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멀티버스] 월드컵 개막식 보셨나요? 안드레아 보첼리와 이재의 찬가 ‘DNA’가 던진 질문
보첼리의 선천성 녹내장과 실명을 넘어선 음악 여정, 생명과학 연구개발 도전과 맞닿다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6-15 12:00   수정 2026.06.15 12:00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와 이재가 공식 찬가 ‘DNA (More Than a Game)’를 부르고 있다.©FIFA 유튜브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개막식 현장.©FIFA 유튜브

지구촌 최대의 축제,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이 화려한 막을 올렸습니다. 역사상 최초 3개국 공동 개최, 48개국 본선 진출이라는 역대급 규모에 걸맞게 멕시코시티 아즈테카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 역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국내 팬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 장면 중 하나는 단연 한국계 싱어송라이터 이재(EJAE)의 등장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Golden)'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그녀는 오페라 거장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와 나란히 무대에 섰습니다. 수억명의 시청자 앞에서 당당하게 한국어 가사를 열창했습니다.

"또 넘어져도 돼, 또 다시 일어나" 전설적인 거장의 오페라 보컬과 K-팝의 트렌디한 감성이 더해진 이번 월드컵 공식 찬가 'DNA (More Than a Game)'의 한 구절입니다. 거대한 스타디움에 울려 퍼진 이 가사는 단순한 응원가를 넘어섭니다. 무대 위에 선 두 아티스트의 삶, 그리고 생명과학이 마주한 거대한 도전과도 묘하게 닮아있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에서 이재만큼이나, 그 옆에 선 안드레아 보첼리에게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이재와 함께 감동의 하모니를 만든 보첼리는 대개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 세계를 울리는 그 장엄한 목소리 뒤에는 시각장애의 아픔이 숨어있습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태어날 때부터 녹내장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선천성 녹내장은 눈 속 방수(눈 안을 순환하는 액체)가 빠져나가는 구조에 이상이 생기면서 안압이 상승하고, 시신경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희귀 질환입니다. 발생 빈도는 지역과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신생아 1만명 안팎에서 1명꼴로 보고됩니다. 

어린 시절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는 12세 때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날아온 축구공에 맞은 것입니다. 안 그래도 취약했던 그의 시야는 이 사고 이후 완전히 사라졌고, 결국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서 시력을 앗아간 결정적 계기는 축구였습니다. 하지만 안드레아 보첼리는 그 축구의 최대 축제인 월드컵 개막식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천성 녹내장은 DNA 속 CYP1B1 유전자 변이 등 다양한 유전적 원인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한번 사멸한 망막신경절세포와 시신경은 현재 표준치료로는 다시 재생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안드레아 보첼리에게 실명은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어둠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식 찬가의 제목인 'DNA'가 저에겐 더 상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생명체의 모든 정보가 담긴 설계도이자,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지우지 못할 운명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안드레아 보첼리에게 DNA가 녹내장이라는 가혹한 운명의 굴레와 맞닿아 있었다면, 이재가 쓴 한국어 가사 "또 넘어져도 나 또다시 일어나"라는 구절은 다른 의미로 들립니다. 고장 난 생명의 설계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인류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지금 생명과학계는 안드레아 보첼리가 겪었던 이 잔인한 운명의 DNA 앞에서, 인간의 손으로 생명 현상을 다시 조율하기 위한 위대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녹내장으로 손상 시신경은 되살릴 수 없다"는 안과 학계의 오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세계 최고 권위의 연구소들이 뛰어든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하버드 의대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Sinclair) 교수 연구팀입니다. 이들은 세포의 나이를 거꾸로 돌리는 ‘후성유전적 재프로그래밍(Epigenetic Reprogramming)’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2020년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젊은 후성유전 정보 회복 및 시력 복원을 위한 재프로그래밍(Reprogramming to recover youthful epigenetic information and restore vision)’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표지 논문으로 게재했습니다. 연구팀은 종양원성 우려가 큰 인자를 제외한 세 가지 야마나카 인자(OSK)를 유전자치료 방식으로 발현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손상된 생쥐의 시신경을 재생하고 시각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놀라운 연구 흐름은 실험실을 넘어 바로 이달, 미국 바이오텍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의 ‘ER-100’ 임상 1상 첫 환자 투여로 인간 대상 검증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ER-100은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 벡터를 통해 OSK 인자를 발현시키는 후성유전적 재프로그래밍 기반 유전자치료제 후보물질입니다. 현재 개방각 녹내장과 비동맥염성 앞허혈시신경병증을 포함한 시신경병증을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겪은 선천성 녹내장 분야에서도 CYP1B1 등 원인 유전자 연구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아직 이를 겨냥한 유전자치료가 임상적으로 확립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고장 난 유전자와 시신경 손상의 연결고리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려는 연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손상된 시신경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결론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손상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막거나 되돌릴 수 있을지 묻는 단계로 과학의 질문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 역시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에 기민하게 동참하고 있습니다. 소간섭 리보핵산(siRNA) 치료제부터 AAV 벡터 기반 유전자치료제, 줄기세포 기반 세포치료제, 신경보호 치료제 후보물질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의 혁신 기술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안구 내 특정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고 망막신경절세포 사멸 경로를 차단하려는 기업들이 ‘시신경 보호·재생’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을 향해 달리는 중입니다.

물론 이 혁신 신약들이 당장 선천성 녹내장만을 타깃으로 허가 목적 임상시험을 통과하기엔 현실적 장벽이 존재합니다. 환자 수가 적고 구조적 결함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넓은 녹내장 시장을 타깃으로 묵묵히 축적하고 있는 기술적 토대는 머지않은 미래에 안드레아 보첼리와 같은 비극을 겪을지 모를 아이들의 유전적 운명을 바꿔줄 중요한 단서가 될 것입니다.

월드컵은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고, 신약 개발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임상 단계에 진입한 후보물질조차 90% 안팎이 최종 허가에 이르지 못하는 신약 개발 전선에서 연구원들이 밤을 지새우는 이유는,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생명의 복원력이 인간의 DNA에 각인돼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둠 속에서도 전 세계를 향해 평화와 화합을 노래한 안드레아 보첼리의 울림 있는 목소리. K-팝 아이돌 데뷔의 문턱을 넘지 못해 낙담하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글로벌 무대에 오른 이재의 열정. 그들이 증명해 낸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난치병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과학의 여정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바이오 멀티버스]는 제약바이오 이슈를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일상 속 비유로 쉽게 풀어낸 칼럼입니다.©ChatGPT(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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