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약국街,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넘쳐나는 가짜·위조藥으로 골머리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3-06-11 18:41   수정 2003.06.11 23:09
최근 미국에서는 빈혈약 '프로크리트'(Procrit)와 '에포젠'(Epogen)의 정품에 비해 유효성분을 20분의 1 밖에 함유하지 않은 가짜약이 대량으로 적발됐다.

또 '세로스팀'(Serostim)이라는 AIDS 치료제를 투여받아 온 환자들이 가짜약을 주사받은 뒤 병세가 악화되었는가 하면 정신분열증 치료제 '자이프렉사'의 제품용기 속에서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이 선명히 찍혀 있는 흰색 알약을 발견했다는 약사들의 신고가 FDA에 속속 접수되고 있다.

요사이 미국의 약국街가 넘쳐나는 가짜약과 위조약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너무도 정교하게 위조된 관계로 약의 전문가인 약사들조차 구별할 수 없는 가짜약들이 약국 진열대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것.

한 예로 최근 2년 동안 플로리다州에서 발견된 가짜약들만도 '프로크리트', '에포젠', '세로스팀', '자이프렉사', '디푸루칸', AIDS 치료제인 콤비비르(Combivir)와 레트로비르(Retrovir)에 이르기까지 10여종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州 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하지 않을 경우 아직은 일부에 불과한 위조약과 제품라벨이 잘못 부착되었거나 부주의한 취급과정으로 문제가 발생한 약물들이 장차 더욱 광범위하게 유통될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네소타州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로웰 앤더슨 약사는 "40여년 동안 약국을 했지만, 요즘들어 부쩍 유통 중인 의약품들에 대한 신뢰감이 흔들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위조약이 홍수를 이루는 현상이 최근 10여년 사이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한층 정교해진 제품라벨 위조기술의 발달 ▲영세 도매업소들의 난립 ▲고가약의 잇단 발매 등에 주된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플로리다州 보건省의 그레그 존스 약사는 "고가약을 위조했을 경우 이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많은 이들을 불법행위의 유혹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25달러짜리 소용량 '에포젠'의 제품라벨을 위조해 최대용량 제품으로 바꾼 뒤 495달러에 팔아넘겨 470달러의 불법이득을 챙긴 사례도 적발되었다는 것.

이로 인해 한해 1,92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미국의 처방약 시장에서 위조약과 가짜약이 점유하는 비율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조지아州 약무국의 릭 앨런 부국장은 "만약 신장투석 환자가 위조약을 사용했을 경우 자칫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깊은 우려감을 표시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멍뚫린 미국의 의약품 안전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州에서는 의약품 도매업소를 차리고 약국과 병원에 의약품을 공급하고자 할 경우 쉽사리 허가를 취득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매업소가 난립할수록 의약품 유통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해지는 것은 불문가지!

플로리다州에서만 1,400여곳에 달하는 의약품 도매업소들이 각종 처방약을 유통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로리다 州의회는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 2월 도매업소 설립요건을 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일부 의약품들은 도매업소가 사고 팔고 또 되사는 과정을 거치면서 공장과 약국을 5~6차례에 걸쳐 돌고 돌아 유통되고 있다는 후문이어서 사후약방문격이라는 비난도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FDA는 이미 지난 1988년 의약품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마련했으나, 아직껏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위조약이 발견되었을 때 이를 FDA에 보고할 의무가 제약기업측에 부과되어 있지 않은 현실도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는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대해 美 제약협회는 "앞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견되면 5일 이내에 FDA에 자발적으로 보고토록 할 방침"이라고 지난달 입장을 밝혔다.

도매업체들도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며 화살이 자신들에게 쏠리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도매업소 78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의약품유통경영자협회(HDMA)의 론 스트렉 회장은 "우리는 위조약이 범람하는 현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FDA는 지난 1998년 이래 73건에 달하는 위조약 조사사례를 공개한 바 있다. 특히 FDA는 최근 2년새 위조약에 대한 조사사례가 부쩍 증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주동자 32명과 공모자 25명이 기소된 것으로 집계됐다.

州정부 차원에서도 대책마련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 사우스 플로리다에서만 지난해 총 2,000만달러치에 달하는 위조약들이 적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대부분의 환자들은 약국이 각종 처방약들을 제약회사로부터 직접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플로리다州에서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처방약의 46%만이 제약회사로부터 약국이나 병원으로 직접공급되고 있을 뿐, 54%는 도매업소를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도매업소를 거치는 의약품들 가운데서도 90% 정도는 카디날(Cardinal), 맥커슨(McKesson), 아메리소스버겐(AmerisourceBergen) 등 3대 업체들에 일단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이들 3개 업체들은 매년 1,000억달러치에 달하는 각종 의약품들을 유통시키고 있다.

반면 나머지 10% 정도에 해당하는 물량의 경우 제약회사에서 영세한 도매업소들로 건네진 뒤 약국이나 의원·병원에 판매되고 있고, 서로간에 교품도 이루어지는 등 한층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제 3의 시장(secondary market)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바로 제 3의 시장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3개 주요 도매업체들도 영세한 업소들이 제 3의 시장에서 확보한 의약품을 구입할 경우 훨씬 저렴한 가격에 확보가 가능해 구매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조지아州 약무국의 릭 앨런 부국장은 "영세한 도매업소들은 대부분은 위생적인 보관시설을 갖추고, 물류를 컴퓨터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등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실태파악이 어려운 일부 업소들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약국이나 암시장에서 값싸게 각종 의약품을 확보하고 있거나, 심지어 장물·불법 수입품 및 위조된 제품들을 유통시켜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네바다州에서는 달펜스(Dalfens)라는 이름의 도매업소가 지난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확보한 3,400만달러치에 달하는 각종 의약품들의 기록을 누락시키고, 냉장보관이 필요한 의약품들을 상온에 방치한 혐의 등으로 100만달러의 벌금을 추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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