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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출률 보존 심부전(HFpEF)과 박출률 경도 감소 심부전(HFmrEF) 치료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오랫동안 뚜렷한 질병조절 치료제가 부족했던 영역에서 SGLT-2 억제제에 이어 비스테로이드성 무기질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nsMRA) 피네레논까지 임상적 근거를 확보하면서다.
이에 따라 치료의 초점 역시 ‘어떤 약제를 사용할 수 있는가’에서 ‘효과가 입증된 약제를 얼마나 빠르게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스테판 존 그린(Stephen John Greene) 듀크대학교 메디컬센터 내과 조교수는 최근 약업닷컴과의 인터뷰에서 HFpEF·HFmrEF 치료에서 가이드라인 기반 약물치료(Guideline-Directed Medical Therapy, GDMT)를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SGLT-2 억제제와 케렌디아(피네레논)를 놓고 어느 약제를 먼저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기보다는, 임상적 효과가 입증된 두 치료제를 가능한 이른 시점에 함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린 교수는 듀크 임상연구소 연구원이자 듀크 GDMT 클리닉 공동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심장협회(AHA) 심부전 진료 질 향상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이번 대한심부전학회 국제심포지엄 ‘Heart Failure Seoul 2026’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린 교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치료를 시행하면 의미 있는 임상효과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실제 심부전 진료 현장에서 GDMT가 이행되는 수준에는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며 “이 격차를 좁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연구 과제”라고 말했다.
“HFpEF·HFmrEF, 더 이상 치료 옵션 없는 영역 아니다”
심부전 치료는 오랫동안 박출률 감소 심부전(HFrEF)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HFrEF에서는 다양한 기전의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질병 진행과 입원, 사망 위험을 낮추는 치료체계가 구축됐지만 HFpEF와 HFmrEF는 상대적으로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그린 교수는 전체 심부전 환자 가운데 좌심실 박출률(LVEF)이 40%를 초과하는 환자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년 전까지 이들 환자에게 질병 경과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치료 옵션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부전은 예후가 암과 유사한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라며 “상당수의 심부전 환자가 매우 좋지 않은 예후를 보이는데도 HFpEF·HFmrEF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에 과거 HFpEF 치료는 동반질환 조절과 이뇨제를 통한 체액 관리 등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SGLT-2 억제제가 등장하면서 이 환자군에서도 임상적 결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근거가 마련되기 시작했고, 최근 피네레논이 새로운 치료 옵션으로 추가됐다는 것이 그린 교수의 설명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FINEARTS-HF 연구가 있다.
LVEF 40% 이상 HFmrEF·HFpEF 만성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FINEARTS-HF에서 피네레논은 심혈관계 사망과 전체 심부전 사건으로 구성된 복합평가변수 발생 위험을 위약 대비 유의하게 감소시켰다.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감소 폭은 16%였다.
그린 교수는 단순히 1차 평가변수를 충족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결과의 ‘일관성’에 주목했다.
그는 “좌심실 박출률 수준이나 제2형 당뇨병 동반 여부와 관계없이 여러 하위군에서 임상적 효과가 일관되게 나타났다는 점을 특히 주목했다”며 “이미 SGLT-2 억제제를 복용하고 있던 환자에게 피네레논을 추가했을 때도 추가적인 임상효과가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치료 효과가 비교적 빠른 시점부터 나타났다는 점도 강조했다.
FINEARTS-HF에서는 피네레논 투여 후 28일 시점부터 심혈관 사망과 심부전 악화 사건에서 통계적·임상적으로 유의한 감소가 관찰됐다.
그린 교수는 “심부전 환자에게 약제를 사용하는 상황 자체가 임상적으로 위급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일 또는 수주 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장점”이라며 “심부전처럼 위험도가 높은 심혈관질환에서는 조기에 나타나는 임상효과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SC ‘MRA 1A’ 권고…“같은 계열이라는 이유로 효과까지 같다고 볼 수 없어”
그린 교수가 이번 인터뷰에서 특히 강조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최근 심부전 가이드라인에서 MRA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2026 유럽심장학회(ESC) 심부전 가이드라인은 HFpEF 환자에서 피네레논을 포함한 MRA를 Class I, Level A로 권고했다.
