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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450원 선 안팎을 오가는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실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고환율은 수출 기업에는 호재, 수입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산업 특성상 원료 의약품 수입 비중이 높으면서도, 최근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제약바이오 업계는 사업 구조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단순히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는 이분법을 넘어, 기업의 매출 구조와 원가 산정 방식, 그리고 정부의 약가 규제라는 특수성이 맞물려 기업별 생존 방정식이 복잡해지고 있다.
"달러가 효자"... 웃는 CDMO·바이오시밀러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등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위탁개발생산(CDMO) 및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은 고환율의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의 계약을 달러 또는 유로화 기준으로 체결한다. 의약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받은 외화를 원화로 환산해 재무제표에 반영할 때, 환율이 높을수록 매출과 영업이익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다. 즉, 이들의 핵심 경쟁력은 '매출은 달러, 비용은 원화'라는 구조적 이점에 있다.
CDMO(위탁개발생산) 계약이나 바이오시밀러 판매 대금은 대부분 달러나 유로화로 결제된다. 똑같은 1억 달러를 벌더라도 환율이 1,200원일 때(1,200억 원)보다 1,400원일 때(1,400억 원) 원화 환산 매출이 약 16% 이상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반면 인건비, 공장 가동을 위한 전력비, 국내 설비 투자비 등 주요 지출은 원화로 이루어진다. 배지나 레진 등 일부 원부자재를 수입하더라도, 매출 증가분이 원가 상승분을 압도하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개선되는 '레버리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의약품의 경우 생산 원부자재를 수입하더라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보다는 매출 증대 효과(환차익)가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요 수출형 바이오 기업들은 환율 상승분이 영업이익률 방어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팔아도 남는 게 없다"... 울상 짓는 전통 제약사
반면,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고 원료의약품(API) 수입 비중이 큰 전통 제약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국내 제약사들은 항생제, 해열제 등 필수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원료의 상당 부분을 중국, 인도 등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결제 대금을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환율은 곧 '매출원가 급등'으로 직결된다.
실제로 주요 상장 제약사들의 최근 분기 보고서를 분석해보면, 매출원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평균 2~5%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원가 부담이 커져도 이를 판매 가격에 전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 제조업체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산업, 특히 전문의약품(ETC)은 정부가 정한 건강보험 급여 상한 금액이 고정되어 있다. 원가가 20% 올라도 약값을 올릴 수 없으니, 그 손해는 고스란히 제약사의 영업이익 감소로 귀결된다.
유한양행, 종근당, 대웅제약, 한미약품 등 상위 제약사들은 그나마 기술 수출료(달러 유입)나 자체 개발 신약 비중을 높여 방어하고 있지만, 제네릭(복제약) 위주의 중소 제약사들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간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비용뿐만 아니라 물류비 등 제반 비용이 모두 상승했다"며 "매출 외형은 성장하더라도 실속인 영업이익은 쪼그라드는 '불황형 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해외 임상·라이선스 도입 비용 '눈덩이'... R&D 위축 우려
고환율은 기업들의 미래 성장 동력인 연구개발(R&D) 활동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신약 개발의 핵심인 글로벌 임상 3상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해외 임상시험수탁기관(CRO)에 지급하는 비용, 해외 병원비, 현지 인건비 등은 모두 달러로 지급된다. 1년 전 예산을 짰을 때보다 비용이 20% 이상 불어나면서, 임상 일정을 늦추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이나 현지 공장 건설을 위해 달러 빚(외화 차입금)을 낸 기업들은 '이자 비용 증가'와 '부채 비율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갚아야 할 원금의 원화 환산액이 커져 부채 비율이 자동으로 악화되고, 이는 신용등급 하락이나 추가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형 바이오 벤처들의 R&D 활동이 위축되거나 중단될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환리스크 관리 및 공급망 다변화 시급"
고환율 리스크가 상수가 되면서 기업들의 대응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금융 상품을 이용한 인위적인 헷지보다, 수출 비중을 늘려 달러 수입과 달러 지출의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다. 내수 위주 제약사들이 최근 동남아, 남미 등으로 완제의약품 수출을 필사적으로 늘리려는 이유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에 대한 수정이 요구된다. 기술 도입 시 계약금 지급 시기를 조절하거나, 환율 변동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의 '3고' 현상은 자금력이 약한 중소 제약사들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필수 의약품 원료 수입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약가 연동제 등 유연한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고환율 상황은 기업의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실적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라며 "기업들은 수출처 다변화를 통해 '달러 벌이' 창구를 늘리고, 고부가가치 신약 개발을 통해 원가율 압박을 상쇄하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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