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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뷰티는 다 비슷하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에서 지난 13~15일(현지시간) 개최된 '코스모프로프 북미 라스베이거스 2026'에선 K-뷰티에 대한 다양한 말들이 쏟아졌다. 그중 뉴욕의 프리미엄 뷰티 편집숍 씨오 비글로우(C.O. Bigelow)의 이안 긴스버그 사장이 던진 말은 분명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 있었다.
그는 전시장에 나온 모든 한국 제품의 품질이 훌륭하다는 데는 십분 동의하지만, 정작 그 수많은 화장품들 사이에서 브랜드를 가르는 뚜렷한 변별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매대 앞에서 소비자의 최종 선택을 이끌어낼 결정적인 동인이 부족하다는 예리한 일침이었다. 사실 이런 쓴소리는 미국 시장에서 K-뷰티가 주류로 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오랜 꼬리표이기도 하다.
물론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터져 나왔다. 코비타 김성수 명예회장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출품된 모든 제품은 저마다의 고유한 특징이 다 다르다. 그 사람이 개별 부스에서 제대로 설명을 듣지 않았거나 제품의 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 나오는 섣부른 소리"라고 반박했다.
전시장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뛰어본 입장에서 보기에 이 반박 역시 타당한 팩트다. 라스베이거스에 야심 차게 진출한 상당수의 K-뷰티 제품들은 각자의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내세웠고, 비슷한 제품이라도 효능 성분이나 제형 등에서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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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리 있는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긴스버그의 지적이 현재의 K-뷰티에 뼈아픈 이유는 K-뷰티를 개별 브랜드가 아닌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소비하는 오프라인의 생리 때문이다. 대형 유통 채널의 매대 앞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일일이 제품 설명을 듣고 알아본 후 구매하려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요즘 뷰티 소비자들이 똑똑해져서 성분을 따지고 윤리적인 주장 등을 구매에 고려한다고 하지만, 그게 K-뷰티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서도 통용이 될까? 오히려 K-뷰티 안에서는 웬만하면 다들 성분 좋고 트렌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 개별 브랜드 차원의 차별화가 더 어려워진 느낌을 받았다.
이 기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한 유통사가 메디큐브의 특정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며 부스에 비치해놨는데, 조금 지나가면 보이는 국내 OEM·ODM 업체는 그 제품과 같은 제형, 캡슐이 들어있는 크림을 만들 수 있다고 바이어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또 근처의 다른 브랜드의 부스에 가면 또 같은 캡슐인크림을 메인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다 같은 제품은 아니었으나, 겉보기엔 K-뷰티 브랜드들이 비슷한 제품을 선보인다고 생각하기엔 충분했다.
이유는 모두가 다 안다. 결국 제조사들의 기술이 브랜드의 수준이 되어버린 지금의 K-뷰티 밸류체인이 만들어낸 결과다. 상향 평준화된 K-뷰티가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갈아타기 쉽고 결국은 비슷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함께 구축해버린 셈이다.
어차피 선택은 소비자가 한다.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오래 지켜보고, 그 기억을 토대로 특정 브랜드나 제품에 신뢰를 갖는다. 아무리 바이럴 마케팅을 열심히 해도 차별화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대충 키워서 엑시트할 생각으로 만든 브랜드를 소비자들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롯데홈쇼핑 유홍석 글로벌사업팀장이 남긴 "유행을 좇지 말고, 신뢰를 쌓으라"는 말이 생각나는 이유다.
2. 그럼에도 K-뷰티는 인기가 많다
미국의 K-뷰티 붐은 허상이 아닌 현실이다. 기자가 참석한 총 4개의 세미나에서는 주제가 트렌드, 유통, AI 등으로 각기 달랐음에도 K-뷰티가 빠짐없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등장했다. 강연자들은 성공 원인과 키워드를 분석했고, 외국인 기자들이 따로 질문을 던지거나 견제의 시선으로 한국 화장품의 차별점을 묻기도 했다.
