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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신약 후보물질 탐색부터 분자 설계, 효능·독성 예측, 임상까지 연구 전 과정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무엇을 연구하고 어디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첫 질문’은 여전히 과학자의 몫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특히 AI 활용이 앞서 있는 약학 분야에서 다음 80년의 혁신을 위해서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를 넘어, 연구자가 스스로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21일 열린 대한약학회 창립 8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특별초청강연에서 ‘The Power of the First Question: Pharmaceutical Research in the Age of AI’를 주제로 AI 시대 과학과 약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했다.
정 원장은 현재 과학계가 AI에 따른 연구방식의 변화와 과학기술 인재 감소·유출, 연구개발(R&D) 시스템 변화라는 복합적인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가운데 AI는 과학자가 연구하는 방식 자체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AI는 문헌 탐색과 가설 생성부터 후보물질 설계, 자율실험, 데이터 분석에 이르기까지 연구 전 과정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단백질 구조 예측처럼 오랜 기간 해결하기 어려웠던 과학적 문제를 푸는 데도 AI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AI가 연구의 속도와 범위를 크게 확장하더라도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까지 대신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AI가 굉장히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연구 전체를 어느 방향으로 가져갈지는 역시 과학자들이 정한다”며 연구자가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국내 R&D 시스템에 대한 제언으로도 이어졌다. 연구비 규모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연구자가 스스로 중요한 문제를 찾고 장기간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한국의 R&D가 정부가 전략과 과제를 정하고 연구자가 이에 맞춰 참여하는 방식에 상대적으로 무게가 실려 있다고 짚었다. 정부 주도 방식은 특정 분야에 신속하게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기 전략과제에 연구가 집중되거나 연구자가 자신의 질문보다 공고에 맞는 연구주제를 찾게 되는 한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국가 차원의 연구 방향은 정부와 과학계가 함께 설정하되, 구체적인 질문과 탐구는 과학자가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초연구와 응용·산업연구의 관계 역시 분절된 단계가 아닌 순환구조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과학의 발견이 산업적 혁신으로 이어지고, 응용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가 다시 새로운 기초연구로 연결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장기간 축적이 필요한 연구의 특성을 고려해 정책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지원도 주문했다.
과학기술 인재 문제에 대해서는 단순한 ‘유출 방지’보다 국내외를 오가며 경험과 네트워크를 축적하고 다시 국내 연구생태계와 연결되는 순환구조에 무게를 뒀다. 저출생에 따른 인재풀 감소와 박사 인력·산업계 일자리 간 미스매치 등을 고려할 때 국내 인재 양성에서 해외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 국내 귀환·정착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이어 이 같은 논의를 ‘약학의 다음 80년’으로 연결했다.
그는 약학을 AI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학문 분야 중 하나로 꼽았다. 분자 설계와 후보물질 탐색, ADME와 안전성·독성 예측부터 임상과 시판 후 감시에 이르기까지 약학과 신약개발의 다양한 단계에 이미 AI가 활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국내 신약개발에서는 AI를 이용한 설계·예측 역량과 실제 임상데이터 사이를 연결하는 영역에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짚었다. AI 알고리즘의 발전만큼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자의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페니실린과 mRNA 연구 등을 사례로 들며 과학의 주요 발견 역시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발견은 주어진 문제의 답을 빠르게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에게는 눈앞의 현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야와 함께 분자에서 환자, 나아가 사회까지 연결해 바라보는 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단기간의 성과를 요구하기보다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기다려줄 수 있는 환경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약학 현장에서 제기되는 질문이 국가 과학기술 의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학계와 과학기술한림원 간 논의와 정책적 소통을 확대하고, 차세대 약학자들이 국제 연구무대와 연결될 수 있는 기회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원장은 “첫 질문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나치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며 “분자에서 환자와 사회까지 바라보는 통합적인 시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간 축적되는 과학자의 연구를 기다리고 지원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첫 질문’을 잘 던지는 연구자가 다음 80년의 약학을 만들어갈 것이라는 메시지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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