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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제약기업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스트라제네카와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기업결합 논의가 시장의 반대에 막혀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는 주식 교환을 중심으로 한 거래 구조와 자금조달 방안까지 검토할 만큼 협상을 진전시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논의가 외부에 공개된 직후 아스트라제네카 주가가 약 9% 급락하면서 거래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양사 모두 협상 여부나 중단 경위에 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합병계약 체결이나 이사회 승인, 규제기관 신고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최초 보도 이후 추가 취재를 통해 당초 시장의 단순한 합병설로 여겨졌던 논의가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됐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사안은 초대형 제약사 합병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달라진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일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 제약사 BMS와 기업결합 가능성을 놓고 최근 수개월간 논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두 회사의 합산 기업가치는 당시 기준 약 4000억 달러로 추산됐다. 거래가 성사됐다면 매출 기준 세계 최대이자 시가총액 기준 세계 4위권에 해당하는 제약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여기서 4000억 달러는 아스트라제네카가 BMS 인수를 위해 제시한 금액이 아니라 양사의 합산 기업가치를 뜻한다. 구체적인 주식 교환비율과 인수 프리미엄, 현금과 주식의 구성, 거래 후 지배구조는 공개되지 않았다.
최초 보도 당시에는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렀으며 거래가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FT는 이후 복수 관계자를 인용한 후속 보도를 통해 협상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진전돼 있었다고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CEO) 파스칼 소리오가 거래를 주도했으며, 양측이 주식을 중심으로 한 기업결합 구조와 필요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은 수면 위로 올라온 직후 변곡점을 맞았다. 최초 보도 다음 날인 3일 아스트라제네카 주가는 런던증권거래소에서 약 9% 하락했다. 2020년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으로, 하루 동안 줄어든 시가총액만 170억 파운드를 넘어섰다. 반면 BMS 주가는 장 초반 상승세를 보이면서 시장은 아스트라제네카를 사실상의 인수자, BMS를 인수 프리미엄의 수혜자로 받아들였다.
FT는 이 같은 시장 반응과 주요 주주들의 반발을 확인한 아스트라제네카 이사회가 3일경 협상 중단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양사 사이에 진행 중인 합병 논의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협상 사실을 둘러싼 보도는 엇갈린다.
로이터는 지난 5일 사안에 정통한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양사 사이에 “거래도, 현재 논의도 없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 역시 진행 중인 협상이 없다고 확인했다. 실질적인 협상이 이뤄졌다면 영국 시장남용규정에 따라 공시가 필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이후 FT는 과거 협상이 실제로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됐지만 3일 중단됐다고 추가 보도했다. 현재 논의가 없다는 점에서는 두 보도가 일치하지만, 이전에 어느 수준까지 협상이 진행됐는지를 놓고는 설명에 차이가 있는 셈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BMS는 최초 보도와 후속 보도에 대해 모두 공식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거래가 검토된 배경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미국 사업 확대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전체 매출의 약 45%를 미국에서 거두고 있으며, 2030년까지 미국에 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미국 나스닥에서 뉴욕증권거래소로 거래시장을 옮기고 보통주를 직접 상장한 것도 미국 투자자 기반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해석됐다.
BMS는 미국 시장에 강력한 영업·임상개발·생산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BMS와 결합하면 미국 내 매출과 상업화 역량을 단기간에 확대할 수 있다. BMS가 보유한 신경과학과 혈액암, 세포치료제 자산도 아스트라제네카의 기존 사업을 보완할 수 있는 요소로 평가됐다.
BMS는 최근 미국 내 생산 역량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10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23억 달러를 투자해 약 60만 제곱피트 규모의 신규 제조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시설에서는 합성의약품뿐 아니라 바이오의약품과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복합 의약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는 BMS가 제시한 총 4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 가운데 하나다.
