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 보건복지부를 지켜온 이기일 전 제1차관이 지난 27일 이임식을 끝으로 정든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복지부의 1, 2차관을 처음으로 역임한 주인공이자, 여성가족부 신영숙 차관과는 ‘부부 차관’으로도 관심을 모았던 그다. 그러나 그는 “나는 아직 42세”라며 공직생활 퇴임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복지부 전문기자협의회는 이임식을 앞둔 이기일 전 차관을 최근 만나 지난 공직생활에 대한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전해들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그가 건넨 명함이었다. 그에게 명함이란 단순히 자신의 이름과 직업, 연락처를 적은 것이 아닌, 그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소개하는 작은 리플릿이었다. 국민연금 3차 개혁, 난임부부 지원사업, 위기임산부 상담 및 보호출산제, 고령층 복지, 청년 정책 등이 보기 쉽게 정리돼 있다. 이 전 차관은 “정무직은 영업직”이라며 “명함은 영업비법이자, 국민들에게 우리 직원들이 만든 정책을 소상히 설명하고 알려주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연금을 18년만에 개혁한 지난 3월20일을 “공무원 생활 중 가장 기쁜 날”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전임 선배 차관들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물은 99도까지는 끓지 않는다. 선배들의 노력으로 이미 연금은 95도쯤 와 있었다”며 “올해 제가 이룬 성과는 여러 선배들이 조금씩 결실을 쌓아준 덕분”이라고 털어놨다.
◇보건통 출신의 가장 뜻깊은 순간 “코로나19 실내 마스크 벗은 것” 이 전 차관은 보건의료 분야에 6년 넘게 몸담았던 ‘보건통’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가장 뜻깊은 순간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실내 마스크를 벗었던 때다. 사상 처음 겪은 신종 감염병 사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내 마스크 착용 등을 일상으로 만들었고, 사람들간의 관계는 그만큼 멀어졌다. 그러나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스크 착용 해제’가 현실이 되면서 일상도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전 차관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민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뜻깊다. 이후 코로나19 변이에는 백신이 풀리기도 하면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치명률을 보였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참아준 국민들과 소상공인들, 중환자를 치료하고 선별진료와 재택치료를 해준 의료진들, 생활치료센터와 보건소 등에서 활동한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가장 큰 신세를 졌다”고 감사를 전했다.
복지부 공무원들에 대해선 “우리 직원들 진짜 고생많았다. 메르스부터 세월호, 코로나19까지 정말 훌륭했다. 복지부에 오는 직원들은 어려운 국민들을 도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도 “복지부 일이 정말 많다. 그래서 차관 입장에서는 조직이 좀더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아이 1명이 천하보다 귀해” 약사회와 함께 알린 위기임산부 비밀상담 그는 대한약사회와 함께 홍보하고 있는 위기임산부 상담전화 1308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위기임산부 맞춤형 상담서비스’는 임산과 출산,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위기임산부를 대상으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7월부터 약국에 방문한 위기임산부에게 약사가 1308 상담전화를 안내하고 있다. 이는 대한약사회와 복지부간 체결한 업무협약의 결과로, 최광훈 전 약사회장과 이 전 차관이 함께 서울 동대문구 소재 약국들을 순회하며 홍보와 협조 요청도 함께 진행한 바 있다.
이 전 차관은 “뜻하지 않은 임산과 출산을 겪은 분들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임신테스트기를 파는 약국이다. 두 번째로 가는 곳은 산부인과다. 그래서 약국과 산부인과에 홍보물을 붙였다. 동아제약과 얘기해 임테기에도 상담번호 ‘1308’ 안내문구를 넣었다”며 “지난해 7월 시행 후 지난달까지 110명이 보호출산을 익명으로 신청했다. 그 덕분인지 베이비박스에 아기도 덜 들어온다. 예전엔 연간 100여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한자리 수다. 110명을 살린 셈이다. 아이 1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듯, 아이가 많이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들을 잘 보호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약사회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퇴임 후에도 일하고 싶어…나는 아직 40대” 특히 그는 퇴임 후의 삶에 대해선 “세금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세금 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제 나이에 0.7을 곱하면 42다. 요즘은 옛날보다 수명이 길어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연장된 만큼 나이를 이렇게 계산해야 한다더라. 앞으로 30년간 일할 계획이다. 퇴임 후 여행을 다니며 재충전의 기회를 가진 다음 어디서든 일하고 싶다. 공직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보건의료계를 향해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며 “의료계와 정부는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환자 안전을 지킨다는 목적이 같다. 단 하나, 의료계가 환자 생명을 수호하고 정부는 보호한다는 점만 다르다. 어렵고 힘들었던 코로나19 시기에 의료계와 정부가 하나가 되어 국민의 생명을 살린 경험은 정말 좋은 기억이다. 제가 떠나더라도 정부와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어려운 의료계가 제자리를 찾아줄 것을 부탁드린다. 많이 신세졌고, 국민의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함께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