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르탄·라니티딘 등 불순물 사태를 겪으며 현행 '의약품 피해구제제도' 대상에 위해 의약품을 추가하는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국회 검토과정에서도 복잡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는 제도 취지와 사회적 협의, 법적 배상책임에 대해 진행중인 제약-정부간 소송 결과도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위원회 홍형선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복지위에 상정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정문 의원 대표발의)'에 대해 이같이 검토했다.
개정안은 현행의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사업을 의약품 '위해 및 부작용' 피해구제사업으로 변경하면서, 의약품 '위해 가능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구제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피해구제급여 항목에, 위해 가능성으로 인해 의약품을 회수할 경우 발생하는 재처방‧재조제 및 의약품 교환 비용과 환자부담비용을 신설하도록 했다.
검토보고서 정리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외국에서 위해가능성 있는 불순물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진 원료의약품(’18.7. 발사르탄, ’19.9. 라니티닌, ’19.10. 니자티딘)에 대해 선제적 제조‧판매 중지, 처방‧조제 차단을 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해당 의약품별 위해가능 물질(NDMA) 관리기준은 사전에 규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특히 발사르탄 사례의 경우 식약처가 인체 영향평가를 실시한 결과, 재처방‧재조제 조치했던 발사르탄 의약품들의 위해성은 무시가능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요양기관(병원·약국)의 협조를 통해 환자들이 본인부담금 부담 없이 재처방‧재조제, 환불(일반의약품)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위해가능 물질의 함유에 책임이 없는 요양기관들이 재처방‧재조제‧환불에 소요되는 경제적 비용(본인부담금 부분)을 부담하게 됐다.
또한 재처방‧재조제 시 건강보험 부담금을 우선 부담한 건강보험공단은 이후 해당의약품의 제조‧수입업체에 구상 청구했는데, 7개 제약사는 이에 응해 배상한 반면, 36개 제약사는 귀책사유 없음을 근거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해 소송이 계속 중인 상황이다.
홍형선 수석전문위원은 "해당 의약품의 위해성과 제조업자‧수입자 등의 귀책사유(고의‧과실)가 밝혀진다면 재처방‧재조제 비용에 대한 최종적인 법적 배상책임은 '제조물책임법'과 '민법'에 따라 제조업자‧수입자 등이 부담하게 될 것이나, 결과적으로 위해성이나 귀책사유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는 적용할 수 있는 비용부담 체계는 제도적으로 미비돼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에 "현재 위해가능성 의약품에 대한 재처방·재조제에 따른 후속조치 비용과 관련해 제도가 미비해 이에 대한 법적 체계를 마련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서도 "정상적인 의약품 사용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 피해(질병‧장애‧사망) 보상을 위한 현행 부담금 제도와, 위해가능성 의약품에 대한 행정조치로 발생하는 비용분담 제도는 부담금의 설치목적‧용도‧부과요건‧지급요건 등을 달리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제도의 도입 필요성과 구체적 내용(부담주체, 부담비율, 관리절차, 보상범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사항"이라며 "2019년 하반기부터 정부와 관련 민간단체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사회적 비용보전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향후 협의 결과를 개정안 심사에 고려할 필요가 있고, 법적 배상책임에 관해 진행 중인 관련 소송의 결과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용분담의 문제상황은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위해 가능성' 판단에 기초한 제조‧판매중지, 회수조치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사회적 협의 과정을 통해 '위해 가능성' 의사결정의 구조‧기준‧절차를 합리화해 정책판단의 객관성과 정책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법안에 대해서는 민관협의체에 소속된 대한의사협회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의견을 전달했는데, 그 내용이 대립점을 이뤘다.
의사협회는 찬성 입장을 내면서 "라니티딘 등 의약품 원료의 불순물 함유 사태 발생은 근본적인 책임이 제약사·수입사와 식약처에 있음에도 의료기관이 환자의 항의를 감수하며 정부의 안내에 따라 재처방·교환 등을 감당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이에 "재처방·재조제·교환에 따른 건강보험 발생 비용과 환자부담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피해구제급여 항목을 신설하는 해당 법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약바이오협회와 KRPIA는 "'위해' 의약품을 사용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 현행 법령상으로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며 "부작용 피해구제급여 재원을 '위해 가능성'있는 의약품 회수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부담금의 재정상 위험을 야기해 본래 목적 달성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는 의약품을 정상적으로 복용했음에도 부작용이 발생했으며, 의약품을 공급한 제약사 및 의약품을 처방‧조제해 준 의사나 약사에게도 과실이 없는 경우에 처한 피해자를 구제할 필요가 있어 도입된 제도이다.
이에 따라서 검출된 물질의 실제 위험성에 반드시 상응하지는 않는 정부의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지출된 재처방·재조제 비용을 보상하는 것은 부작용 피해를 입은 국민을 지원하기 위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들 협회는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급여 사용범위와 의약품에서의 비의도적 유해물질 검출에 대한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 개정안의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비의도적 불순물 혼입 등으로 인한 의약품 재처방·재조제료 등의 비용 보상이 필요하다는 개정안 입법취지에 동의한다"며 "다만 동 개정안에서 제시하는 내용 이외에도 비용부담 주체, 부담금의 운영 및 관리 절차, 보상 범위, 지급절차 등에 관한 내용이 추가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국회 검토의견에 동의하는 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