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첨단재생의료·바이오 무너져…연구비 쪼개고 규제 막혀”
임상 후기·제품화 단계까지 국가 장기 지원 트랙 필요
일본 성공 사례처럼 선택과 집중 통한 장기 투자와 네거티브 규제 전환 시급
난치병 환우 및 연구자, 정부의 실질적 지원 확대 호소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1-13 06:00   수정 2025.11.13 06:02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재생의료 치료기회 확대-전분화능줄기세포를 중심으로’ 정책토론회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국내 첨단재생의료 및 바이오의약품 산업이 제도적 병목과 분절된 지원 구조에 막혀 정체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를 상용화한 국가임에도, 2014년 이후 신규 치료제 상용화가 사실상 중단됐으며 연구비는 200여개 과제로 분산돼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연구처럼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장기 투자와 규제 합리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래셀바이오와 더불어민주당 박희승·서미화 국회의원 공동 주최로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재생의료 치료기회 확대-전분화능줄기세포를 중심으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는 정형민 미래셀바이오 대표(건국대 의대 교수)가 맡았으며, 공동 주최자인 제주대학교 박세필 특임교수도 함께했다. 서울아산병원 박주현 교수,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 조인호 단장, 국무조정실 정병규 규제혁신개혁관, 보건복지부 이준미 재생의료정책관, 난치병 환자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박지원·민형배·전현희 의원도 참석해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래셀바이오 정형민 대표는 “첨단재생의료 및 바이오의약품 제품 개발은 신약개발과 동일한 수준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세계 선도 제품화를 위한 과제 발굴과 확실한 재정 투입이 주도권 확보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 최초 의약품 단계까지 가려면 최소 150억~300억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며 “국가가 임상 후기와 제품화까지 이어지는 장기 지원 트랙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한국은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와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를 모두 상용화한 국가지만, 2014년 이후 신규 치료제 추가적인 상업화 성과는 제한적이었다”며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높은 규제 장벽과 비현실적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질적 성과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라며 “이제는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재생의료 지원 체계가 범부처 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과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돼 있다. 임상 1/2a 단계 과제는 3년 최대 21억원, 치료기술 개발 과제는 2년 최대 20억원 수준으로 지원되고 있다. 반면,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이끄는 일본의 iPSC 연구팀은 정부로부터 1조원이 넘는 장기 투자를 받아 다수의 세포치료제를 임상 단계에 올려놓았다. 

국내는 지난 10년간 약 7000억원의 연구비를 200여개 연구팀에 분산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분절적 연구비 구조로는 글로벌 재생의료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규제 보완의 필요성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정 대표는 “현재 첨단재생바이오법에 따라 특례 적용을 받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에 제출해야 하는 세포처리시설 허가증 요건이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배아 및 만능줄기세포(iPSC) 기반 치료제는 생명윤리법상 수정란 기증자 정보 열람이 제한돼 세포처리시설 허가를 받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면서 “세포처리시설 허가증, 인체세포처리업 허가증, 첨단바이오의약품 제조업 허가증 중 하나를 제출해도 인정하도록 제도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대표는 “한국은 여전히 포지티브 규제에 갇혀 있다"며 "안전 기준은 엄격히 지키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 혁신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환경을 만들어 희귀·난치 질환 환자에게 최소한의 치료 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셀바이오 정형민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재생의료 치료기회 확대-전분화능줄기세포를 중심으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약업신문=권혁진 기자

미래셀바이오가 개발 중인 전분화능줄기세포 기반 치료제도 소개됐다. 미래셀바이오는 희귀질환인 간질성 방광염(Interstitial cystitis)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국내 연구진은 이미 배아줄기세포 유래 중간엽줄기세포(hESC-MSC)를 활용해 1상 안전성 결과를 보고했다.

정 대표는 “방광은 구조가 단순하고 손상 시 즉각 대응이 가능해 세포치료제의 안전성을 검증하기에 적합하다”며 “간질성 방광염 환자는 하루 수십 차례 소변을 보는 극심한 고통을 겪지만, 기존 치료제는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줄기세포 치료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분화능을 지닌 만능줄기세포 기반 방광질환 치료제는 아직 상용화된 사례가 없다”며 “후기 임상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iPSC 기반 치료제 중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선 환자들의 절절한 호소도 이어졌다. 난치병 환우 대표로 참석한 정영태 씨(군산대학교)는 “간질성 방광염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많이 제한되고 있다”며 “통증이 심해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업무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과 생활습관을 늘 조심해야 하고, 근무 중에도 통증이 찾아와 힘들 때가 많다”며 “비슷한 환자들이 치료비 부담과 통증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정 씨는 “많은 환자가 병으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 있다”며 “현재 치료제가 많지 않아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에도 수십 번 소변을 보며 고통을 견디는 환자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제가 하루빨리 개발돼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주대 박세필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 1세대로서 임상개발 초기부터 현장을 지켜봐 왔지만, 지금의 지원 구조로는 첨단재생의료 임상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20여년 전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했지만, 현재는 연구자들이 환자 한 명당 1억원이 넘는 임상 비용을 스스로 감당하며 버티고 있다”며 “정부의 매칭 지원금은 많아야 3억~4억원 수준으로, 환자 치료를 병행하는 임상 연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금처럼 공정성을 이유로 예산을 일률적으로 나누면 잘하는 연구팀도 함께 무너진다”라며 “AI 산업처럼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경쟁력 있는 연구팀에 자원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환자에게 실질적인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내년 예산에서 첨단바이오 기업과 연구기관의 임상 지원을 확대하고, 과감한 규제 개혁과 선택적 지원으로 산업의 생태계를 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희승 의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재생의약품을 상용화했지만, 이후 기술개발과 제도 개선이 더디게 진행돼 경쟁력이 약화됐다”며 “국민이 재생의료를 받기 위해 국외로 떠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차원의 지원과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K-재생의료가 다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미화 의원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도와 규제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혁신은 국민 곁에 닿기 어렵다”며 “안전성과 신속성, 혁신성이 조화를 이루는 합리적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와 국회가 협력해 연구자와 기업이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임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지원 의원은 “첨단바이오의약품은 국민 건강과 미래 산업을 동시에 견인할 국가 전략산업”이라며 “이 기술이 환자에게 빠르고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규제혁신과 임상 지원체계 확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혁신과 안전이 조화를 이루며 세계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를 마련해 산업의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형배 의원은 “바이오의약품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생명과 인간 존엄을 지키는 과학”이라며 “국가가 연구개발을 믿고 지원해 현장의 실험과 임상이 환자에게 더 빨리 닿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규제 완화와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토론회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과학적 혁신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현희 의원은 “첨단바이오의약품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국가적 책무이자 사회적 과제”라며 “기술 혁신이 제도의 벽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규제혁신과 현장 중심의 정책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에 매진하고 국민이 더 안전하게 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 서미화 의원, 박지원 의원.©약업신문=권혁진 기자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 및 재생의료 치료기회 확대-전분화능줄기세포를 중심으로’ 정책토론회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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