이러한 열기는 코스모프로프 라스베이거스 둘째 날 열린 K-뷰티 관련 세미나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세미나장 입구부터 전시장 복도까지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은 미국 전시회에서는 흔치 않은 진풍경이었다. 특히 참석자의 상당수가 해외 바이어들이었다는 점은 K-뷰티에 대한 현지의 높은 관심을 방증한다. 세미나가 끝난 후 이어진 네트워킹 타임에서도 어떤 브랜드를 주목해야 하는지 묻는 바이어들의 구체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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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관심만큼이나 유통 주도권을 쥐기 위한 물밑 경쟁도 치열했다. 전시에 참가한 한국 브랜드와 유통업체 모두 현지 파트너 발굴에 사활을 걸었다. 북미 K-뷰티 유통의 맹주로 꼽히는 실리콘투의 미국 법인 스타일코리안 관계자마저 "이제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런 피 말리는 유통 전쟁 속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국내 브랜드를 미국에 소싱하는 신생 유통업체 어뮤티(AMUTY)의 백상열 대표는 전시 마지막 날, 흑인 커뮤니티에 제품을 공급하는 현지 회사와 극적으로 MOU를 체결했다. 백 대표는 "미국은 주류 뷰티 시장 외에도 특정 커뮤니티 중심의 확고한 마켓이 따로 존재한다. 이번 계약은 흑인 커뮤니티라는 독자적인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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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저러나, 라스베이거스의 가장 핫한 키워드가 'K-뷰티'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시회에서 만난 트렌디어 천계성 대표는 "이번 전시회 전체에서 K-뷰티의 비중이 약 절반에 이르는 것 같다"고 평했고, 기자의 감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물론, 스킨케어 카테고리에 한정된 이야기다.
3. 세포라에 가보니
귀국 전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의 세포라 매장을 둘러봤다. 입구부터 닥터지의 마스크팩이 진열돼 반가웠지만, 세포라 특유의 프리미엄 가격대 안에서 K-뷰티의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크지는 않았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를 타깃으로 하는 한국 스킨케어 브랜드들의 포지션과는 태생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매장의 메인 자리는 펜티뷰티(FENTY BEAUTY), 로드(Rhode) 등 팝스타나 인플루언서가 론칭한 이른바 '셀럽 뷰티'가 꿰차고 있었다. 특히 로드에서 발매한 스틱밤 형태의 블러셔 등에 현지 소비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는데, 기자 역시 그 열기에 휩쓸려 하나 사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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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와 색조 메이크업 매대 역시 수십 가지 셰이드의 파운데이션과 강렬한 색감의 컬러 코스메틱 등 한국과는 다른 스케일에 압도됐다. 피부 톤이 다양해도 공통적으로 얼굴의 '양감'을 확실하게 살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지의 미적 기준이 반영된 결과다.
K-뷰티는 스킨케어 코너의 벽장 매대에 라네즈가 자리하고 있었고 계산대 근처 '30달러 이하 코리안 스킨케어' 코너가 따로 있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조선미녀다. 립밤 하나가 20달러를 넘는 세포라에서 조선미녀 선케어 제품들은 돌출 매대를 따로 차지하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래 전폭적으로 밀어주던 미국의 대형 선크림 브랜드가 이탈하자, 세포라 측이 조선미녀를 차기 브랜드로 낙점하고 독점을 조건으로 단독 매대를 내주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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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뷰티 업계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롱런하려면 무조건 프리미엄 포지션을 취해야 한다는 조언이 정설처럼 돌았다. 하지만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스킨케어 시장의 '프리미엄=고성능'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짚었다. 소비자들이 럭셔리 가격대가 아니어도 확실한 결과와 임상적 신뢰도를 제공하는 중저가 기반의 K-뷰티 브랜드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포라 매장 내 합리적 가격대를 무기로 선전 중인 K-뷰티의 모습은 이러한 달라진 구매 기준을 명확히 보여준다.
대중성과 확실한 효능을 무기로 한 K-뷰티의 스킨케어 전략은 현지에서 충분히 잘 통하고 있다. 다만 매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럭셔리 브랜드나 셀럽 뷰티처럼, 제품군을 넘어 브랜드 자체의 힘으로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한국 브랜드도 하나쯤 등장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K-뷰티가 미국 오프라인 시장에서 저변을 넓혀가는 만큼, 언젠가 세포라의 메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브랜드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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