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제조·판매업체가 최근 1만1000개를 돌파한 가운데 ‘화장품=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등식에 의문부호가 제기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K-코스메틱 열풍으로 화장품제조·판매업체가 급격하게 증가했지만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문 탓이다.
특히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진 이종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르면 올 연말이 국내 화장품업계가 정리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국내 화장품제조·판매업체는 4300여개에 불과했다. 해마다 증가폭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되는 곳에는 사람이 몰리는 법, 2014년을 기점으로 화장품은 국내 산업계 전반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제약, 의료, 패션, 유통, 식품, 주얼리, IT, 엔터테인먼트, 악기 등 업종을 초월한 다양한 업체들이 줄기차게 시장에 뛰어들면서 2016년 1월 식약처에 등록된 화장품제조·판매업체는 8500개를 넘어섰다. 불과 2년여 만에 4000개 이상의 업체들이 새롭게 이름을 올린 것이다.
현재(6월 7일 기준) 화장품제조·판매업체는 총 1만1094개로 화장품제조사가 2003개, 화장품제조판매사가 9091개다. 올해에도 매월 100~200개 이상의 업체가 추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연말까지 1만2000개 돌파도 가능할 전망이다. 화장품·뷰티가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한 분야가 블루오션에서 레드오션으로 변모할 때 유통업계는 신규 업체들이 성공할 확률을 10% 이내로 본다. 자영업자들의 통상적인 성공 확률은 30% 안팎이다.
하지만 지난 2~3년 사이 신규 화장품업체들의 성공 확률은 1~2%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대기업과 브랜드숍의 위세가 꺾이고 H&B숍과 멀티숍이 국내 화장품 유통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호기를 맞이했음에도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된 라이징스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차별화된 제품력, 독자적인 브랜드 정체성, 소비자를 사로잡는 홍보·마케팅, 체계적인 유통이라는 성공의 4가지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장품 비즈니스의 A to Z를 꿰고 있는 인재 풀이 협소하다는 게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다수의 업체들이 화장품시장에 진입하면서 기존 대기업·중견기업 출신의 인력들을 사업 책임자나 임원·팀장급으로 영입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경우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대표적인 예가 벨포트와 YG엔터테인먼트의 문샷이다. ‘한국판 세포라’를 표방하며 2014년 9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던 벨포트는 불과 2년 만에 사실상 폐업 수순에 들어갔다.
론칭 당시 민영훈 대표는 1년 안에 100개의 가맹점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벨포트는 480억원을 투자받았으나 매출 부진으로 440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샷 역시 고전 중이다. 2014년 10월 서울 삼청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며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지만 매출 부진, 중국 진출 지연 등으로 YG엔터테인먼트의 아픈 손가락이 되고 말았다.
지난 5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드 리스크가 완화되는 등 국내 화장품업계에는 다시금 활기가 돌고 있는 상황. 하지만 뚜렷한 이변이 없는 한 신규 화장품업체들의 낮은 성공 확률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대해 한 업계 전문가는 “흔히 화장품시장은 진입장벽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국내외 소비자들이 스마트해지면서 어설픈 제품과 마케팅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K-뷰티가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면서 ‘KOREA’라는 이름을 달고 해외 박람회에 나가면 무조건 현지 바이어와 거액의 계약을 체결할 거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은 착각에 가깝다”며 “잭팟을 노리기에 앞서 성공한 업체들의 성공 이유, 실패한 업체들의 실패 이유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