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선언, 한국 제약사에 "기회이자 부담"
미국 제약 관세 폭탄, 글로벌·국내 제약사 모두 ‘투자냐 관세냐’ 기로에
K-바이오 기업, FDA 협력·현지 생산 전략 재정비 불가피
미국 내 생산 확대 필요성 증대…정치권 공방 가열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9-29 06:00   수정 2025.09.29 06:2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0월 1일부터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모든 ‘브랜드 또는 특허 의약품’에 대해 100% 수입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겉보기에는 업계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조치로 보이지만, 실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조치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공개되었으며, 관세 예외 조건은 “미국 내 생산시설 착공 또는 건설 진행”으로 명확히 규정됐다.

글로벌 금융 분석기관 씨티리서치(Citi Research)는 “다수의 다국적 제약사가 이미 미국 내 대규모 투자 계획을 실행 중이어서 오히려 투자자들에게는 불확실성 해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실제로 애브비, 암젠, 아스트라제네카, 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뿐 아니라 셀트리온, 아우로빈도, 히크마와 같은 아시아 제네릭 기업들까지 잇달아 미국 현지 공장 설립을 발표한 상태다. 투자 규모는 최소 1억 9500만 달러에서 최대 500억 달러에 달한다.

다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 헬스케어 전문 투자 기업 리링크 파트너스(Leerink Partners)는 “CDMO(위탁개발생산) 아웃소싱 계약도 관세 면제 대상이 되는지, 기존 가동 중인 미국 공장은 어떻게 적용되는지 등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컨설팅 기업 KPMG의 라이프사이언스 리더 크리스틴 포티에 역시 “파일럿 플랜트 규모도 인정되는지, 생산 시설의 기준이 무엇인지 업계는 혼란에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단체인 PhRMA 역시 우려를 표했다. 알렉스 슈라이버 공공정책 수석부사장은 “미국 내 투자 확대는 긍정적이지만,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 연구개발과 생산 설비 투자에 쓰일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약산업은 의약품 가격과 공급 불안을 피하기 위해 관세 적용에서 전통적으로 예외를 인정받아왔다는 점도 지적됐다.

한편, 유럽연합(EU)과 일본과의 최근 무역협정에 따라 이미 합의된 15% 상한 관세는 유지될 예정이다. 제네릭 의약품도 이번 100%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실제 적용 범위는 특허 기반 오리지널 의약품에 국한될 전망이다.

제프리스 애널리스트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관세 위협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 정치적 성과를 노리는 것일 수 있다”며 실제 업계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강조하며 중간선거용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제약사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셀트리온은 이미 미국 현지 생산기지 설립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번 발표로 의사결정이 한층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글로벌 파트너사들과의 CDMO 계약을 중심으로 미국 내 생산기반 확대 여부를 적극적으로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과 유한양행 같은 연구개발 중심 기업들도 미국 협력사와의 합작 형태로 현지 생산라인을 확보해야 관세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한국 기업들에게 부담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현지 투자 확대를 통해 글로벌 빅파마와 협업할 여지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K-바이오 기업들은 미국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해 이미 FDA 승인과 현지 유통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전략 재정비의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 내에서는 의약품 가격 상승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으며, 민주당은 이를 ‘환자 부담 증가’라는 프레임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공화당은 ‘제조업 일자리 창출’과 ‘경제 안보 강화’를 강조하며 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파장은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제약사들이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면 단기적으로는 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 역시 통상 외교 차원에서 미국 측과 제약·바이오 산업 협력 확대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조치는 단순한 무역정책을 넘어 제약·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직결되는 문제로, 미국 대선 국면과 맞물려 국제 정치·경제적 파급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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