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지 못한다…약가개편의 치명적 오류
[프리즘] 다윗이 골리앗을 멋지게 KO시킬 거라는 꿈은 깨자
제네릭 약가 53.55% → 45% 인하, 국내 제약산업 현금흐름 직접 압박
글로벌 대비 체급 차 무시한 동일 규율 적용, 산업 현실과 괴리 지적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3-27 06:00   수정 2026.03.27 06:39
©Gemini(AI 생성 이미지)

최근 몇 년 사이 유한양행, SK바이오팜,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이를 근거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이미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몇몇 사례를 산업 전체의 체력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BTS, 김연아, 오징어 게임, 기생충처럼 개별 기업과 개인, 창작자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탄생한 결과에 가깝다. 구조적으로 축적된 산업 경쟁력이라기보다, 예외적으로 등장한 성공 사례에 가깝다는 의미다.

앞서 몇 건의 성과를 근거로 산업 전반이 동일한 압박을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정책은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칙이 아니다. 요즘 말로 ‘메타인지(metacognition, 자기객관화)’, 즉 우리 산업의 체급과 위치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현실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멋지게 KO시킬 거라는 꿈은 깨자.

수십 년간 국내 제약산업의 주요 수익원 역할을 해온 제네릭 의약품 가격을 대폭 낮추는 약가제도 개편안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정부는 절감된 재정을 혁신 신약과 필수의약품에 재투자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내세웠다. 방향만 놓고 보면 틀렸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이 정책이 실제 산업에서 어떻게 작동할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개편안은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상한 금액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인하하고, 동일성분 품목 증가에 따른 계단식 약가 인하 기준을 기존 20번째 품목에서 13번째 품목으로 앞당겼다. 여기에 기 등재 의약품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해 약가를 재조정하는 구조다. 동일성분 품목 증가에 따른 계단식 약가 인하도 강화됐다. 

반면 희귀질환 치료제 등은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기존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고, 비용효과성평가(ICER) 역시 질환 중증도 등을 반영해 보다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겉으로 보면 ‘선택과 집중’이다. 문제는 이 정책이 기대고 있는 산업의 체급이다.

30조원 시장 vs 1.5조 달러 시장…출발선부터 다르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제약산업 매출은 약 53조808억원, 연구개발비는 4조1748억원 규모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 2024년 의약품 생산실적도 32조8629억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은 2023년 약 1조5160억 달러 규모로 분석됐고, 2028년에는 1조8630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 환산하면 2000조원을 훌쩍 넘는 시장이다. 국내 산업과는 애초에 체급이 다르다.

시장 구조 역시 매우 다르다. 유럽제약산업연맹(EFPIA)에 따르면, 글로벌 의약품 판매의 54.8%는 북미에서 발생하고, 유럽 전체가 22.7%를 차지한다. 특히 2019~2023년 출시 신약 판매의 66.9%는 미국, 15.8%는 유럽 주요 5개국에서 발생했다. 신약 매출의 대부분이 이들 시장에서 회수된다는 뜻이다.

한국은 이 구조와 거리가 멀다. 국내 시장은 글로벌 가격을 형성하는 중심 시장도 아니고, 신약 매출을 본격적으로 회수하는 시장도 아니다. 다수 기업이 제네릭, 개량신약, 위탁생산(CMO), 초기 기술이전 수익을 기반으로 연구개발(R&D)을 이어가는 구조다. 이 흐름이 흔들리면 연구개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골리앗의 방식, 그러나 다른 현실

이번 약가 개편은 결국 글로벌 기준에 맞추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제는 그 기준이 작동하는 환경까지 함께 가져온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가격 통제를 하면서도 산업을 적극적으로 키워왔다. 시장이 크고, 자본이 충분하며, 글로벌 신약 매출을 자국에서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을 낮춰도 산업이 버틸 수 있는 완충 구조가 존재한다.

반면 한국은 시장 규모도, 글로벌 회수 구조도 제한적이다. 이 상황에서 제네릭 약가를 53.55%에서 45%로 일괄 인하하고, 기 등재 의약품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산업의 현금흐름을 직접 압박하는 조치에 가깝다. 

정부가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 인센티브, 필수의약품 가산, 약가 유연 계약 등 보완책을 제시했지만, 현재로서는 규제의 속도와 강도가 더 크게 체감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서는 다윗이 이기기 어렵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상징으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산업에서는 다르다. 작은 산업이 큰 산업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받을 때,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생산 32.9조원, 매출 53.1조원 규모 산업이 1조5000억 달러가 넘는 시장과 동일한 규율을 적용받는다면, 그것은 경쟁이라기보다 부담에 가까워진다. 특히 제네릭이 여전히 연구개발을 지탱하는 주요 현금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 인하의 속도와 범위는 곧 산업 체력과 직결된다.

약가 개편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순서와 강도는 조금 더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작은 시장일수록 중요한 것은 가격 정상화보다 축적이다. 연구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현금 흐름, 실패를 견딜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는 역량 확보가 먼저다.

이번 개편안은 분명 산업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 변화가 혁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산업 기반을 흔드는 방향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정책은 방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방향도 중요하지만, 그 방향이 서 있는 현실 위에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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