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 도입 앞두고 정부-업계 '동상이몽'
식약처 “국제 기준 조화 목표… 단계적 시행·지원체계 병행”
박수연 기자 waterkite@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7-30 06:00   수정 2025.07.30 09:37

정부가 추진 중인 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가 OEM·ODM 의존 구조가 강한 국내 화장품 산업을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업계와의 추가 소통을 예고하며 연착륙을 위한 유예기간과 지원 방안을 내놨다.

서울 영등포구 대한화장품협회에서 29일 열린 전문지 기자단 간담회에서 식약처와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들은 제도 도입 취지와 추진 과정, RP 설정 배경, 업계 현실과의 괴리 등 다양한 쟁점을 설명했다. 식약처 고지훈 화장품정책과장, 천세경 사무관, 김민우 사무관, 대한화장품협회 연재호 부회장과 장준기 전무 등이 참석했다.

서울 영등포구 대한화장품협회에서 29일 열린 전문지 기자단 간담회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지훈 과장이 화장품안전성 평가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뷰티누리 


국내 RP는 왜 책임판매업자인가

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는 제품 판매 전, 자격을 갖춘 평가자가 작성한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책임판매업자가 보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대표발의한 화장품법 개정안에도 일부 반영됐다.

김민우 사무관은 "이번 제도의 목적은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고, 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평가서를 쓰는 어려움보다, 제품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이를 책임지는 구조가 중요한데, 그런 맥락에서 제도의 취지를 잘 설명하기 위해 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해 왔다"고 덧붙였다.

핵심 쟁점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제품 안전을 책임지는 'RP(Responsible Person, 책임자)' 개념을, 국내에선 기존의 책임판매업자에게 부여한다는 점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등록된 책임판매업자는 약 2만7000여명이다. 이 중 수입 관련 업체를 제외하고 국내 사업을 하는 책임판매업자는 약 1만7000여명에 달한다. 이들 중 대다수가 영세 사업자인 만큼, 책임판매업자에게 RP 역할을 맡기는 구조는 현실적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RP를 책임판매업자로 설정한 배경에 대해서 김 사무관은 "유럽이나 미국처럼 우리도 품목 기반 안전관리 체계를 가져가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이를 위해 국내 제도에 맞는 방식을 고민했다"며 "영업자가 기존에도 제품과 안전성 정보를 갖는 구조였기 때문에, RP 역할도 그 주체에게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세경 사무관은 "유럽에선 RP가 안전성 확보와 관련된 책임을 지며, 미국 역시 유사한 체계를 갖고 있다"며 "국내에선 기존에 제품 정보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주체였던 책임판매업자가 이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보고서 작성은 위탁이 가능하며, ODM이나 외부 컨설팅 기관을 통한 지원도 허용된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제조업체와의 정보 불균형 우려

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의 도입을 두고 현장에선 책임판매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현행 화장품 산업 구조상 제조업체가 제품 기획과 생산 전반을 맡고, 브랜드사는 책임판매업자로서 마케팅과 유통을 담당하는 분업 체계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질적 제품 정보를 보유한 주체가 대부분 제조업체라는 점이다. 제조사가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거나, 품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생길 경우, 법적 책임이 전적으로 책임판매업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고지훈 화장품정책과장은 "OEM·ODM 중심으로 발전해 온 국내 화장품 산업은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이 같은 구조가 책임 분담이나 정보 공유에 있어 불안정성을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이 특성을 어떻게 기회로 전환해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제도 설계 과정에서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과장은 이번 제도 도입이 일방적인 행정 지침이 아닌, 충분한 소통과 협의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를 포함해 업계와의 소통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고, 실제 시행까지 5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현장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며 "책임판매업자 중심의 의무교육 전환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제조업체와 책임판매업자 간 계약 구조를 법으로 직접 규정하는 방안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고 과장은 "영업기밀에 해당하지 않는 시험 결과 등 정보는 제공하도록 이미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다"면서도 "현실에서 정보 접근이나 책임 분담 과정에서 불합리한 구조가 있다면, 식약처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인력 양성부터 국제기준 조화까지… 단계적 연착륙 유도

식약처는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고 제도의 원활한 연착륙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사무관은 "전문 인력 양성부터 안전성 평가 보고서 작성 가이드라인 제공, 안전성 데이터베이스(DB) 구축까지 다각도로 준비하고 있다"며 "식약처가 산업계와 협력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이유는, 결국 소비자 안전과 기업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아울러 식약처는 교육·컨설팅 등 실무 중심의 지원도 병행 중이다. 김 사무관은 "평가자 교육과정을 새로 개설하고, 기업이 실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안전성 평가 정보가 해외 수출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국제 기준과의 조화에도 힘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고 과장은 "앞으로는 안전성 평가 정보가 해외 수출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국제 기준과의 조화에도 힘쓸 계획"이라며 "상호 인정까지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보고서 형식과 구조를 해외 기준에 맞춰 간접적인 신뢰 확보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연재호 부회장은 "화장품 안전성 평가 제도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며, 국내 화장품 산업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고 강조했다. 협회 측에서도 식약처에 제도 도입을 먼저 건의한 바 있으며, 이는 단지 규제 대응 차원을 넘어 K-뷰티의 국제 경쟁력을 위한 필수 조치라는 설명이다.

연 부회장은 "해외 시장에선 브랜드 이름보다 제품의 안전성과 관련된 프로파일을 먼저 본다"며 "이런 기준을 우리 산업이 선제적으로 갖추는 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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