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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치료제가 나온다면, 엄마와 손을 잡고 바닷가를 함께 걸어가자.”
강태은 한국GNE근육병환우회 회장은 23일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 무대에서 딸과의 약속을 전했다. 아직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들 수는 없지만, 환우와 연구자, 사회가 함께 이어온 연대가 희망을 잇는 불씨가 되고 있다.
“GNE근육병 환자에게 자유란 혼자 밥을 떠먹고,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 있으며, 밤에 누워 아침까지 혼자 잘 수 있는 일상을 뜻합니다. 그 단순한 자유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강태은 환우회 회장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희귀유전질환 당사자의 목소리는 청중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2018년 겨울 ‘GNE근육병’ 진단을 받았다. “진단 외에는 해줄 게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걷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은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임을 의미했지요.” 강 회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GNE 환우가 직면한 과제를 알리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를 빼앗는 병, GNE근육병
GNE근육병은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발끝이 끌리거나 계단을 오르기 힘든 걸음걸이 이상이 첫 신호다. 이후 팔, 손, 목 근육이 점차 약해져 움직임이 제한된다. 다행히 심장이나 호흡근 기능은 일반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결코 안전한 질환은 아니며, 한 번 발병하면 평생 진행을 막기 어렵다.
원인은 GNE 유전자 변이다. 세포 보호 성분인 시알산(Sialic Acid) 합성을 조절하는 설계도 역할을 하는 GNE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시알산이 잘 만들어지지 않고, 근육세포 표면의 단백질도 불완전해진다. 결과적으로 근육세포의 기능 장애와 퇴화를 불러온다.
환우회의 발걸음은 순탄치만은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적 한계다. 회원들은 매달 5000원의 회비를 내지만, 이 재원만으로는 환우 지원이나 질환 홍보를 이어가기 역부족이다. 외부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법적 지위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환우회는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추진했으나, 회원 수가 적어 공익성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강 회장은 “소수 질환 환우라는 특성 때문에 제도권 안에서 인정받기 힘들다”며 “제도적 장벽이 결국 환자의 목소리를 막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 회장은 이날 발표에서 환자와 가족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초대 회장(故 이지민)을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 자신의 현재, 미래와 꿈을 접어야 했던 환우들의 삶. 그는 “우리가 잃은 것은 단지 근육의 힘이 아니라 자유”라며 “국가 차원에서 질환을 알리고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한 복지제도의 모순을 지적했다. “국가에서 정한 기준에 맞추려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환자는 독립적인 생활이 어렵고, 가족들 역시 일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상실된 자유와 시간을 누가 되돌려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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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길, 환우와 연구자의 연결고리
강 회장은 진단 이후 환우회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GNE근육병환우회는 2016년 8월 양산부산대병원 신경과 신진홍 교수의 제안으로 설립됐다. 초기 멤버는 불과 5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내 겨우 20여명이 모였다.
그해 10월 첫 모임을 열었고, 2017년에는 회원 50명을 넘어 비영리 민간단체로 승인받았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국제 NDF 심포지엄에도 참가해 세계 환우들과 연대했다.
2020년 기준 환우회 소속 환자는 100여명. 매년 정기총회와 클리닉을 개최하고, 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신용범 교수, 신경과 박영은 교수 등 여러 분야 교수진들과 협력해 질환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 출연과 리플렛 제작 등 질환 홍보에도 적극 나서며 사회적 인식 확산에도 노력 중이다. 언젠가 찾아올 치료제 개발과 환자의 치료 기회를 앞당기기 위한 희망의 불씨를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다.
희망의 불씨가 커지고 있다. 환우회는 국내 연구자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임상시험 참여를 독려해왔다. 비록 아직 상용화된 근본적인 치료제는 없지만, 연구자 임상을 계기로 바이오 기업 ‘뉴라진(Neuragene, 대표 김리라)’이 설립돼 신약개발이 본격화됐다.
강 회장은 “이 모든 것은 기적이자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결실”이라며 환우와 연구자, 기업이 함께 맺은 연대의 의미를 강조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연구자들과 의료진은 강 회장의 목소리에 깊이 공감했다. 희귀유전질환심포지엄조직위원회 박범준 조직위원장(피알지에스앤텍 대표)은 “환우들이 왜 약이 빨리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 현실이 늘 가슴 아프다”며 “그 질문 하나하나가 연구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환자들의 시간을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연구자들이 하루라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절실함을 느낀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환자 곁을 지키겠다”고 전했다.
한편,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은 부산 벡스코에서 22~23일 양일간 진행됐다. ‘Thinking, Moving, Sensing Freely!’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희귀유전질환 기초연구 △신약 후보물질 발굴 및 임상개발 △인허가 전략 △환자단체의 역할 등 4개 세션, 15개 강연을 통해 최신 연구 성과와 정책 과제가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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