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약 개발 패권 전쟁… 중국 '물량 공세'・미국 '질적 압도', 한국의 생존 전략은?
최근 10년간 글로벌 IP5 특허 8883건 분석… 전주기로 확산하는 AI 융합기술
중국, 전체 특허 47.7%로 양적 1위… 실질적 기술 영향력(PII)은 미국이 '압도'
한국, 출원량 꾸준히 늘며 추격 중이나 글로벌 질적 경쟁력 확보 시급
김홍식 기자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8-11 06:00   수정 2026.08.11 06:01

천문학적인 비용과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 산업에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고 있다. 

그동안 제약 산업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품목 허가, 시판 후 안전성 관리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임상 단계에서의 높은 실패율과 낮은 상업화 성공률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왔다. 그러나 최근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 등 혁신 기술의 발달로 후보물질 탐색은 물론 분자 설계, 임상시험 최적화, 약물감시 분야까지 신약 개발 전주기에 걸쳐 AI 활용 범위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즉각적인 시장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AI 기반 신약 개발 시장은 2024년 약 18억 6000만달러 규모에서 2029년 약 68억 9000만달러 규모로 팽창할 것으로 전망되며, 연평균 성장률(CAGR)은 무려 29.9%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빅파마와 빅테크 기업들은 미래 시장 패권을 쥐기 위해 사활을 건 특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행한 '신약 개발 전주기 AI 융합기술 관련 특허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최근 10년간 주요 5개국(IP5) 특허청에 출원된 신약 개발 전주기 AI 융합기술 관련 특허는 총 8883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2018년 이후 출원 증가폭이 크게 확대되면서 기술 개발이 본격화됐으며, 2021년 이후부터는 연간 1000건 이상의 특허가 지속해서 출원되고 있다.

세부 기술 분야별로 살펴보면, 신약 개발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AI 기반 후보물질 발굴 및 분자설계' 분야의 특허가 6382건으로 전체의 71.8%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새로운 분자 구조를 설계하고 단백질 구조 등을 예측하는 데 AI가 핵심 효율화 수단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당 분야는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27.1%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전체 특허 출원 확대를 주도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AI의 활용이 단순히 초기 발굴을 넘어 신약 개발 전주기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AI 기반 약물감시 및 리얼월드 데이터(RWD) 분석' 분야는 1974건(22.2%)이 출원되며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전자의무기록(EHR), 보험 청구, 소셜 미디어 등 비정형 데이터를 자연어 처리(NLP)나 머신러닝(ML)으로 분석해 약물 이상반응을 탐지하고 안전성을 관리하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한, 가상 환자 코호트를 구성해 임상을 최적화하는 'AI 기반 임상시험 최적화 및 가상 코호트' 분야 역시 전체 비중은 5.9%(527건)로 작지만, 연평균 17.9%씩 꾸준히 성장하며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국가별 특허 출원 점유율을 보면 '양적 팽창'을 주도하는 중국의 기세가 매섭다. 전체 8883건 중 중국(CNIPA)에 출원된 비중은 무려 47.7%(4,238건)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미국(USPTO)이 24.5%, 유럽(EPO) 10.5%, 일본(JPO) 10.3%, 한국(MOIP) 7.0% 순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2016년에서 2023년 사이 연평균 35.2%의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이며 전 세계 특허 출원의 절반 가까이를 휩쓸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의 실질적인 기술 지배력을 알 수 있는 '미국특허청(USPTO) 등록 특허(773건)'를 기준으로 기술 경쟁력을 심층 분석하면 판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글로벌 기업들의 핵심 기술이 격돌하는 미국 시장에서 국적별 점유율은 미국이 71.7%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며, 중국의 비중은 3.4%에 그쳤다.

특히 특허의 질적 수준과 파급력을 평가하는 지표에서 미국의 독주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평균적으로 다른 특허에 얼마나 인용되는지를 보여주는 특허 인용도(CPP)가 93.4에 달했으며, 질적 수준을 의미하는 특허 영향력 지수(PII) 역시 1.2로 주요국 중 가장 높아 원천기술 및 기술 확산 측면에서 세계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중국은 특허 영향력 지수(PII)가 0.4에 불과해 막대한 자국 내 출원량에도 불구하고 질적 경쟁력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경우, 미국 내 등록 특허 비중은 13.7%로 2위를 기록한 가운데 다수 국가에 출원된 패밀리 특허 수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특허 시장력 지수(PMI)'에서 가장 높은 1.2를 기록했다. 이는 유럽 국가들의 특허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사업화 및 실용화에 매우 강력한 경쟁력을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술 경쟁은 이종 산업 간의 융합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후보물질 발굴 기술 분야의 상위 출원인에는 텐센트, 바이두 같은 중국 정보통신(ICT) 대기업과 미국의 딥마인드, 일루미나 등이 포진해 있다. 반면 실제 임상 데이터와 의료 현장 지식이 필수적인 임상시험 최적화나 약물감시 분야에서는 로슈, 존슨앤드존슨, 필립스 등 전통적인 글로벌 제약사와 헬스케어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주소는 어떨까. 한국은 전체 특허 출원의 7.0%를 점유하며 글로벌 5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확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초기 후보발굴 분야에서 국내 기업인 LG전자가 상위 12위(43건)에 이름을 올리는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 개발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등록 특허를 기준으로 한 질적 평가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1.6%에 머물렀으며, 특허 인용도(CPP) 11.7, 특허 영향력 지수(PII) 0.2, 특허 시장력 지수(PMI) 0.5로 주요국 대비 전반적인 기술 영향력과 글로벌 확장성이 제한적인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AI 신약 개발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고도화와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개별 단위 기술에 집중하기보다는 데이터, 플랫폼, 임상, 규제 대응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통합형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한국이 후발주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양질의 보건의료 데이터를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하고, 신뢰성 높은 고품질 학습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아울러 AI 기반 기술과 생명공학, 의약학 지식을 겸비한 융합형 전문 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학·연·병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연구 결과물이 실질적인 사업화와 신약 개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의 국가적 지원 체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신약 개발의 룰을 바꾸고 있는 AI 패권 전쟁, 이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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