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 치료제 '라믹탈'(Lamictal)은 항진균제 '라미실'(Lamisil)과 이름은 물론이고 외형까지 유사해 혼동을 유발하고 있다.
최소한 22차례에 걸쳐 약사가 제품명을 혼동한 관계로 조제과정에서 착오가 빚어진 결과 3명의 환자들이 발작 증상으로 인해 고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밖에 '푸로작'의 다른 이름으로 중증의 월경 前 증후군에 사용되는 '사라펨'(Sarafem)과 불임약 '세로펜'(Serophene), 정신분열증 치료제 '자이프렉사'(Zyprexa)와 항히스타민제 '지르텍'(Zyrtec), 항우울제 '설존'(Serzone)과 정신병 치료제 '쎄로켈'(Seroquel) 등도 혼란을 유발하는 동성동본격(?) 요주의 의약품들로 꼽히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이름과 외형이 유사한 각종 의약품들은 약화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 FDA가 유사한 약물로 인해 발생하는 약화사고를 미연에 방지코자 획기적인(eye-catching) 제도개선을 적극 강구 중이어서 향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FDA는 이전부터 제품명칭이 유사한 의약품들에 대해 거듭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으나, 제약기업측이 이에 부응해 이미 판매 중인 제품들의 이름을 바꾼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형편이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적어도 30종 이상의 의약품들이 조만간 제품명을 대문자 또는 소문자로 바꿔 인쇄되거나, 아예 다른 색깔 및 상이한 음영으로 교체될 전망이다. 한 예로 '라믹탈'의 경우 "~ictal" 부분을 붉은색 이탤릭체로 새겨 조제착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FDA는 또 신약이 시장에 발매되기 전에 혼동 유발가능성을 점검하기(literally testing) 시작했다. 테스트는 120명의 의사·약사·간호사들에게 휘갈겨 쓴 가상 처방전을 보인 뒤 읽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이제까지 제약기업측이 원하는 브랜드명들 가운데 3분의 1에서 혼동이 초래된 것으로 나타나 사용요청이 반려됐다.
비영리기관인 의약품안전투약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마이클 코헨은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지적된 제품들은 좀 더 읽기 쉽도록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헨은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처방전 내역을 면밀히 체크하고, 의문이 있을 때는 약사에게 문의하는 등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의사가 처방전을 휘갈겨 쓰거나, 또렷하게 전송되지 않는 팩스를 통해 받아보았을 때 업무에 바쁜 약사들이 자칫 선반 위에 놓인 다른 의약품을 집어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라는 것.
코헨은 또 "가령 환자가 의사에게 특정약물을 처방한 이유를 문의한 후 약사에게 이를 설명해 준다면 약사가 휘갈겨 쓴 처방전에 접했더라도 '라믹탈'을 '라미실'로 잘못 조제해 주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적은 오늘날 미국에서만 줄잡아 1,000여종의 각종 의약품들이 유사한 제품명으로 인해 조제과정에서 착오를 유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현실을 감안한 언급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에서는 용량착오 또는 다른 약물을 잘못 조제하는 등의 실수로 인해 발생하는 약화사고가 매년 약 13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품명 혼동으로 인해 빚어지는 약화사고가 이 중 30% 정도를 점유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슷한 제품명으로 인해 발생한 최악의 약화사고는 1년여 전 한 당뇨환자가 신경안정제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을 당뇨병 치료제 클로르프로파미드(chlorpropamide)와 혼동해 잘못 복용한 결과 사망했던 케이스가 지적되고 있다.
FDA에서 약화사고 예방책임자 제리 필립은 "30여종의 대상품목을 발매 중인 제약기업들측에 라벨변경을 촉구하는 142건의 서한을 발송했다"며 "이에 따라 조만간 약사들은 'ChlorproMAZINE' 또는 'ChlorproPAMIDE' 등이 인쇄된 제품들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라믹탈'을 생산하고 있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는 FDA의 이번 조치에 부응하기 위해 약사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용도로 사용될 카드(shelf-shouter)를 약국에 배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