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깨서 먹어요”…환자의 위험한 선택, 해결 실마리는 ‘크기 규제’
동국대 학생들, 규제과학 경진대회서 환자 친화적 고형제 개발 위한 정책 제안…복합제 라벨링 의무화도 포함
초고령사회 맞춤형 규제안 등장…국내도 EMA·FDA처럼 삼킴 편의성 고려한 고형제 기준 필요
복약 편의성 높이려다 크기만 커진 약…삼킴 부담·부작용 가능성 제기, ‘서방정·복합정’ 기준 마련 절실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7-18 06:00   수정 2025.07.18 08:35
제3회 규제과학 연구 우수제안 경진대회에 ‘꿀꺽팀’으로 참여한 동국대학교 신승혁 학생(왼쪽)과 박건량 학생(오른쪽)이 발표를 마친 후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환자의 목소리에 규제로 응답하는 세상, 규제정책과 규제과학의 미래를 함께하겠습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연하곤란(삼킴 장애)을 겪는 고령 환자들의 약물 복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 방안이 제안됐다.

동국대학교 식품의료제품 규제정책학과 소속 신승혁 학생과 박건량 학생은(동국대학교 꿀꺽팀) 환자 친화적 경구용 고형제 개발을 위한 기준 수립과 라벨링 의무화를 제안하며, 규제 과학의 실현 가능성과 필요성을 현장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17일 제3회 규제과학 우수제안 경진대회에서 발표된 이번 정책 제안은 ‘환자 친화성 향상을 위한 경구용 고형제 권고 크기 및 경고 문구 도입’을 골자로 한다. 발표를 맡은 신승혁 학생은 “65세 이상 인구가 2024년 기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알약을 삼키기 어려워 약 복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러한 복약 순응도 저하 문제는 단순한 개인 차원을 넘어 공중보건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꿀꺽팀은 독일과 호주의 연구 사례를 인용하며 고령 환자들이 약을 삼키기 어려워 약을 임의로 분할하거나 분쇄해 복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문가와 상의하지 않는 비율도 절반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환자의 복용 안전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의 핵심은 ‘알약의 크기’다. 미국 연구에서는 고령 환자들이 약 삼킴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으로 크기를 꼽았으며, 일본 연구에서는 장축 길이가 8mm(원형) 혹은 17mm(타원형)를 초과할 경우 환자의 삼킴 불편감 및 면화 보고가 급증한다고 분석됐다.

특히 세 가지 성분을 하나로 합친 당뇨병 복합제가 17.5mm에 이르는 장축 길이로 인해 오히려 복약에 부담이 되고, 서방정 특성상 잘못 복용 시 부작용 위험까지 높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동국대학교 신승혁 학생과 박건량 학생이 소속된 ‘꿀꺽팀’이 대상을 수상했다. (왼쪽부터) 박인숙 한국규제과학센터장, 박건량 학생, 신승혁 학생.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해외 규제기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유럽의 EMA는 크기, 모양, 코팅이 삼킴 용이성에 미치는 영향을 가이드라인에 명시하고 있고, 복합제 크기 증가에 대한 우려를 함께 제기했다. 미국 FDA는 제네릭이 대조약보다 커지지 않도록 권고하고, 최대 크기는 22mm 이하로 제한한다. 호주 TGA는 ‘큰 정제’라는 경고 문구와 실물 크기를 라벨에 표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관련 가이드라인이 미비한 상황이다. 허가 심사 시 제형의 물리적 특성 자료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지만, 크기에 따른 환자 복용 편의성에 대한 기준은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꿀꺽팀은 두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첫째, 개발 초기 단계에서 권고 크기를 제시하여 제약사가 환자 친화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둘째, 시판 중이거나 예외적으로 큰 고형제에 대해서는 경고 문구 및 실물 크기 라벨링을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실증적 데이터도 제시됐다. 발표팀은 식약처의 식별 정보 데이터를 분석해 경구 고형제 2만여 개를 정제하고,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주요 만성질환 치료제 3700여 품목을 ATC 코드 기준으로 추출했다. 이 중 37.9%가 삼킴 용이성 측면에서 부적절하거나 우려 수준으로 평가됐다. 특히 서방형 복합제나 연질 캡슐은 부적절 평가가 80%를 넘기도 했다. 분석 대상 약물 중 94.5%는 원형 정제로, 원형 정제 역시 크기에 따라 연하곤란을 유발할 수 있는 새로운 잠재 요인으로 지목됐다.

마지막으로 꿀꺽팀은 구체적인 권고안도 함께 제시했다. 제형별·형상별 권고 크기를 설정하고, 이를 준수하지 못하는 제품에는 경고 라벨링을 부착토록 하며, 복합제 개발 시 기존 제품 대비 복약 순응도가 향상됐음을 입증하는 추가 데이터 제출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신승혁 학생은 “고령층이나 소아 등 취약계층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임의 분쇄로 인한 부작용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며 “이는 환자의 안전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의료비 절감과 제약 산업의 질적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제시했다.
“환자의 목소리에 규제로 응답하는 세상, 규제정책과 규제과학의 미래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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