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500억 달러 규모의 일본 제약업계에 대지진이 예고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日本經濟新聞)이 "일본 3위의 제약기업 야마노우찌社와 5위 메이커 후지사와社가 완전통합을 위해 협상을 진행 중에 있다"고 17일자로 보도했기 때문.
당초 양사는 "OTC 사업부문을 합쳐 2004년 10월까지 새로운 회사로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지난달 발표했었다. 이 경우 새 회사는 OTC 부문에서 일본 8위의 메이커로 랭크될 수 있으리라 전망되어 왔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양사에서 OTC 사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편이라며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양사는 "OTC 사업부에 대한 통합 추진은 완전통합 협상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보여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케 했다.
사실 후지사와·야마노우찌의 통합은 예전부터 잊을만하면 고개를 내밀곤 하던 '환상의 시나리오'로 회자되어 왔다는 지적이다. 양사의 통합이 성사될 경우 한해 9,200억엔(85억 달러; 2004년 3월말 기준)의 매출을 올리며 일약 다께다社에 이은 일본 2위·세계 18위의 초대형 제약기업으로 재탄생을 예약하는 셈이 된다.
시가총액 부문에서도 342억 달러의 다께다와는 다소 차지가 있지만, 159억 달러로 확고한 2위에 오르게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가 나온 직후 후지사와측은 "현재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야마노우찌와 내년 3월까지 합의점을 도출한 뒤 오는 2005년 초 통합을 완료한다는 목표로 협상을 진행한다는 시나리오도 그 중의 하나"라고 인정했다. 반면 야마노우찌측은 후지사와측과의 협상 진행사실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유보하는 반응을 보였다.
양사가 이처럼 엇갈린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애널리스트들은 "협상이 지극히 초기단계에 불과한 상황에서 외부로 노출된 것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양사의 합병이 최근 시장개방의 폭이 확대되고 있는 일본의 제약시장에서 신약개발에 따른 R&D 비용을 분담하고, 다국적제약기업들과 경쟁을 펼치는데도 한층 도움을 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 P. 모건 증권社의 미쯔오 오미 애널리스트와 UFJ 쓰바사 증권社의 가쯔히사 스기타 애널리스트는 "양사의 통합은 '환상의 결합'에 다름아니다"라고 입을 모아 평가했다. 야마노우찌의 경우 유럽시장 공략이 눈에 띄는 반면 후지사와는 미국시장에서 강점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보유제품 측면에서도 중복되는 부분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
야마노우찌는 염증과 비뇨기계 치료제 부문을 집중공략해 왔던 데 비해 후지사와는 면역억제제를 간판품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메릴 린치社의 마사타케 미요시 애널리스트는 "협상 초기단계에서 정보가 새어나온 것이 협상의 진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일급비밀'에 부쳐질 사안임에도 불구, 외부에 알려진 것은 의외라는 것.
실제로 일본의 제약업계에서는 그 동안 불거졌던 일부 통합추진 사례들이 갖가지 사유로 인해 성사에 이르지 못했었다.
가령 다이쇼社와 다나베社가 2001년 말로 예정했던 통합을 취소했는가 하면 합성섬유업체인 테이진社와 교린社는 통합시 지분률에 대한 의견차를 끝내 좁히지 못한 채 결렬을 선언했었다.
이와 관련, 일본의 제약업계는 다국적제약기업들의 진출에 따른 압력에 직면했던 지난 1990년대에도 빅딜급 M&A는 눈에 띄지 않았었다. 다만 스위스 로슈社가 쥬가이社의 최대주주로 등장하고, 美 머크社가 반유社를 인수했던 것 등이 고작일 정도.
그러나 도이치 증권社의 후미요시 사카이 애널리스트는 "야마노우찌와 후지사와의 통합이 성사될 경우 다른 제약기업들에게도 제휴 또는 통합의 필요성을 크게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기타 애널리스트도 "양사의 통합은 일본 제약업계에 M&A 붐을 가져오는 진원지로 상당한 여진을 몰고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후생노동省은 지난해 빅딜을 통해 향후 10년 이내에 2~3곳의 초대형 제약기업을 출범시켜 다국적제약기업들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10개년 플랜을 공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