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약 "안전장치 없는 비대면진료 제도화 안돼…시행규칙 철회해야"
초진 예외·약 배송 확대 앞서 중복처방 차단·처방전 확인 등 공공 시스템 구축 촉구
"취약계층 이용 실태·건보재정 영향부터 검증…약 배송 책임체계도 마련해야"
전하연 기자 │ haye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10-26 09:50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환자 확인과 중복처방·중복조제 차단 등 핵심 안전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초진 처방 예외와 약 배송 등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약사사회의 주장이 나왔다.

실천하는 약사회는 26일 성명을 내고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의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서 나타난 문제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안전 인프라 구축이 제도 시행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천약은 “이번 개정안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서 드러난 문제를 바로잡지 않은 채 초진 처방 예외, 약 배송, 플랫폼 이용을 제도권 안으로 대폭 끌어들이고 있다”며 “지금 해야 할 일은 확대가 아니라 지난 시범사업부터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비대면 환경에서는 본인확인과 기존 처방이력, 다른 의료기관의 진료내역, 중복처방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천약에 따르면 개정안은 초진 환자의 처방일수를 원칙적으로 7일로 제한하면서도 일정한 진료·처방 이력이 확인될 경우 1회에 한해 최대 30일까지 처방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단체는 해당 이력이 실제 대면진료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데다 다른 의료기관에서 이미 예외 처방을 받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공적 시스템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외 범위를 두는 것은 의료쇼핑이나 반복·중복 처방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처방전 전달 과정의 관리 공백도 문제로 꼽았다. 개정안은 시스템 장애 발생 시 팩스나 전자우편을 이용해 처방전을 전송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같은 처방전이 다른 약국에 중복 전달됐는지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천약은 비대면진료 전담기관을 제한하는 규정에도 허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야간·휴일 진료와 의료기관 개설 초기 실적 등이 비대면진료 비율 산정에서 제외되면서 사실상 비대면진료 중심으로 운영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공공 시스템 구축 시점과 제도 시행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단체는 개정안이 제도 시행일을 오는 12월 24일로 정하면서도 비대면진료지원시스템과 전자처방전전달시스템의 운영 개시일은 추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도록 한 점을 지적했다.

실천약은 비대면진료를 안전하게 운영하려면 환자 본인·자격 확인부터 처방전 진위 확인, 다른 의료기관의 중복처방 확인, 중복조제 방지, 조제 결과 회신 등이 하나의 공적 시스템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공 시스템이 없는 동안 처방전 위·변조와 중복조제, 약 배송 적격 여부를 결국 일선 의료기관과 약국이 각자 확인하고 책임져야 한다”며 “국가가 갖춰야 할 안전 인프라의 책임을 현장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약 배송에 대해서도 별도의 관리·책임체계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천약은 정부의 규제영향분석서에서도 현재 의약품 배송업자에 대한 별도 인허가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점을 언급하면서, 배송업체에 대한 공적 인허가와 운송·보관 기준, 책임보험 및 사고 보상체계 없이 약 배송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의약품은 온도·습도와 파손·오염, 오배송 등을 관리해야 하는 만큼 일반적인 배송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송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약국과 배송업체, 플랫폼 가운데 누가 어느 범위까지 책임지는지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대면진료 확대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영향에 대한 검증도 요구했다.

실천약은 본인확인과 전자처방전, 중복처방 감시, 플랫폼 및 배송업체 관리 등 추가적인 행정·감독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의료쇼핑과 반복 처방이 증가할 경우 불필요한 진료와 의약품 사용으로 건강보험 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가 확인한 사례 가운데 인공눈물 9통을 한 차례 처방받으면서 건강보험 공단부담금 약 17만원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고 제시했다.

의료취약계층의 접근성 개선이라는 비대면진료의 정책적 명분도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천약이 전국 개설·근무약사 31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응답 약국의 91.8%가 5대 의료취약계층의 비대면 처방이 ‘월 0건’이라고 답했다. 반면 민간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처방에서는 20~30대 이용과 탈모·여드름·다이어트 등 편의 목적의 이용이 두드러졌다는 게 단체의 설명이다.

실천약은 해당 조사만으로 전체 비대면진료 이용 실태를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부가 정책의 주요 근거로 제시해 온 의료취약계층의 접근성 개선 효과를 별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취약계층에 비대면진료가 필요하다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민간 플랫폼 중심의 시장을 확대하기보다 정부와 보건의료 전문가단체 등이 참여하는 별도의 공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섬·벽지 주민과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장기요양환자, 감염병 격리환자, 희귀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환자 확인과 처방·조제 이력 공유, 대면진료 연계 등을 공적 시스템 안에서 관리하자는 것이다.

실천약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전면 철회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이용자·처방 및 건강보험 재정 영향 공개·평가 △본인확인과 중복처방·중복조제 차단 등 공공 시스템 구축 전 제도 시행 중단 △의료취약계층 이외 비대면진료 및 약 배송 확대 중단 △약 배송업자 인허가·관리 및 사고 보상체계 마련 △의료취약계층 대상 공공 비대면진료 체계 구축 등을 요구했다.

실천약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은 규제완화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며 “비대면진료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을 전면 철회하고 안전성·필요성·재정 영향에 대한 검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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