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이 체내에서 항생제에 의해 감지되지(detected)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변신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최초로 규명됐다.
요로감염증이 재발한 고령층 환자들을 대상으로 첨단기술을 적용해 연구를 진행한 결과 세균들이 세포벽을 스스로 파괴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세균들이 세포벽이 부재한 L-자형 전환(L-form switching) 상황에서도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세포벽은 체내에서 항생제들이 작용하는 주요한 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뉴캐슬대학 의과대학 세포‧분자생물학연구소의 카타르지나 M. 미츠키에비치 박사 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誌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誌에 26일 게재한 ‘재발성 요로감염증에서 L-자형 전환의 역할 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와 관련,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을 오늘날 지구촌이 직면하고 있는 건강, 식량안보 및 연구‧개발상의 최대 위협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츠키에비치 박사는 “마치 세균들의 세포벽이 눈에 잘 띄는 재킷을 입은 것과 같은 상태를 상상해 보라”고 언급했다.
세균들이 막대 또는 구체(球體)와 같이 일반적인 형태를 나타내는 것은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이 경우 사람 체내의 면역계와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들에게 감지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연구를 진행한 결과 항생제가 체내에 투여되었을 경우 세균들이 세포벽으로 둘러싸인 형태에서 완전히 무작위적이고 세포벽이 없는 L-자형 상태로 변신할 수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미츠키에비치 박사는 강조했다.
비유하면 세균들이 재킷을 벗어던지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감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되면 체내에서 세균들이 쉽사리 감지되지 못해 면역계 뿐 아니라 항생제들도 공격할 대상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미츠키에비치 박사는 설명했다.
미츠키에비치 박사팀은 뉴캐슬 프리맨 병원과 제휴로 샘플을 확보해 연구를 진행한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앞서 뉴캐슬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학술저널 ‘셀’誌에 게재한 보고서를 통해 사람들의 면역계도 어느 정도 L-자형 전환을 유도할 수 있지만, 항생제 치료가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요로감염증 환자 30명 가운데 29명에서 대장균, 장내구균, 엔테로박터 및 포도상구균 등 요로감염증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세균들의 L-자형 전환을 확인한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한편 미츠키에비치 박사팀은 요로감염증 환자들로부터 분리한 L-자형 세균들로부터 항생제 복용 후 5시간이 경과해 체내에서 약효가 소실된 후 세포벽이 재형성된 영상을 최초로 확보하는 성과까지 도출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열대어류의 일종인 투명한 제브라피쉬 모델을 직접 현미경으로 관찰해 L-자형 전환이 실험실 내 가상조건하에서 뿐 아니라 실제 생명체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미츠키에비치 박사는 “건강한 환자일 경우 L-자형 전환이 나타난 세균들이 숙주의 면역계에 의해 파괴될 수 있지만, 건강이 약화되었거나 고령층에 속하는 환자들의 경우 L-자형 전환이 나타난 세균들이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에는 세균들이 세포벽을 재형성시켜 환자들로 하여금 또 다른 감염증에 직면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의사들은 복합요법제를 적극 검토해 항생제가 다른 유형의 숨겨진 L-자형 전환이 나타난 세균들의 세포벽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미츠키에비치 박사는 피력했다.
그렇게 하면 세균 내부의 RNA나 DNA 또는 세포막 주위를 표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