략을 두고도 비판은 이어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MSF)는 올해 초 길리어드의 접근성 확대 계획이 글로벌 HIV 유행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레나카파비르의 영국 NHS 급여 여부는 향후 임상 근거의 불확실성 해소와 경제성 조건이 어떻게 조정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NICE는 이번 초안에서 레나카파비르의 HIV 예방 효과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영국 내 기존 PrEP 선택지와 비교한 임상 근거, 실제 환자군 적용 가능성, 비용효과성과 경제모델의 불확실성을 주요 문제로 제시했다.

길리어드와 NHS,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오는 11월 3일 예정된 NICE 재논의에서 레나카파비르의 NHS 급여 가능성이 다시 검토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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