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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암제 임상시험 참여 기준이 완치 불가능한 진행성·전이성 암 환자 중심으로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그동안 항암 신약 임상은 표준치료를 모두 소진하거나 불응한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됐으나, 새로운 기준은 임상시험을 표준치료와 병행 가능한 치료 대안으로 인정하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국내 신약 개발 생태계와 환자 치료 접근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약품심사부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과 함께한 자리에서, 제약업계와 의료계 의견을 수렴해 항암제 임상시험 참여 조건을 단계적으로 재정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지난달 28일 임상시험 참여 기준을 구체화한 '비근치적 환경에서 항암제 초기 임상시험의 대상자 선정 시 고려사항(민원인 안내서)'을 제정 발간했다. 이번 안내서는 절제할 수 없는 국소 진행성·전이성 고형암이나 장기 생존율이 낮은 혈액암 등 이른바 '비근치적(non-curative) 환경'에서 일정 수준의 표준치료 옵션이 남아 있는 환자까지 항암제 초기 임상시험 대상에 포함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 핵심이다.
특히 기존 제도상 임상 참여가 지나치게 후순위로 밀려 있었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항암치료 패러다임이 정밀의료·표적치료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려는 취지에서 추진되는 조치다.
임상 현장에선 이번 개정을 항암제 개발 속도, 바이오마커 기반 치료 확대, 면역항암제 다변화 흐름을 고려해 임상시험 참여 권한을 보다 앞 단계 환자에게 부여하는 방향을 명확히 한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표준치료 모두 소진 후 임상시험' 구조가 당연시돼 왔다
현재까지 국내 항암제 임상시험 참여 기준은 기본적으로 표준치료를 모두 받은 뒤 효과가 없거나 재발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 참여가 고려되는 구조였다. 이는 환자 보호와 검증된 치료 우선 원칙을 이유로 설계된 것이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여러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표준치료가 존재하더라도 독성 부담이 크거나 환자의 전신상태가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혹은 표적치료제 등장으로 특정 바이오마커 환자군에게 신약 접근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기존 규정은 임상시험을 선택지로 올리기 어렵게 설계돼 있었다.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비교적 건강 상태가 좋고 치료 순응도가 높은 초기 단계에 신약 임상시험에 접근할 기회를 제한받았다. 반대로 치료 효과가 낮거나 부작용이 큰 기존 치료를 반복 적용하는 동안 환자의 체력이나 장기 기능이 저하돼 임상시험 참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신약 연구 측면에서도 임상에 포함되는 환자의 상태가 이미 많이 악화된 이후라 약효 평가 신뢰성이 떨어지고 부작용 발생 비율이 왜곡되는 등 과학적·개발적 비효율이 지적돼 왔다.
완치 어려운 진행성·전이성 암 환자, 표준치료 남아 있어도 임상시험 선택
이번 개선안은 완치가 어려운 진행성·전이성 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접근권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즉, 완치 가능성이 낮은 상태로 진단된 환자라면 기존 표준치료가 남아 있더라도 의사와 환자가 임상시험 참여 여부를 치료 전략 차원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임상시험을 기존 표준치료의 최후 대안(last resort)이 아닌, 표준치료와 동등하게 논의 가능한 치료 옵션으로 격상시킨 변화다. 항암치료가 더 이상 단일요법 중심의 직선형 구조가 아니라, 면역치료·바이오마커 기반 병용요법·정밀항암치료 등 복합적 접근으로 이동하고 있는 환경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개선으로 임상시험 참여가 단순히 치료 실패 후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질병 특성과 개인별 위험도, 분자생물학적 특성 등을 고려해 맞춤형 항암전략의 일부로 조기부터 검토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국내 항암치료 환경이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하는 환자중심 임상 접근 프레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1·2상 진입 장벽 낮아질 전망
이번 개정 방향은 임상시험 단계별 진입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항암제 임상시험의 초기 단계(특히 1상)는 기존 표준항암요법에 모두 실패한 말기 환자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면, 단순히 치료 옵션이 없어진 이후가 아니라, 질환 특성상 완치 가능성이 낮은 시점부터 임상시험 참여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환자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시점에 임상시험이 진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환자 부담 완화뿐 아니라 연구 결과 분석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약효·독성 데이터를 왜곡 없이 확보할 수 있고, 신약이 가진 잠재적 효과가 보다 명확히 평가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표적항암제·ADC(Antibody-drug conjugate)·면역관문억제제 등 신기전 중심으로 이동하는 최신 항암제 개발 전략과도 정합성이 높다.
치료 결정 권한이 국가에서 환자·의사로 이동
이번 개선은 환자 선택권 강화라는 정책적 메시지도 내포하고 있다. 기존 구조는 치료 순서를 국가가 정해놓고 환자가 그 체계에 따라가야 하는 방식이었다면, 새로운 기준은 환자와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목표·치료 부담을 고려해 치료 옵션을 함께 결정하는 구조를 인정한 것이다.
물론 모든 환자가 임상시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표준치료가 여전히 최선의 경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기존처럼 임상시험 참여가 임상적 마지막 단계가 아닌, 치료 전략의 한 축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은 항암제 정책 패러다임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희귀암·재발암·소아암 등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인 영역에서 특히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임상 경쟁력 제고 기대
항암제 임상시험 접근 기준 개선은 국제 동향과의 조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유럽 등 주요 선진 규제기관은 이미 바이오마커 기반 환자 선택과 병용요법 확대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임상 참여 기준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글로벌 초기 개발단계에서 환자군 진입 시점이 지나치게 늦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이로 인해 국내 환자가 해외에서 먼저 혜택을 누리는 ‘임상 접근 역전 현상’도 발생해 왔다.
이번 개선안은 국내에서도 합리성과 과학적 근거를 갖춘 임상시험이라면 환자의 초기 단계 참여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글로벌 공동개발·다국가 임상시험에서 한국의 참여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을 열었다. 이는 국내 의료기관이 단순 데이터 제공 기관을 넘어 연구 참여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으며, 국내 바이오기업의 혁신 항암제 개발 속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장치 확보·환자 정보제공 체계 강화 필요
기준 개정이 시행되면 임상시험 접근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에 따른 안전장치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상시험 참여가 단순히 순서를 앞당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치료 전략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임상시험의 목적·효과·부작용·중단 기준·비용·추적관찰 가능성 등에 대한 정보 제공 체계를 정교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또한 의료기관과 연구자가 임상시험 프로토콜을 설계할 때 환자 안전성 관리 계획, 바이오마커 기반 환자 선정 기준 등을 보다 명확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환자 의사결정 과정이 강화되는 만큼, 정보 비대칭성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요구된다.
이번 항암제 임상시험 참여 기준 개선은 환자 접근성 확대와 신약개발 효율성 제고라는 양측의 요구가 맞물린 결과로 평가된다. 기존 구조가 표준치료 종료 이후 임상시험을 허용했다면, 개선된 구조는 완치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진행성·전이성 암 환자를 대상으로 표준치료와 임상시험을 치료 전략 단계에서 병행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문을 연 것이다.
이는 단순 규제 변경을 넘어 항암치료 접근성의 철학적 변화를 반영한 정책적 조정으로 볼 수 있다. 국내 항암제 임상 환경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초기 개발 참여 여건이 강화되고, 글로벌 임상시험 편입 가능성이 높아지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예정이다. 나아가 환자 중심의 치료 선택 구조가 정착될 경우, 항암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 정책은 기존과 다른 방향의 진화를 요구받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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