항암제 분야에서도 양사의 결합은 상당한 외형 확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타그리소, 임핀지, 린파자, 엔허투, 다토웨이(DATO-DXD) 등을 중심으로 고형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BMS는 옵디보와 여보이, 옵두알라그를 비롯해 레블리미드, 포말리스트, 브레얀지, 아벡마 등 면역항암제·혈액암·세포치료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면역관문억제제부터 표적항암제, ADC, 혈액암 치료제, CAR-T 세포치료제에 이르는 광범위한 항암제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었다. 2025년 기준 항암제는 아스트라제네카 전체 매출의 약 44%, BMS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 중복은 합병의 장점인 동시에 가장 큰 규제 위험으로 꼽혔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이뮤도와 BMS의 옵디보·여보이·옵두알라그는 폐암과 간암, 위암 등 여러 암종에서 경쟁하거나 유사한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영국 등 주요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을 심사할 경우 일부 제품이나 파이프라인의 매각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핵심 항암제 자산을 매각하면 거래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동시에 합병을 통해 얻으려던 전략적 가치가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양사의 연구개발 조직과 임상시험 프로그램이 광범위하게 겹친다는 점도 통합 과정에서 상당수 개발과제가 중단되거나 조정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시장이 가장 우려한 부분은 BMS의 특허절벽이었다. BMS는 엘리퀴스, 옵디보, 레블리미드 등 대형 품목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지만, 주요 제품의 독점권 약화와 제네릭·바이오시밀러 경쟁에 직면하고 있다. 엘리퀴스와 옵디보의 특허만료가 본격화하면 BMS가 향후 수년간 상당한 매출 감소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아스트라제네카가 BMS와 결합하면 현재의 매출과 현금흐름뿐 아니라 이 같은 미래 매출 감소 위험도 함께 떠안게 된다. 투자자들은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아스트라제네카가 대규모 주식 발행과 조직 통합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BMS의 특허절벽을 인수해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아스트라제네카는 2026년 상반기 총매출 306억7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고정환율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 핵심 영업이익과 핵심 주당순이익은 각각 11% 증가했다. 항암제와 희귀질환 부문의 두 자릿수 성장이 미국 내 포시가 특허만료와 중국의 국가 의약품 집중구매에 따른 영향을 상쇄했다.
회사는 2026년 연간 매출이 고정환율 기준 중·후반 한 자릿수 비율로 증가하고 핵심 주당순이익은 두 자릿수 초반 비율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했다. 2030년까지 연매출 8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장기 목표도 변경하지 않았다.
BMS 역시 2026년 2분기 매출 130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6% 성장했다. 옵디보, 오렌시아, 여보이, 레블로질, 캄지오스, 브레얀지, 코벤피 등 성장 포트폴리오 매출은 15% 증가한 76억 달러였다. BMS는 이를 바탕으로 2026년 연간 매출 전망을 490억~500억 달러로 상향했다.
두 회사의 최근 실적만 보면 어느 한쪽이 당장 대형 합병을 통해 경영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는 항암제와 희귀질환을 중심으로 자체 성장하고 있어, 주주들은 BMS와의 결합으로 얻을 수 있는 매출 확대보다 인수 프리미엄과 특허만료 위험, 연구개발 조직 통합 비용을 더 크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합병이 성사됐다면 양사의 연매출은 1000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었다.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와 항암제 포트폴리오도 한층 강화됐겠지만, 아스트라제네카가 그동안 강조해온 연구개발 중심 성장전략은 대규모 조직 통합과 비용 절감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는 이번 거래 추진이 아스트라제네카 경영진이 자체 파이프라인의 장기 성장성에 대한 확신을 잃은 신호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대형 인수 없이도 2030년 매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업결합이 신약개발 역량을 강화하기보다 의사결정을 늦추고 연구개발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과거 사례도 투자자들의 경계심을 키웠다.
이번 합병 논의 중단은 대형 제약사의 성장 공식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도 보여준다. 2000년대 글로벌 제약사들은 특허절벽과 연구개발 생산성 저하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메가딜을 선택했다. 현재 시장은 대규모 조직을 결합하는 거래보다 특정 기술이나 후기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볼트온 인수, 공동개발 및 기술도입을 상대적으로 선호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BMS가 가까운 시일 안에 동일한 구조의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합병설이 알려진 직후 나타난 주가 급락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주주들의 반대가 분명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항암제 분야의 경쟁 제한 우려와 BMS의 특허만료 위험도 해소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논의는 양사의 중장기 과제를 다시 드러냈다. 아스트라제네카에는 미국 사업 확대와 2030년 매출 목표를 뒷받침할 후기 파이프라인 확보가, BMS에는 엘리퀴스와 옵디보 이후의 성장동력 육성이 남아 있다. 두 회사가 전면적인 합병 대신 개별 자산 인수와 기술도입, 공동개발 등을 통해 필요한 역량을 선택적으로 확보할 가능성이 보다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꼽힌다.
결국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제약기업 탄생을 멈춘 것은 규제당국이 아니라 시장이었다. 미국 사업 확대와 항암제 포트폴리오 강화라는 전략적 명분에도 투자자들은 BMS의 특허절벽과 사업 중복, 조직 통합 위험을 더 크게 평가했다. 이번 합병 논의의 중단은 몸집을 키우는 것만으로 미래 성장을 보장할 수 없으며, 신약개발 생산성과 파이프라인의 질이 빅파마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시장의 판단을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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