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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강력한 약가 인하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가운데, 제약바이오 업계가 "한국 산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는 단순한 불만을 넘어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사례을 근거로 정책 결정 과정에 산업계가 참여하는 '공식적 거버넌스' 법제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12일 발간한 'KPBMA FOCUS 제34호: 지속가능한 약가제도 개선 방안'을 통해 지난 2025년 11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프랑스·일본과 다르다"… 제네릭으로 R&D 하는 독특한 구조
이번 리포트의 저자인 권덕철 고문(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현욱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정부 개편안이 벤치마킹한 해외 사례가 한국 실정과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제네릭(복제약)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0%대로 낮추고, 가산 제도를 축소해 '신약 개발 중심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프랑스나 일본의 경우 신약 개발 기업과 제네릭 기업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만, 한국은 하나의 기업이 제네릭 판매 수익으로 신약 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독특한 구조"라고 반박했다.
즉, 제네릭 약가를 급격히 낮추면 신약 개발을 위한 '자금줄' 자체가 말라버려 정부가 목표하는 '혁신 생태계' 전환이 오히려 불가능해진다는 논리다.
"통보식 행정 멈추고 '거버넌스' 구축해야"… 선진국형 협력 모델 제시
보고서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룬 대안은 '거버넌스'의 개혁이다. 정부가 정책을 확정한 뒤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책 입안 단계부터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벤치마킹 사례로 프랑스, 일본, 영국의 모델을 제시했다.
프랑스는 정부와 산업계의 관계를 '협약(Accord-cadre)'이라는 공식 문서로 규정한다. 의약품 가격 협상을 담당하는 정부 기구인 '보건의료제품경제위원회(CEPS)'와 제약협회(LEEM)는 약가 결정 원칙과 절차를 명문화한 프레임워크 협약을 체결한다. 이 협약에는 정기 회의와 협의 구조가 포함되어 있어, 제도 변경이나 쟁점 발생 시 사전에 충분한 조율이 이뤄지도록 강제한다. 이는 정책 갈등을 최소화하고 산업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일본은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라는 강력한 자문기구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한다. 후생노동성 산하의 이 협의회에는 보험자, 의료계뿐만 아니라 공익 대표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약가 개정안을 논의하고 장관에게 권고한다. 특히 일본은 1990년대 후반 약가 대개혁 당시, 산하 약가전문부회를 통해 무려 5년 동안 상설 협의를 지속하며 합리적 대안을 도출했다. 이러한 숙의 과정은 제도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영국은 정책 변경의 파급력을 사전에 계량화한다. 보건사회복지부(DHSC)와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주요 제도 개편 시 '영향평가(Impact Assessment)' 자료를 공개하여 제약사와 재정에 미칠 영향을 투명하게 공유한다. 또한, 공식 의견 수렴(Consultation) 절차를 의무화해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보고서는 "한국도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나 화학안전 정책포럼의 사례처럼, 약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산업계가 소통할 수 있는 공식 협의 채널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약가 대폭 인하 땐 공급망 붕괴"… 보건안보 위협 경고
지나친 약가 인하가 필수의약품 공급망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제네릭 약가가 대폭 인하될 경우, 채산성 악화로 기업들이 생산을 포기해 국민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특허권이 소멸됐음에도 제네릭이 출시되지 않은 의약품이 476개 품목(47.4%)에 달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약가 인하는 이러한 '공급 공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국(AAM)과 일본에서도 낮은 약가가 의약품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음을 강조했다.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 지속가능성과 제약산업의 지속가능성은 함께 가야 하는 목표"라며 "단순한 약가 인하가 아닌, 산업 생태계와 공급 안정을 고려한 합리적인 마지노선 설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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