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기술수출 현실㊤ "예선은 통과, 본선에서 막히는 이유"
빠른 실행력과 높은 연구 효율로 글로벌 빅파마 주목
CDA 이후 본선 단계서 과학적 깊이 부족 한계
명확한 PoC·사업화 가능성 입증 등이 성공의 관건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0-20 06:00   수정 2025.10.20 08:30
‘바이오플러스 인터펙스코리아 2025'가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행사 컨퍼런스 패널 토론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한국 바이오텍이 글로벌 빅파마의 시선을 끌고 있다. 가성비 높은 연구 역량, 빠른 실험 속도,적은 자금으로도 밀도 높은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실행력 덕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파트너링 미팅, 즉 예선은 통과하지만, 기밀유지계약(CDA) 이후 본선 단계에서 막히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린 ‘바이오플러스 인터펙스코리아 2025(BIOPLUS-INTERPHEX KOREA 2025)’에서는 이러한 과제를 짚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 바이오 라이선스 아웃 전략: 글로벌 시장 문을 여는 법(Licensing-Out Strategies for K-Bio: Unlocking Global Opportunities)’을 주제로 열린 이번 패널 토론에서는 한국 바이오텍이 글로벌 시장에서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을 성공시키기 위한 조건과 전략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좌장을 맡은 BNH인베스트먼트 강지수 전무는 “최근 국내 바이오텍의 대형 딜이 이어지며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왜 딜이 막히는지를 모른 채 멈춰있다”면서 “오늘 논의는 그 본질을 짚어보는 자리”라고 운을 뗐다.

“한국 기업, 자금 대비 데이터는 탁월하지만…”

존슨앤존슨 조아련 이사는 “한국 기업들은 모은 자금 대비 생산한 데이터 수준이 정말 놀랍다”고 평가했다. 다만 차별화 포인트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조 이사는 “현재 글로벌에서 개발 중인 신약 후보(Assets)는 약 2만개, 타깃은 2000개 수준이며, 주요 타깃 38개가 전체 25%가량을 차지한다”며 “대부분이 이 범위 안에 몰려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이사는 “이미 알려진 타깃이라도 접근법이 새로워야 한다”면서 “같은 타깃이라면 모달리티나 전달 기전, 혹은 완벽히 새로운 퍼스트 인 클래스(계열 내 최초) 타깃으로 차별성을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30분 남짓한 파트너링 미팅에서는 △문제 정의 △차별적 접근 △킬러 데이터 세 가지 메시지를 15분 내 각인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슈 정회량 이사는 “한국은 온콜로지 중심이지만, 사실 질환 스펙트럼은 고르게 분포돼 있다”라며 “문제는 방향성이 아니라 깊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는 “로슈가 접한 한국 기업 중 다수는 훌륭한 아이디어와 빠른 실행력을 보여주지만, 타깃 연구의 깊이가 부족하다”며 “우리가 찾는 건 ‘육각형 에셋’인데, 실제로는 실험 아이디어가 많고 확증 데이터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한국 기업의 피치를 듣다 보면 랩미팅을 보는 듯한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아이디어와 실험이 흩어져 있고, 하나의 과학적 질문(key question)을 끝까지 추적하지 못한다”라고 아쉬워했다. 본선 단계에서는 정량적 검증이 없으면 바로 탈락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타깃 밸리데이션과 트랜슬레이션 전략부터 다시 써야”

존슨앤존슨 조아련 이사는 한국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전임상 데이터 패키지 중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타깃 밸리데이션은 질병과 타깃 단백질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과정, 트랜슬레이션 전략은 전임상 데이터를 임상 설계로 연결해 실제 치료제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조 이사는 타깃 밸리데이션 및 트랜슬레이션 세 가지 △타깃 발현 프로파일링(정상조직과 질환조직 비교) △유전적·기능적 검증(KO·CRISPR 모델 등) △시그널링 경로와 클리니컬 아웃컴(임상 결과)의 연관성 등의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이사는 “임상 전환 단계에서는 PK/PD 모델링, 환자 선별용 바이오마커, PoC(Proof of Concept) 설계 아이디어를 보여줘야 한다”며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로슈 정회량 이사도 이 견해에 동의했다. 정 이사는 “모든 데이터를 한 번에 쌓을 수는 없다”면서도 “어떤 질문에 우선순위를 두고 얼마나 깊이 들어갈지는 인더스트리 베테랑이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신약개발 생태계에는 다국적 제약사 R&D센터가 없기 때문에, 글로벌 엑셀러레이터나 공동연구를 통해 경험을 빌리는 구조가 필요하다고도 조언했다.

“아이디어는 예선 통과, 데이터 깊이는 본선 통과”

결국 패널들의 진단은 한 가지로 모였다. 한국 바이오텍은 ‘속도와 효율’로 예선을 통과하지만, 본선을 통과하는 ‘데이터의 깊이와 타깃의 명료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실험을 정량적 확증으로 연결하는 산업형 R&D 설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심수민 상무는 “한국 바이오텍이 종양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면서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한 단계 발전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심 상무는 “온콜로지는 임상 초기부터 효능 신호를 확인할 수 있고, 상장이나 투자 유치에도 유리하다”며 “그러나 현재 글로벌 시장은 이미 과밀화돼 있고, 실제 중국에서만 수백 개의 임상 단계 항암제가 동시에 진행되며 경쟁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특히 심 상무는 “이제는 온콜로지만으로 시장을 설득하기 어렵다”며 “명확한 PoC와 사업화 가능성을 입증해야 하고, 투자자들도 과거처럼 가능성이 아니라 증명을 요구하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존슨앤존슨 조아련 이사는 “좋은 아이디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상업적 타당성까지 연결하는 사이언티픽 밸리데이션·트랜슬레이션·비즈니스 밸리데이션 3단계 접근이 필요하다”며 “그게 결국 글로벌이 요구하는 PoC”라고 전했다.

로슈 정회량 이사는 “본선에서의 탈락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며, 질문의 우선순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라며 “데이터의 깊이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BNH인베스트먼트 강지수 전무, 로슈 정회량 이사, 존슨앤존슨 조아련 이사,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심수민 상무, 조현무 프리미어파트너스 상무.©약업신문=권혁진 기자
‘바이오플러스 인터펙스코리아 2025' 컨퍼런스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패널토론이 끝난 뒤에는 존슨앤존슨과 JLABS이 주최한 ‘Young Professional Reception’이 이어졌다.©약업신문=권혁진 기자
전체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