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신포괄수가제(신DRG)와 관련해 통계청이 관리하고 있는 우리나라 질병분류체계(KCD) 재편, 질환 중증도별 세분화된 수가 적용, 비포괄 약제·치료재료 80% 보상 개선 등의 의견이 개진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오제세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행정안전위원장 전혜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주최한 ‘의료서비스 지불방식 정책변화와 의료산업 혁신의 지속가능성’ 토론회가 22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렸다.
미국·독일·호주, DRG·행위별 수가제 병행
이 자리에서 가톨릭대학교 예방의학과 김석일 교수가 ‘신포괄수가제의 환자분류체계’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신포괄지불제도 시범사업 실시 배경은 행위별보상제도의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는 의료계를 대상으로 기존의 포괄수가(DRG) 방식의 확대는 곤란하다는 판단 때문인데 이는 그룻된 배경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석일 교수는 “미국, 독일, 호주 등 포괄수가제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행위별 수가제를 사용한다. 또한 포괄수가제는 병원서비스에 대한 지불방법인데 우리나라는 의원도 포괄수가제 포함된다”며 “가장 좋은 지불제도는 없다.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지불제도를 혼용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재 통계청 고시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를 보건복지부가 빌려서 사용하는 이상한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질병분류체계(KCD)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면서 “신포괄수가제는 중증도 보정을 위한 기전을 사용할 수 없다. 합병증이나 동반질환 발생 등 다양한 변수를 반영할 수 없다. 연구결과 중증도가 제대로 반영된 경우 전체의 19.03%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
김석일 교수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신포괄수가제도를 위해선 원가 기반, 안정적인 환자분류체계, 적정수가 등 세가지가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충족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어떤 요소도 충족되지 못한 상태”라며 “관련해서 의료계에서 요구한 개선 계획은 있으나 2022년 이후의 계획이 없고 이해당사자인 의료계와 협력을 위한 투명성이 없다. 제대로 된 분류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가 치료재료 80% 보상, 병원 손실 불가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산부인과 이산희 교수가 ‘수술하는 의사로서 바라본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지불정책’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부인과질환에서 여러 가지 장점으로 단일공 복강경 수술을 주로 하고 있는데 고가의 일회용 장비들을 사용하는데 수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새로운 의료기구·재료를 사용해 수술할 경우 치료재료에 대해 80%만 보상해 병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산희 교수는 “새로운 수술 방법은 행위에 대해 평가 가능한 객관적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워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기 어렵고, 기존의 비슷한 행위를 인용해 수가를 산정해 행위의 난이도와 수술 결과의 장점이 반영되지 않는다”며 “새로운 기구나 재료의 경우 대부분 고가로 책정돼 있고 신의료기술로 잘 인정되지만 DRG 수가 체계 안에서 별도로 보상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수술방법에 대해선 수술 행위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통한 타당한 수가 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새로운 의료기구나 재료의 경우는 전체적인 단가를 낮추려는 것보다 외국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의료·바이오 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새로운 기기 개발 및 사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이제는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의료수가를 통제하고 기관별 의료의 질을 평가해 적정 진료를 하도록 하고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줄이자에서 더 나은 진료환경을 위해 의사 스스로 노력하게 하는 의료수가 환경을 만들고 특정 진료에 대해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이 타당함을 이해시키도록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센티브 성격 정책가산, 기관 확대 후 축소 등 우려”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차재명 교수가 ‘신포괄수가제의 현황 및 의료계 건의사항’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신포괄수가제는 수가에 비해 정책가산의 비중이 큰데, 앞으로 참여기관이 늘어날수록 정책가산이 줄어들 여지가 크다”며 “이를 수가에 포함될 수 있도록 수가체계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재명 교수는 “신포괄수가제에서 비포괄 약제·재료 지불액을 80%로 산정하고 있다”며 “골유합 및 골절고정용군·인공관절군 등 비포괄 치료재료의 경우 변동계수가 크기 때문에 과용 및 남용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항암제, 투석액 등 비포괄 약제도 대부분 과소비가 일어나기 어렵다. 80%로 산정한 근거가 상당히 약하다”고 언급했다.
차 교수는 염증성장질환(크론병, 궤양성 대장염)을 예로 들어 신포괄수가제 지불방식에서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그는 “염증성장질환의 경우 사용약제가 고가임에도 1회 투여량이 아니라 1바이알로 가격 기준이 산정돼 있기 때문에 고가약제의 비포괄 적용 조건(100만원 초과)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기본수가 결정시 적용된 일산병원, 서울의료원, 부산의료원의 관련 약제 처방건수가 대표성을 띄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기본수가 산출병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염증성장질환은 같은 질환이라도 심한 진료비 차이를 보여 질환의 표준화가 어렵다”며 “진단방법, 치료방법, 예후, 의료자원 소모가 상이하고 다양한 약물 치료와 수술이 혼재해 개인별로 진료비 차이가 크고 예측이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비포괄 약제·치료재료 80% 보상에 따른 을의 입장에 있는 관련 업체들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 제약·의료기기 분야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