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2주년 맥을 잇는 민족기업 ‘동화약품’
혼돈의 국내 제약 산업에도 모범사례로 귀감
손정우 기자 s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7-08-15 07:00   수정 2007.08.14 22:36

광복 62주년….
광복절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고, TV에서도 3ㆍ1운동이나 상해임시정부 같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그러나 제약기업인 동화약품에 독립운동의 핵심 거점이었던 상해임시정부 비밀연락기관이 있었고, 창업주를 비롯한 역대 사장 3명이 투철한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당시 동화약품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동화약품에 상해임시정부 비밀조직이??

동화약품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인연이 닿는 이유는 초대사장인 민강(1883~1931) 선생(왼쪽 사진) 스스로가 독립투사였기 때문이다.

민강 선생은 1909년 당시 안희제, 윤세복, 서상일, 김동삼 등 80여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대동청년당을 조직, 국내외에서 민족을 위해 지하공작을 감행하고 남대문에 소의학교(현 동성중고교)를 세우고 2세 교육에 힘썼다.

이런 와중에 경술국치를 당하자 민강 선생은 여러 동지들과 함께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결의를 하고, 1919년 3.1 운동을 거치면서 비밀결사조직인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게 된다.

대동단은 제1차 행동으로 의친왕 이강 공(李堈 公)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탈출은 압록강 건너 안동 역에서 실패로 끝나고 민강 선생도 이 일로 1년 6개월의 옥고를 겪는다.

이 기간 중 동화약품에는 비밀리에 서울연통부(聯通府)가 설치된다. 서울연통부는 1919년 7월 상해임시정부가 시행한 비밀연락 행정의 첫 조치로, 국내외 연락을 위해 서울에 설치한 비밀 행정부서였다.

연통부는 1922년 일제에 의해 전국조직이 발각되기 전까지 국내 각 시ㆍ도ㆍ군ㆍ면에 조직을 갖추고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활약을 했다.

이 같은 동화약품의 활동은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서울시에서 동화약품 본사 부지에 연통부 기념비(윗 사진)를 설치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민족 자주경제와 독립을 위한 쉼 없는 노력

동화약품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5대 사장 보당 윤창식(1890~1963) 선생(오른쪽 사진) 역시 자주경제와 민족독립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윤창식 선생은 보성고등보통학교 및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 상과 졸업 후, 일제치하에 민족 자주경제 발전을 위해 국산품 애용을 장려할 목적으로 1915년 3월 항일비밀결사조직체인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했다.

총무에 선출된 윤창식 선생은 육당 최남선, 최규익 등과 함께 민족혼을 고취하고, 국산품 애용운동을 펴다가 1917년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또한 조선독립운동 국내 기간단체였던 신간회(新幹會)의 간부로서 조국광복운동에 힘쓰는 한편, 1937년에는 민족보건산업의 육성을 위해 당시의 동화약방을 맡아 사명을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개명하고 현대적 기업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 부위원장 활동과 함께 서울시의원, 숙명여자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과 자선사업단체인 보린회(保隣會) 창립 등 여러 직책을 맡아 교육 분야로도 활동의 폭을 넓혔다.

윤창식 사장의 대를 이어 윤광렬(1924~ ) 現 회장(왼쪽 사진)도 광복군으로 활동했었다.

윤 회장은 유년시절부터 선친의 독립운동 활동을 계속 지켜보면서 애국, 구국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실천했다.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 1944년 일제에 의해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됐지만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패망하자마자 탈영, 자발적으로 주호지대(駐戶支隊) 광복군으로 편입해 중대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처럼 동화약품은 민족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우리민족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사명감과 긍지로 국내 기업사의 전무후무한 110년 역사를 이어왔다고 할 수 있다.

 

◇ 동화약품의 역사…위기의 제약 산업에도 귀감

110년간의 동화약품의 역사는 각종 제도 변화 및 환경 변화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지금에 국내 제약 산업 판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국내 제약 산업은 의약분업 이후 ‘약제비 적정화 방안’, 한ㆍ미 FTA 협정 등으로 ‘유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화약품이 이윤추구보다는 민족독립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풍전등화와 같았던 일제강점기에 모진 풍파를 겪으며 제약업의 기틀을 세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동화약품이 110년간의 역사 속에서 받아온 시련과 도전, 그리고 뚜렷한 신념으로 지금의 동화약품으로 계승 발전시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재 제약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결정적 힌트’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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