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레브렉스', '조코', '넥시움'...
이처럼 낯선 이름들을 처음 대하고 나면 "도대체 무슨 뜻이야" 하는 의문에 생경스러움이랄까, 당혹감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알고보면 오늘날 각종 의약품들의 브랜드명은 단순한 이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시 말해 한 약물이 블록버스터 드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결정적으로 한 몫을 거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브랜드명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갈색 약병과 흰 알약 등으로 거의 천편일률적인 외양을 지닌 각종 의약품들을 차별화시키고, 환자들에게 그 존재를 좀 더 확고히 각인시키기 위해서도 작명(作名)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최근들어 부쩍 눈에 띄는 새로운 추세이다.
이달들어 화이자社는 간판품목들인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와 콜레스테롤 저하제 '리피토'가 유럽 제약기업들이 내놓은 경쟁약물들로부터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제품명을 환자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한 TV 광고 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와 바이엘社는 새로운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Levitra)를 내놓으면서 제품명칭에 "필수적"(vital)이며 "뜨는"(levitate) 의약품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암젠社의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Enbrel)에는 고통으로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는(enabling) 약물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스트라제네카社가 발매한 콜레스테롤 저하제 '크레스토'(Crestor)의 경우 "최고의 실적을 기록할" 제품이라는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스토'는 한해 200억달러대에 달하는 콜레스테롤 저하제 시장에서 '리피토'와 한판승부가 예상되는 기대주.
전문가들은 신제품들의 라이프사이클이 갈수록 단축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처럼 환자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새삼스런 현상은 아니라는데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97년 미국에서 소비자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DTC(Direct-To-Consumer) 광고가 허용되면서부터 제약기업들의 작명방법에 엄청난 변화가 뒤따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오늘날 세계 '톱 10' 의약품들 가운데 6개 제품명을 작명한 곳으로 알려진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 우드社의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 레베카 로빈스는 "불과 수 년전만 하더라도 각종 의약품들의 마케팅은 순전히 처방권자인 의사들을 타깃으로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반적으로 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작명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계기는 인터넷의 보급과 DTC 광고의 허용이라고 로빈스는 강조했다. 제품유형에 따라 다소의 예외가 있을 뿐이라는 것.
따라서 해당질병이나 약물 자체의 작용기전에서 실마리를 찾던 작명패턴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구닥다리 방식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또 '비아그라', '푸로작', '클라리틴' 등의 경우처럼 TV 시청 골드아워대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내보냈던 것이 제품의 인지도 확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시장조사기관 에른스트&영社에 따르면 유럽인들의 경우 3명당 1명은 특정한 브랜드명 의약품을 처방해 줄 것을 의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미국과 대동소이한 양상을 보였다.
일부 의사들은 이로 인해 처방전 작성과정에서 본연의 권한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정도라는 후문이다. 유럽 각국이 아직까지 DTC 광고를 허용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눈길이 가게 하는 현실인 셈.
그러나 제약기업들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이 같은 현실은 성공적인 작명과정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는 대목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엄청난 R&D 비용을 조기에 보전받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에 매출을 피크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다 제한적인 특허보호기간 내에 이익창출을 최대화하고, 제품 자체의 라이프사이클을 연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많은 제약기업들이 특허만료 후 제품의 지위를 OTC로 스위치시키고 있음을 상기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
그러나 각종 의약품들의 작명과정에는 나름대로 엄격한 룰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의약품들에게 처음으로 부여되는 이름은 단순한 코드부호(code)이다.
가령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작명기준에 따라 로수바스타틴이라는 제네릭 네임을 얻기 전까지 '크레스토'의 아명(兒名)은 'ZD4522'였다.
기존에 발매 중인 경쟁약물들과의 혼동을 방지하고, 왜곡된 의미전달을 막아야 한다는 것도 제약기업들이 작명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불문률로 꼽히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의약품 허가 주무당국의 심사를 거치면서 처음 제출되었던 브랜드명의 35~40% 정도가 반려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
예를 들면 항궤양제 '로섹'(Losec)은 이뇨제 '라식스'(Lasiz)와 혼동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후문이다. 원인은 처방전에 휘갈겨 쓴 의사들의 필체.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A'로 시작되는 브랜드명의 경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많은 의사들이 처방가능한 의약품들의 목록을 살필 때면 (알파벳 순서상) 가장 먼저 눈에 띄기 때문이라는 것.
아울러 '조프란'(Zofran)이나 '제니칼'(Xenical), '발사이트'(Valcyte) 등 'Z'나 'X', 'V' 등으로 시작되는 브랜드명은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관계로 눈에 확 띄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