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계 전반으로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개선(ESG)이 경영 화두로 떠오르면서, 제약업계에서도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을 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ESG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국제적 합의로 제정한 ISO 국제표준 활용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는 판단인데,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제약업계의 가장 대표적인 ISO인증은 부패방지 경영시스템 국제표준규격인 ISO37001이다. ISO 37001은 ISO가 2016년 체계적인 부패 리스크 관리를 위해 만든 글로벌 반부패 경영시스템 표준이다.
제약업계에서 ISO37001 인증이 활발한 이유는 2017년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불법 리베이트 근절 방안으로 이를 제시하고 지원 중이기 때문이다.
협회는 ISO37001 도입으로 ▲리베이트 악순환, 윤리경영 선순환으로 전환 ▲윤리경영 기업문화 정착 위한 인식 변화 ▲체계적 반 부패 윤리경영 시스템 운영 기틀 마련 등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 9월까지 확인한 결과 약 60곳 가까운 제약사가 ISO37001 인증을 받았다”고 전했다.
ISO37001을 도입하면 대내외 이해관계자들에게 조직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또 부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영상 위험요소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올바른 반부패 문화 확산에 따라 위기 관리가 가능해진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에는 공공기관이나 준 정부기관들도 인증에 열심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김선민)은 최근 ISO 37001 인증을 갱신했다고 5일 밝혔다.
심평원은 2019년 최초 인증을 받은 이래 매년 심사를 받아왔으며, 3년차에 해당하는 올해는 심사기준에 따라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전반에 대해 인증 전문기관으로부터 현장 심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인증 갱신을 위해서는 3년마다 초기 심사에 준하는 엄격한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이번 평가를 통해 심평원은 적합 판정을 받아 향후 2025년까지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 자격을 유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선민 심평원장은 “이번 재인증을 통해 우리 원의 부패방지경영 시스템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임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부패리스크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점검을 통해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공공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ISO37001이 절대적인 치트키는 아니다. 신풍제약은 2019년 말 ISO37001 인증을 획득했지만 2020년 자사 약품의 처방 대가로 의료인들에게 현금 300만원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해당 품목의 판매업무중지 조치를 받았다.
최근 내부직원의 46억원 횡령사건이 발생한 국민건강보험공단도 2020년 ISO37001을 획득한 바 있다.
당시 김용익 공단 이사장은 "국민의 건강한 삶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으로서 이번 국제표준화 기구의 객관적 검증을 통해 반부패·청렴 경영을 대외적으로 공인받았다"며 "앞으로도 더욱 안전하고 청렴한 공단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46억원 횡령뿐 아니라 건강보험 가입자 개인정보 불법 유출부터 금품수수, 직장 내 성비위, 음주운전 뺑소니 등 공단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그러자 최근에는 보다 포괄적인 윤리 경영 방침을 담고 있는 준법경영시스템 ISO37301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ISO 37301은 지난해 4월 ISO가 제정한 준법경영 관련 국제표준으로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준법경영시스템 수립부터 개발, 실행, 평가, 유지관리, 개선 등의 프로세스를 확립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증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대외적인 이미지 쇄신 및 홍보와 마케팅만을 위해 ISO 인증을 활용하지 말라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ESG 경영을 위해 공신력있는 기관으로부터 ISO 인증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여주기식이 아닌 체계적이며 합리적 방식으로 ESG에 접근해야 인증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