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보건·환경 및 위기관리 대응 과학위원회(SCHEER)가 화학 혼합물의 독성 및 위험 평가 지침을 15년 만에 전면 개정한다.
EU 사무국은 최근 SCHEER에 2011년 확립된 기존 지침을 2026년 기준의 과학적 진보와 변화된 규제 환경에 맞춰 업데이트할 것을 공식 요청하고, 오는 10월까지 최종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번 결정은 개별 물질 중심이었던 틀을 깨고 실제 환경에서의 복합 노출을 반영하는 것으로, 향후 유럽 내 화학물질 관리 체계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화장품 산업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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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정의 핵심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복합적인 노출 환경'을 규제에 반영하는 데 있다. 인간과 환경은 일상생활에서 단일 화학물질이 아닌 수많은 물질이 섞인 복잡한 혼합물에 상시 노출되지만, 기존의 위험 평가는 개별 물질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SCHEER는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지난 10년간 발표된 수많은 과학 문헌과 국제 규제 가이드라인을 통합해 새로운 평가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세계 주요 규제 기관의 혼합물 위험 평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 환경보호청(US EPA)은 2023년 유해물질 규제법(TSCA)에 따른 누적 위험 평가 원칙 초안을 발표했다. 영국 환경청 또한 2022년 비의도적 화학 혼합물의 위험 평가 접근 방식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스웨덴 화학물질청(KEMI)은 혼합물 평가 계수(MAF)를 규제에 도입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안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식품안전청(EFSA) 등도 다중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조화된 방법론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한 지침 손질 차원을 넘어, EU 그린딜(EU Green Deal)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화학물질 전략, 제로 오염 행동 계획 등 EU의 핵심 정책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과학적 근거가 될 전망이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화학물질 등록·평가·승인 규정(REACH)과 물 관리 기본 지침의 업데이트는 물론, 도시 폐수 지침, 토양 모니터링 지침, 자연 복원법 등 신설되는 규정들의 이행에 있어서도 혼합물 독성 평가는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핵심 권한 범위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요 화학물질군(살충제·살생물제·산업용·식품 접촉 등)에 적용되고 있는 현행 혼합물 평가 방식부터 점검한다. 둘째, 각 평가 방식이 지닌 적용 범위와 장단점을 분석해, 개별 규제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범용 혼합물 평가 프레임워크'를 수립한다. 마지막으로 분석 데이터와 최신 방법론을 집약해 노후화된 2011년 의견서를 전면 개정할 계획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개정 방향이 EU가 추진 중인 단일 물질 단일 평가(One Substance One Assessment) 프레임워크나 설계에 의한 안전 및 지속 가능성(SSbD) 접근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원료 단계서부터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화학물질이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을 선제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부분이다.
규제 체계 변화는 화학물질을 주요 원료로 사용하는 산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성분을 복합 배합하는 화장품 산업은 특히 큰 영향권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개별 성분의 안전성 데이터에만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성분 간 상호작용과 복합 노출에 따른 위험 관리가 기업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여러 제품을 동시에 사용하며 겪게 되는 조합 효과(Combination Effects)에 대한 규제적 압박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SCHEER는 구체적 의견서를 작성할 실무 그룹(Working Group)을 지명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공개될 이 개정안은 유럽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안전 기준을 재정의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 확실하다. 또한, 글로벌 화학 규제의 표준을 선도하는 EU의 특성상 전 세계 산업계에 강력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