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당뇨 치료 넘어서 치매·천식까지 정조준
메트포르민 대비 치매 발생률 절반…GLP-1의 신경 보호 기전 주목
비만 천식 환자 대상 연구에서 질환 조절 점수 유의미한 개선
치매·천식 예방 전략으로 적응증 확대 가능성에 글로벌 업계 관심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8-05 06:00   수정 2025.08.05 06:01

당뇨병 치료와 체중 감량제로 잘 알려진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eceptor agonists)가 뇌와 폐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발표된 두 건의 대규모 연구는 GLP-1 계열 약물이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치매 위험을 실질적으로 낮추고, 비만과 동반된 천식 환자의 질환 조절에도 유의미한 효과를 미친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결과는 기존의 혈당 조절에 국한됐던 GLP-1 계열 약물의 적응증이, 향후 뇌신경질환 및 호흡기질환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국내외 의료계와 제약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BMJ Open Diabetes Research & Care’에 발표된 대만 아시아대학교 Szu-Yuan Wu 교수팀의 연구는 미국 TriNetX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후향적 분석을 통해, GLP-1 작용제를 복용한 제2형 당뇨 환자에서 메트포르민 대비 치매 발생률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고 보고했다.

연구는 평균 연령 58세의 환자 8만 7000여 명을 GLP-1군과 메트포르민군으로 나눠 추적한 결과, GLP-1군의 치매 누적 발생률은 약 2.5%였던 반면, 메트포르민군은 5%로 약 두 배 차이를 보였다. 특히 GLP-1군은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12%, 비혈관성 치매 위험이 2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Wu 교수는 “GLP-1 약물은 단순히 혈당을 낮추는 것을 넘어, 신경염증 억제, 뇌 대사 개선, 시냅스 기능 향상, 아밀로이드-베타 축적 감소 등 복합적인 기전을 통해 신경 보호 효과를 나타낸다”며, “기존 1차 치료제로 자리 잡은 메트포르민에 비해 치매 예방 측면에서 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GLP-1 계열 약물은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리라글루타이드(삭센다)와 세마글루타이드(오젬픽, 위고비)에 대해 각각 당뇨 및 체중 조절 적응증으로 허가했으며, 특히 세마글루타이드는 2024년 기준 월간 3만 건 이상의 처방이 발생하는 등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전문의 A교수는 “GLP-1 계열 약물은 인슐린 분비 촉진과 포만감 유도 외에도 항염증성 특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대사성 뇌질환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 현장에서도 관심이 크다”며, “고령화 속 치매 위험이 높은 제2형 당뇨 환자군에 있어 차별화된 치료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애버딘대학교 연구팀은 'Advances in Therapy'에 게재된 연구를 통해, GLP-1 약물이 비만을 동반한 천식 환자군의 질환 조절 점수를 유의하게 개선시킨 사실을 밝혔다. 연구는 BMI 30 이상인 성인 천식 환자 6만 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 중 약 1만여 명은 GLP-1 약물을 복용했고, 나머지는 유사 특성을 지닌 비복용자였다.

1년 이상 추적 관찰 결과, GLP-1군은 치료 시작 전보다 현저히 나아진 천식 조절 점수를 보였으며, RDAC(Risk-Domain Asthma Control) 및 OAC(Overall Asthma Control) 지표 모두에서 유의미한 개선이 확인됐다.

다만 폐 기능 자체의 개선 여부는 COVID-19 시기 중 누락된 호흡기 검사 데이터로 인해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았다.

GLP-1 계열 약물이 실제로 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혹은 체중 감량을 통한 간접적 효과인지는 여전히 논의 중이다.

미국 Long Beach Medical Center의 폐질환 전문의 Jimmy Johannes 박사는 “GLP-1 수용체가 폐에도 존재하며, 약물이 기도 염증 및 과민성을 직접 억제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반면 Northwell Staten Island 병원의 Thomas Kilkenny 박사는 “기존 다수의 연구에서 체중 감량만으로도 천식 조절이 개선된다는 점이 반복 확인된 바 있다”며, “이번 연구에서도 GLP-1 자체 기전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감량에 따른 효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두 연구는 모두 후향적 관찰 연구라는 점에서 인과관계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미국 해크센서크 메리디언 병원(Hackensack Meridian Jersey Shore University Medical Center in New Jersey)의 내분비내과 Jennifer Cheng 박사는 “관찰 연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GLP-1이 치매나 천식을 직접적으로 예방한다고 결론짓기엔 무리”라며,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통해 약물의 기전 및 효능을 보다 명확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GLP-1의 신경학적·폐학적 적응증 확대를 위한 글로벌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제약사나 다국적사의 관련 파이프라인도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글로벌 GLP-1 시장은 2024년 기준 220억 달러(약 30조 원)에 달하며, 2030년까지 연평균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한 GLP-1 기반 적응증 임상 3상에 돌입했고, 천식과 COPD에 대한 신규 적응증 탐색도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GLP-1 계열은 고혈당 조절 외에도 염증 억제, 대사 경로 정상화, 중추 신경계 조절 등 다중 타깃 작용기전을 가진 블록버스터로 진화 중”이라며, “치매와 호흡기질환이라는 두 난공불락 영역에서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GLP-1 계열 약물은 이제 단순한 혈당 강하제 또는 감량 주사를 넘어, 만성 염증성 질환과 신경퇴행성 질환까지 아우르는 '다중 계통 치료제'로서의 전환점에 놓여 있다. 특히 고령화가 심화되고 만성질환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한국 의료 환경에서, GLP-1의 진화는 단순한 약물 트렌드를 넘어서는 중장기 보건 전략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후속 임상 결과와 규제기관의 적응증 확대 여부에 따라, 이들 약물이 뇌와 폐를 동시에 겨냥하는 차세대 전신 치료제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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