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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환자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가 응급의료 컨트롤타워의 요청에 따라 환자를 받은 의료진에 대해서는 경과실로 인한 형사책임을 면제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환자는 국가가 보상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의료진이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으로 중증응급환자 수용을 주저하는 상황을 줄이는 대신, 응급의료기관의 환자 미수용 사유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불가피하게 발생한 환자 피해에는 공적 보상체계를 가동하자는 것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박성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응급실 뺑뺑이 해소를 위한 응급의료 형사책임 개선과 피해 환자 보상체계 구축 방안' 토론회에서 이 같은 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주관했다.
수용 거부 '정당한 사유' 검증체계 필요
안기종 대표는 응급의료가 긴급성·고위험성·비예측성·불확실성·불가피성 등의 특성을 갖는 만큼 의료진의 법적 책임에 대한 합리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봤다. 동시에 의료진 보호가 환자의 응급의료를 받을 권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응급의료기관이 환자를 수용하지 않는 '정당한 사유'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2019년 10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경남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되던 5세 어린이가 병원 도착 직전 수용 거부를 통보받은 사례를 제시했다. 구급대는 부산의 다른 권역응급의료센터로 환자를 재이송했지만 환자는 뇌사에 빠진 뒤 결국 사망했다.
당시 해당 의료기관은 응급실에서 다른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이 진행 중이었다고 수용 기피 사유를 설명했지만,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는 실제 해당 환자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안 대표는 이 같은 사례를 들어 의료기관이 인력이나 병상, 시설, 장비 부족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 환자 미수용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응급의료기관이 환자 수용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경우 그 사유가 실제 정당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증 시스템'을 도입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위에서 광역응급의료상황실 등 응급의료 컨트롤타워가 환자 수용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이를 받아들인 의료진과 의료기관을 적극적으로 보호·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 대표는 구체적으로 △응급의료종사자 형사책임 필요적 면제 △응급의료기관에 건강보험 재정과 응급의료기금 등을 활용한 재정적·행정적 인센티브 제공 △피해 응급환자 또는 유족에 대한 응급의료기금 보상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법'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면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필요적 면제'로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상황실의 요청을 받은 뒤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하는 것이 의료기관에 더 유리해질 경우 초기 환자 수용 거부가 오히려 관행화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또 이미 응급실에서 치료 중인 중증환자와 새로 수용한 중증환자 사이의 한정된 의료자원 배분 문제, 새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기존 환자에게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의 형사책임 문제 등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미수용 사유 지나치게 넓게 법제화해선 안 돼”
박성민 교수도 현재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들을 분석한 결과, 응급환자 수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법적 부담 완화와 함께 의료자원을 실시간 파악하고 이송병원을 선정·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특히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법률에 지나치게 넓게 규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발의된 법안 가운데 협진 또는 최종치료과의 부재나 해당 의료인력의 부재를 정당한 사유로 규정하거나, 입원 예약 등으로 병상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까지 포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교수는 "이 두 부분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논란이 적은 부분으로 법제화를 하고 구체적인 사안을 해석·적용할 때 전문성 있게 적용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종치료가 불가능하더라도 당장 필요한 초기 응급처치는 가능한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최근 법원 판결을 예로 들며 산소 공급과 기도 확보, 수혈·수액 공급 등 긴급한 처치가 가능한 의료기관이라면 우선 환자를 안정화한 뒤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응급환자에게는 초기 응급처치를 위한 골든타임과 최종치료를 위한 골든타임이 동시에 존재하는 만큼 배후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미수용의 정당성을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별 의료기관이 구급대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제한된 정보만으로 이를 판단하기보다는 중앙 컨트롤타워가 각 의료기관의 자원과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환자 이송병원을 결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의사 하루 2~3명 기소? 실제로는 '고소'…그래도 법적 부담 존재”
박 교수는 의료진의 형사책임을 논의하기에 앞서 그동안 의료계에서 널리 인용된 형사처벌 관련 통계도 짚었다.
그는 2022년 대한의사협회 산하 연구기관이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의사가 하루 2~3명씩 기소되고 있다'는 내용이 언론과 학술논문 등에 광범위하게 인용됐지만, 이후 연구를 통해 원자료를 다시 확인한 결과 '기소'가 아닌 '고소' 건수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후속 연구에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의료인의 실제 기소 규모는 5년간 192명으로, 연평균 약 38명이었다. 이 가운데 약 27~29%는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급의학 분야는 5년간 9명 수준이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다만 이 같은 통계가 의료진이 느끼는 법적 부담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많고 적고는 평가의 문제"라며 "너무 과도하게 부풀려진 부분들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응급의료 과정에서 민·형사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법적 책임에 대한 위험 부담감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 교수는 응급의료 과정의 과실을 판단할 때 당시 진료환경과 응급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하도록 한 기존 판례의 판단 기준을 아예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가로 제안했다. 의료계 일각에서 '환자 결과가 나쁘면 의료진이 형사책임을 진다'고 인식하는 부분을 줄이고, 응급의료의 특수성이 과실 판단에 고려된다는 점을 법률로 명확히 하자는 취지다.
'수용 곤란' 환자 받을수록 지원 확대…피해 보상도 넓혀야
박 교수는 환자단체연합회가 제안한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 보상과 지원 범위를 한층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우선 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음에도 중앙 컨트롤타워 요청에 따라 중증응급환자를 받은 의료기관에는 응급의료기관 평가 등을 통해 더 많은 지원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응급의료기관에 지급되는 각종 지원금은 개별 환자 진료에 지급되는 수가와 달리 비상상황에 대비해 인력과 시설을 유지하는 '인프라 유지 비용'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막상 어려운 환자가 생겼을 때 수용하지 않거나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런 인프라 유지 비용을 지급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어려운 응급환자를 실제로 진료하는 의료기관에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가의 요청에 따라 환자를 수용한 의료진의 경과실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한다면, 피해 환자에 대한 공적 보상은 사망 등 중대한 피해에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용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의료기관에 국가 컨트롤타워가 환자 수용을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의료인의 경과실로 피해가 발생했다면, 충분한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국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국가의 책임도 있기 때문에 중대한 피해가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할 근거가 없을 것"이라며 "중대한 피해가 아닌 경우에도 보상하는 게 더 논리적으로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내년 5월 시행 예정인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이 일정 요건을 충족한 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서 손해배상금 전액 또는 상당액이 보험금으로 지급된 경우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점과 비교해서도, 형사책임을 면제하면서 경미한 피해 환자에게는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것은 제도적 균형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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