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환정보] 암보다 지독한 놈 '한랭응집소병'
추위 속 악화·국내 질병 코드조차 없는 질환…"정부 지원 절실"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3-03-09 06:00   수정 2023.03.09 06:01

‘온도 감옥’이라 불리는 질환이 있다. 바로 ‘한랭응집소병’이다.
 
한랭응집소병(Cold Agglutinin Disease, CAD)은 적혈구 파괴가 지속적이면서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극희귀 자가면역 혈액 질환이다. 심할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빈혈 및 혈전성 합병증을 유발한다.
 
이러한 한랭응집소병은 체온보다 조금만 낮은 온도에서도 암 환자 수준의 피로 및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고통을 받아 일상생활에 제한을 건다. 한랭응집소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낮은 외부온도에 영향을 받아 증상이 악화된다. 이러한 특징으로 생긴 별명이 바로 ‘온도 감옥’이다.
 
또한 직장생활은 물론, 빨래나 요리, 가벼운 집안일조차 어려울 정도의 피로감으로 평범한 일상 유지가 어렵다.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피로감 점수(FACIT-FATIGUE score)는 32.5점으로, 삶의 질을 열악하게 만드는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진행성 암 환자의 피로감 점수인 28~39점과 유사한 점수다.
 
한랭응집소병은 한랭응집소라는 자가 항체가 적혈구에 결합하며 발생한다. 이로 인해 적혈구가 파괴되는 ‘용혈’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적혈구는 몸 속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용혈 현상이 지속적으로 생기는 한랭응집소병은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심각한 빈혈, 호흡곤란, 혈색소뇨증 등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5년 사망률도 40%에 이른다.
 
한랭응집소병 환자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혈전’이다.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혈전 발병률은 1000명당 30.4명으로, 일반인 대비 2배 높은 수치다.
 
실제 한랭응집소병 환자는 일반인 대비 사망률도 높다. 1999년에서 2013년 덴마크 국립 환자 등록부에 등록된 인구를 대상으로 한랭응집소병에 진단된 환자 72명과 한랭응집소병 진단을 받지 않은 720명의 사망률을 비교한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 결과,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1년 및 5년 사망률은 각각 17%와 39%로 비교군의 3%와 18% 대비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사망 위험 평가를 위한 민감도 분석 결과, 진단 후 첫 5년간 사망률은 3배 높았으며 환자의 평균 생존여명은 8.5년에 그쳤다.
 
하지만 한랭응집소병은 일반인은 물론 의료진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질환이다.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일 사노피 아벤티스코리아가 진행한 미디어 세미나에서 연자로 나선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한랭응집소는 굉장히 드문 질병”이라며 “우리나라에는 약 100여 명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질환이기에 전문의가 쉽게 의심하기 어려운 질병”이라며 “하지만 의심을 할 수 있다면 진단이 어려운 질병은 아니다. 진단법이 어려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빈혈 증상이 해결되지 않을 때 의심한다면 바로 진단이 가능하다”라고 부연했다.
 
다만 한랭응집소질환으로 진단을 받는다 하더라도 국내에는 당장 치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질병코드조차 없다.
 
장 교수는 “현재로서는 환자가 냉기를 피할 수 있도록 하고, 반복적인 수혈을 통해 부족한 적혈구를 채우는 것이 대중적인 치료 방법”이라며 “반복적인 수혈은 환자의 부담도 크고, 실생활에 냉기 지속적으로 피하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랭응집소병의 의료적 미충족 요구가 큰 상황이지만,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고 질병 부담이 과소평가되어 있어 적극적인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장 교수는 “한랭응집소병의 인지도가 낮고 빈혈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환자들은 고통받고 있다”며 “같은 혈색소 수치를 보이고 있더라도, 용혈 유무에 따라 환자가 느끼는 피로감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 사용되고 있는 치료제는 고가 비용으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어렵다”며 “엔제이모(수팀리맙)이라는 약제가 미국과 유럽에서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적혈구 용혈 현상을 억제하는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으나, 국내에는 언제 들여올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부연했다.
 
이에 “한랭응집소병이라는 희귀질환의 등재와 치료제 도입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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