그러나 그린 교수는 스테로이드성 MRA와 비스테로이드성 MRA를 단순히 ‘MRA’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동일한 수준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약물 계열’이 아니라 각각의 약제가 실제 임상시험에서 확보한 근거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이드라인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근거”라며 일본 JCS/JHFS 가이드라인에서는 비스테로이드성 MRA인 피네레논이 스테로이드성 MRA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권고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실제 임상시험 결과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피네레논은 FINEARTS-HF를 통해 HFpEF·HFmrEF 환자에서 심부전 관련 임상 결과를 개선한 직접적인 근거를 확보했다. 반면 스테로이드성 MRA인 스피로놀락톤은 TOPCAT 연구에서 여러 연구 수행상의 한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명확한 positive trial로 이어지지 못했으며, SPIRIT-HF 역시 조기에 중단돼 같은 수준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린 교수는 “두 약제를 MRA라는 큰 틀로 묶어서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큰 가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비용이나 접근성도 중요하지만 과학적 근거는 변하지 않는 반면 비용과 접근성은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시점에서 두 약제를 동등한 1차 선택지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HFpEF에서는 실제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근거에 보다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GLT-2 억제제냐 피네레논이냐가 아니라, 둘 다 얼마나 빨리 쓸지가 중요”
치료 순서에 대해서도 그린 교수의 입장은 명확했다.
HFrEF 치료에서는 여러 기전의 치료제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추가하기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치료를 시작해 GDMT를 완성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는 이러한 원칙이 HFpEF·HFmrEF에서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 교수는 “핵심은 치료제를 하나씩 천천히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병용하는 데 있다”며 “한꺼번에 투여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각각의 치료제 시작 간격을 최대한 좁혀 사실상 동시에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SGLT-2 억제제와 피네레논 가운데 어느 약제를 먼저 사용해야 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핵심을 비껴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어떤 약제를 먼저 사용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은 가능하지만, ‘한 약제를 사용하면 다른 약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가’ 또는 ‘둘 중 하나만 써야 한다면 무엇을 써야 하는가’는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두 효과가 입증된 중요한 약제인 만큼 순서 자체보다는 동시에 투여하거나 시작 간격을 매우 좁혀 거의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두 약제를 최대한 이른 시점에 함께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심부전 ‘발생 전’부터 ‘발생 후’까지…케렌디아의 ‘Double Protection’
그린 교수는 피네레논의 임상적 가치를 이미 심부전이 발생한 환자의 치료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심부전의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단계와 심부전 발생 이후 악화를 줄이는 단계를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피네레논은 제2형 당뇨병을 동반한 만성콩팥병(CKD)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에서 심부전 입원 위험 감소 근거를 확보했고, FINEARTS-HF에서는 HFmrEF·HFpEF 환자의 심부전 악화 및 심혈관 사건 감소 근거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심부전 발생 이전의 고위험 환자에서부터 이미 심부전이 발생한 이후까지 예방과 치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Double Protection for HF’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그린 교수는 이에 대해 “심부전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예방”이라며 “피네레논은 제2형 당뇨병을 동반한 CKD 환자에서는 심부전 발생 자체를 예방하는 효과를 보였고, 이미 심부전이 발생한 환자에서도 임상 결과를 개선하는 것으로 확인돼 예방과 치료 양쪽에서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접근은 심장과 콩팥, 대사질환을 개별적으로 바라보기보다 하나의 연속된 심혈관-신장-대사(CKM) 질환 과정으로 관리하려는 최근 치료 패러다임과도 맞닿아 있다.
“UACR, 단순한 콩팥 수치 아니다…미래 심부전 위험 알려주는 신호”
심부전 예방을 위해서는 위험 환자를 조기에 찾아내는 과정도 중요하다.
그린 교수는 이 과정에서 요알부민-크레아티닌비(UACR)의 적극적인 활용을 강조했다.
알부민뇨는 전통적으로 신장 손상을 확인하는 지표로 사용돼 왔지만, 향후 심부전 발생 위험을 평가하는 데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알부민뇨는 전통적인 콩팥 바이오마커이면서 앞으로 심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며 “특히 만성콩팥병을 진단하는 데 필수적인 지표라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eGFR만을 기준으로 CKD를 평가하면 일부 환자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eGFR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더라도 알부민뇨가 존재하면 CKD에 해당할 수 있고, 이런 환자를 조기에 찾아내야 심혈관·신장 보호 효과가 확인된 치료를 적용할 기회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린 교수는 “만성콩팥병은 무증상인 경우가 많아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질환”이라며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는 환자라면 특히 UACR을 기반으로 만성콩팥병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UACR을 단순히 신장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심부전 위험을 조기에 확인하고 예방적 치료로 연결시키기 위한 지표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 부작용만 볼 것이 아니라 ‘치료하지 않은 위험’도 봐야”
그린 교수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치료를 지나치게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하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이상반응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된 치료라면 약제를 사용했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뿐 아니라,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았을 때 환자가 부담하게 될 위험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하면 좋은 치료제라는 점을 알면서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많이 하게 된다”며 “그러나 치료를 시작하지 않아 놓치는 것 역시 일종의 부작용이 될 수 있다는 점, 즉 치료를 시작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위험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를 함께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심장 보호 효과와 심부전 관련 위험 감소, 투여 후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나타나는 임상효과가 확인된 약제라면 실제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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