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서 출발한 '푸디피케이션', 글로벌 브랜드 전략 됐다
감각 중심 마케팅 확산…‘푸드처럼 보이고 발리는 화장품’이 핵심
박수연 기자 waterkite@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7-08 06:00   수정 2025.07.08 06:01
ⓒDALL-E

‘탕후루광 피부’ ‘딸기 소녀 메이크업’ '글레이즈드 도넛 립' 등 푸드와 결합한 뷰티 트렌드가 지난해부터 글로벌 뷰티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푸디피케이션(Foodification)'이 K-뷰티의 콘셉트에서 비롯됐으며,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뷰티 전문 매체 뷰티매터(Beautymatter)는 최근 "푸드 콘셉트의 뷰티는 더 이상 귀엽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감각을 설계하는 브랜드 전략이며, 스토리텔링의 다음 단계가 됐다"고 진단하면서, 이 트렌드의 기원을 K-뷰티라고 분석했다.

틱톡에서 '글레이즈드 도넛 스킨'은 15억회 이상 조회됐고, '딸기 소녀 메이크업' 튜토리얼 영상 하나로도 4510만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미국 트렌드 조사기관 스페이트이트(Spate)에 따르면 디저트 향을 콘셉트로 한 뷰티 제품에 대한 검색량은 전년 대비 182.1% 증가했다. 음식처럼 보이고 냄새 나고 발리는 화장품이 미의 기준을 재편하고 있는 셈이다.

푸디피케이션 트렌드의 발원지를 'K-뷰티'로 지목한 뷰티매터는 K-뷰티가 이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출시한 스킨케어 브랜드 글로우 레시피(Glow Recipe)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크리스틴 창(Christine Chang)은 "한국은 뷰티와 식품 원료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고, K-뷰티의 부상과 함께 서구 브랜드들이 이 철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창 대표는 한국 스킨케어가 여러 세대에 걸친 '셀프 케어'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릴 적 우리는 세안 후 우유를 얼굴에 끼얹고, 곡물과 꿀로 만든 마스크를 사용했으며, 식물을 우려낸 탕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면서, 음식과 피부 건강의 연관성에 주목해 왔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신은 글로우 레시피의 과일 파워 세럼과 토너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글로우 레시피는 현재 미국 내 시장점유율 기준 상위 10대 스킨케어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식품에서 유래한 원료와 감각 중심 전략은 K-뷰티의 확산과 유행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뷰티매터는 K-뷰티가 현재 서구 시장에서 제2의 성장기를 맞고 있으며, 2032년까지 약 292억80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푸디피케이션이 글로벌 트렌드로 확산된 배경엔 사회문화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문화 평론가 제시카 디피노(Jessica DeFino)는 뷰티매터와의 인터뷰를 통해 "'모든 몸은 좋은 몸'이라는 인식이 '아직 좋은 피부는 없다'는 방향으로 옮겨갔다"고 분석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체형을 문제 삼는 광고는 줄어든 반면, 피부 상태를 기준 삼는 메시지는 오히려 강화됐고, 그 결과 건강한 피부를 도넛이나 젤리 같은 디저트에 비유하는 흐름이 나타났다는 것.

디피노는 체중감량 치료제로 주목받는 GLP-1 계열 약물의 확산도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고 봤다. "식욕이 줄어들며 실제 쿠키나 케이크를 먹는 일은 줄었지만, 그 대신 립글로스와 보디크림 형태로 디저트를 소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푸디피케이션을 감각 중심의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음식의 형태와 향·질감을 반영하고, 시각·후각·청각까지 자극하는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K-뷰티 브랜드 라네즈는 뉴욕 도심을 도넛 매장처럼 꾸민 팝업 밴을 통해 ‘글레이즈 크레이즈 틴티드 립 세럼’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유튜브 단일 영상만으로 경쟁사 평균보다 1100만회 이상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도넛 위로 올라간 딸기 스프링클과 블루베리 젤리’를 형상화한 향과 비주얼로 SNS상에서도 높은 참여율을 끌어냈다.

글로시어는 체리와 브랜드 로고를 결합한 케이크를 제작해 SNS 콘텐츠로 활용하고, ‘에스프레소 밤 닷컴’ 출시와 함께 티라미수를 연상시키는 ASMR 비주얼을 선보였다. 네이티브는 던킨도너츠, 자리토스, 바하버스트 등 푸드 브랜드와 협업한 디오도란트를 출시해 일부 품목은 완판되기도 했다.

영국의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 엘레미스(ELEMIS)도 감각 중심 마케팅에 적극 나섰다. 엘레미스는 최근 신제품을 출시하며 잼과 베리를 연상시키는 향수 어린 이미지, 따뜻한 조명과 편안한 사운드 등 ‘컴포트 푸드’를 테마로 한 콘텐츠를 통해 감각 회복과 정서적 위안을 동시에 자극하는 전략을 앞세웠다.

뷰티매터는 “뷰티 속 음식은 강력한 스토리텔링, 과학, 그리고 자기표현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며 “성분 이해도가 높아지고 커뮤니티 중심 마케팅으로 뷰티 시장이 변화함에 따라 푸드를 통해 투명성, 문화적 맥락, 감각적 즐거움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브랜드는 앞으로도 꾸준히 인기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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