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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실에서 약을 집어드는 순간에야 재고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 약국 현장을 오래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안다.
약국은 겉으로 보기엔 전산화된 것처럼 보인다. 처방전 접수, 조제이력, 주문·결제, 보험청구까지 대부분의 흐름이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도 왜 약국은 자신의 재고나, 운영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일까.
전산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
근본적인 이유는 전산화 출발점인 '입고'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1인 약국 기준으로도 조제 관련 의약품만 1,000~2,000개에 달하는 소량 다품종 구조에서, 환자 처방전이 접수될 때마다 재고 현황은 실시간으로 바뀐다.
동일 성분 제네릭이 여러 종류 있을 경우,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10정 처방에 100정 단위 포장을 개봉하면 90정이 재고로 남는다. 회전율이 낮은 제네릭을 잘못 들여놓으면 고스란히 사장재고가 된다. 단골환자가 3차 의료기관 처방을 들고 오면, 처음 보는 품목이 포함되어 있기 일쑤고, 인근 약국에 전화를 돌리느라 조제실은 더 바빠진다.
재고조사를 따로 할 시간도,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약국 스스로도 자신의 운영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약국 경영 판단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문제다.
약국이 진짜 필요로 하는 정보
이 상황에서 약국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는 거창한 빅데이터 분석이 아니다. 아주 구체적인 두 가지다.
첫째, 개봉 후 사장재고 최소화와 약국 소재 지역의 조제약품 적정 라인업 정보다. '내 약국 지역에서 이 성분 계열 제네릭 중 어떤 제품이 가장 회전율이 높은가, 그리고, 어느 정도 물량이 소모되는가'를 알면 불필요한 재고 손실을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약국 혼자서는 이것을 알 방법이 없다. 자기 약국 데이터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처음 받는 처방약에 대한 즉각 대응 정보다. 낯선 처방약이 들어왔을 때 지금 당장 사입이 가능한지, 인근 약국에 재고가 있는지를 빠르게 알 수 있다면 환자를 기다리게 하거나 돌려보내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으면서, 가장 적게 활용하는 곳
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약국은 자기 약국 데이터만 갖고 있다. 제약사는 자사 제품 출하까지만 볼 수 있다. 그러나 도매상, 특히 규모 있는 도매상은 다르다. 수십, 수백 개 약국의 주문 흐름, 품목별 회전 패턴, 지역별 수요 변화를 구조적으로 보고 있는 유일한 위치다.
어떤 지역 약국에서 단독 original제품 처방이 시작됐는지, 어떤 제네릭이 더 많이 나가는지, 어떤 품목 주문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지, 어떤 약국 재고 패턴이 평균과 다르게 움직이는지. 이 모든 것이 도매상의 주문 데이터 안에 이미 들어 있다.
도매상의 홈페이지는, 단순한 주문 접수 페이지가 아니라, 수많은 영업정보가 잉태되는 산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야겠다. 많은 경영자들이, I.T를 '한 번 잘못 건드리면 주문에 치명적 결과가 생기는 것', 또는 '고칠 때마다 큰 비용이 드는 것'으로 여겨, ‘접근불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우려다. 그러나, I.T를 어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발상을 조금만 바꾸면 어떨까?
주문 서버는 지금 그대로 안전하게 두고, 정보 서비스는 별도 서버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재고 분석이나 지역별 트렌드 같은 통계 서비스는 실시간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 있다. 생각보다 훨씬 낮은 진입장벽에서 시작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I.T기술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유통정보를, 실시간으로 어떻게 분석하고, 해당 정보수요자에게 제공하고, 그것을 실적이라는 결과로, 연결하느냐!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련 의사결정에 필요한 요소를 알고, 그것을 해당 결정권자에게 연결하는 흐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있다.
문제는, 가장 많은 정보를 보유한 당사자인 도매상이 그 정보를 얼마나, 어떻게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과거에는, 물류와 상류(영업)가 같이 움직였다. 그러나, 디지탈시대인 현재는, 상류(영업)가 물류에서 분리되어, 웹페이지,앱 등의 디지탈플랫폼으로 이동하였다. 현재의 약업계 유통업은, “자신이 보유한 “정보”라는 핵심경영자원을, 얼마나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가!”가 핵심경쟁력이다. 그리고, 그 답은, 누구에게나 열렸다.
다음 회에서는 약업계 모든 길목에 이미 자리잡은 IT 검문소 구조와, 그 안에서 도매상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 김용우(파마링크케이알 대표)
-서울대 약학대학 졸업(약사)
-제약사 마케팅·개발·대관업무 담당
-복지부 DUR(의약품 사용 적합성 평가) 기본설계 참여
-약가 데이터베이스 구축, 의약품 생산실적(5개년판) 발간
- 정보 인프라 구축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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